5/3 가정주일설교, '피차 복종하라', 엡 5:21
2020-05-03 가정 주일
제목: 피차 복종하라
본문: 엡 5:21
어김 없이 5월은 돌아오고, 가정의 달은 돌아왔다. 오늘은 가정 주일로 지킨다.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가정의 행복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가정의 행복은 국가도 교육도 결코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가정의 행복이 왜 중요하냐?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국가의 기본이고 기초이고 기반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깨지면, 돈도, 일도, 성공도 다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본다.
가정이, 돈보다 일보다 성공보다, 우선이고 인생의 기반이요, 토대라는, 인식부터 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혼율이 더 높고, 자녀들이 버림받고 문제아들이 넘치고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조사한 통계이다.
초교파 개신교인의 이혼율 34퍼센트
주요 교파 개신교인의 이혼율 25퍼센트
무신론자/불가지론자의 이혼율 21퍼센트
주류 교단의 십대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불신자 가정들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명목상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실질상으로는 세상과 다른 것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 파괴된 가정들, 손상된 자녀들이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을 알고 우리의 귀한 가정을 이제라도 돌이키고 바로 세워야 한다.
1.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 말씀이 가정의 행복과 질서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근본 원칙이고 법도이다.
이 말씀이 인간관계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인간 관계의 파탄은 서로 복종할 줄 모른다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중심에, 그 관계 위에, 그 관계 사이에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 대가족 제도하에서는 집안에 어려운 어른이 있어서 싸우지도 갈라서지도 못했지요.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어려운 어른이 없으니까 그대로 개성끼리 부딪치고 끝장을 내고 있다.
가나안 땅의 3백년 암흑시대를 결론 지워주는 말씀은 사사기 맨끝 절 말씀에 나와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가정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다.
다스릴 왕이 오기 전에는, 둘다 복종할 수 있는 왕이 오기 전에는,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것끼리의 싸움과 갈등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겉만 표면만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속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경외할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나의 주요, 나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는 것은, 주님 말씀하신 대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의 다른 표현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마22:37)
“피차 복종하라”는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의 다른 표현이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없으면 피차 복종할 수 없다.
피차 복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를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있으면 피차 복종할 수 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에 순종해야 크고 둘째 되는 계명도 지킬 수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는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없다.
순서를 바꿔서는 될 수가 없다.
이웃 사랑 만인 사랑을 아무리 외쳐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다.
하나님 사랑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없는 사람은
자기 사랑, 자기 중심적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스라엘처럼 열심은 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을 뿐이다.
2. 피차 복종해야 한다.
피차 복종하라
‘서로 사랑하라’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천국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천국을 갈려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 말씀하셨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이 가까이 와서 내가 들어간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경외할 수 있고 그 믿음으로 피차 복종할 수가 있다.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 자라가야 한다.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니 우리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생명이 심어졌으니 이제 피차 복종하는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사랑과 화평과 희락,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성화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축복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신다.
가정의 기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부모와의 관계보다, 자녀와의 관계보다, 항상 더 우선이고 중요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본 질서부터가 무시될 때, 가정의 행복은 금가기 시작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 2장에서 부부로부터 가정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아담을 만드시고 곧바로 부부로 가정을 출발하게 하셨다.
(창1:27) 남자와 여자(가정)를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로 가정을 만드신 자세한 과정을 또한 창 2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창 2:20-24)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자를 만드실 때 따로 흙으로 만들지 않고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취하여 만드셨다.
아담의 돕는 배필로, 아담의 몸의 한 부분으로 만드셔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의 관계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부부의 관계이고 질서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처음부터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아담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었는데, 가정을 이룰 때는 뭐라고 말씀하는가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신다.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 문화, 가부장 문화와 다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결혼하면, 남자는 아내와 합해야 한다. 더 이상 여전히 부모형제와 합하지 않아야 한다.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했으면 이제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내와 합할려면, 경제적으로 독립(자립)하고, 의존하던 심리적 탯줄을 끊어야 한다.
마마 보이, 딸 바보는 불행의 씨앗들이다. 캥거루족도 질서 위반이다.
그런 가정은, 한 몸으로서의 화합과 질서가 없고, 가정이 제대로 설 수가 없다.
부부가 한 몸이 된 기본 질서 위에 부모형제와의 관계도, 자녀와의 관계도 다시 세워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결혼하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도록 해줘야 한다.
부부간에는 피차 복종해야 한다.
먼저, 아내들에게 복종하는 방법을 자세히 명령하신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2-24).
아내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다. 아내들은 마음에 꼭 새기시기 바란다.
머리에 복종하는 가운데 질서는 세워지고 내면화 되면서 그리스도 경외함도 배우게 된다.
부모의 주도권 다툼의 싸움 속에서 자란 자녀들은,
내면에 질서가 없고, 정서가 불안정하여, 이후 가정 생활도, 사회생활도 적응을 못하게 된다.
문제아는 문제의 가정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께 하듯”,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없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할 수 없다.
그 마음에 “주”가 안 계신 분들은 서로 주가 되느라고 평생 동안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다.
또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이지,
남편들에게 아내 잡는데 써먹으라고 주시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이제, 남편들에게 복종하는 방법을 따로 자세히 명령하신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5:25,28)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의 의무가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만 하면 되지만,
남편은 아내 사랑을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심 같이 해야 한다. 목숨을 바쳐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남편은 목숨을 바쳤으니, 아내의 복종을 가지고 시비할 생명이 없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사랑의 비밀)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5:33)
아내 사랑도 어렵고, 남편 존경도 어렵지만,
주께 하듯 하면,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고, 주님이 하듯 하면, 아내를 자기 사랑하듯 할 수 있다.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노라면
어느새 가정은 천국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평화와 번영이 깃들 것이다.
부모와 자녀들이 제일 좋아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부모 자녀간에도 피차 복종해야 한다.
먼저, 자녀들에게 복종하는 방법을 명령하신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자녀가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이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신다.
자녀가 잘 되질 않고, 아프고 빨리 죽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핵가족 부모들은, 제 자식 귀하게만 여기다가,
오히려 자식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공경하면서, 하나님 법도를 거역하고 있다.(캥거루족)
부모에게 순종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은 내내 부모를 종처럼 부리고 천시한다.
그런 대접, 자식한테 안 받을려면, 지금부터 법도를 따라 잘 양육하여야 한다.
부모에게 순종, 부모 공경은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것이다.
내가, 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내 자녀에게, 부모에게 순종과 부모 공경하라고 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다음에, 부모가 복종하는 방법을 명령하신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자기 성질대로 감정대로 자기 의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여기고 함부로 대해서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에 맞게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말씀을 즐거워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3.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 앞에 대전제로 있는 말씀이다.
우리 육신으로 충만해 가지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도 피차 복종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세례는 위로부터 임하는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내면에 충만하게 채워서 성화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할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 없이 성령 없고, 성령 없이 말씀 없다.
술에 취하면 방탕에 이르지만, 성령의 충만으로 취하면 거룩함에 이른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채워지게 되고, 피차 복종할 수 있게 되고,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고, 축복과 번영으로 가정을 채우게 한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채우고 계속 유지하게 하자.
그것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말씀의 뜻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행5:32)은 성령의 충만함이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음으로, 유지함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그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함으로써, 천국 가정, 복된 가정을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