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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1장 구원의 가장 큰 필요 (김영희)

강대식 2020. 5. 19. 21:43

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정상윤역, 복있는사람, 2018

 

1 장 구원의 가장 큰 필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2:1-4)

 

- 이 네 구절은 성경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다가오는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성경 전체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바, 매우 심각하고도 엄숙하며 긴박한 어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이런 어조를 통해 전달하려는 생각은 이것이다.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3:7, 3:7).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1:15, 4:9, 8:8),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2:40)

 

사도 바울의 아덴 설교를 보라.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17:30-31) 그 뿐 아니라 모든 서신서에도 같은 어조가 나오는데, 이 본문에 특히 강렬하게 나온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인을 향해 들은 것에 유념하길 촉구하고 있다. 그들은 분명 복음을 믿었지만, 여전히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믿음을 아주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동요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듣고 믿는 사실들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떠내려 가지 말길 권면한 것이다. 이미 믿은 자들도 잊기 쉽고 잊을 가능성이 있는데, 믿지 않는 자들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 그리스도의 복음과 히브리서의 메시지는 자신에게 유념할 것을 세상에 요구한다.

 

첫째 표현, 유념함으로 복음을 슬쩍 쳐다보거나, 그에 관한 가벼운 글을 읽거나, 그에 대해 가끔 토론하거나, 특별한 날과 행사 때 교회에서 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념하라는 것은 전적으로 집중하라는 뜻이다.

 

둘째 표현,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배가 목적지인 항구에 이르지 못한 채 조류에 떠밀려 자신도 모르게 떠내려가는 것은 아주 안타깝고 심각한 일이다. 복음을 접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항구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저런 이유로 어정쩡하게 있다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내려가 버린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주님도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복음을 듣지만 마치 길가에 떨어진 씨처럼 새가 채 가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 그대로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표현,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보응을 피하리요 복음의 일부를 알고 진리의 명제와 진술도 몇 가지를 안다. 그러나 다른 일에 빠져 복음에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며 진리를 등한히 여기다가 떠내려가는 것이다.

 

성경은 도처에서 이 세 가지 위험을 피할 것을 권면하며,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유념할 것을 호소한다. 그러나 세상은 정확히 반대로 하고 있다. 세상의 현 상태를 놓고 절박하고 심각하게 염려하여 철학자와 사색가와 선도적 사상가들이 이런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복음에는 들을 말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

 

- 우리는 왜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현대 세계에서 오직 우리만 인간 문제의 유일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인류 앞에 내세워도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적이고 주된 이유 세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 세 가지 이유는 곧 히브리서의 세 가지 주제이기도 하다. 이 네 구절 자체가 히브리서 전체의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 번째 큰 이유는 복음의 원천 내지 권위에 있다. 그 권위는 메시지의 원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번째 큰 이유는 복음을 믿지 않고 유념하지 않는 자들의 위험하고 우려스러운 상태와 위치에 있다.

세 번째 큰 이유는 복음의 본질 내지 특징에 있다.

 

- 첫 번째, 이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복음의 원천 내지 권위에 있다.

 

1. 복음의 내용 자체를 알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살펴볼 것은 지금 살펴보는 복음의 내용 자체를 알고 있는지부터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복음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에 유념하라는 것은 무익한 짓이다.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고 곤란한 위기에 처한 사람이 늘 빠지기 쉬운 위험은, 잘못된 종교적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들다가 이런 위험에 빠지곤 한다.

 

감사하게도 신약성경 자체가 이에 대한 경고와 대처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들은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다. 본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다고 생각하나 신약성경에 비추어 볼 때 그 믿음은 무가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영혼이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특별히 와 닿는 일부 측면을 전부라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한 가지 목표나 소원에 초점을 맞추어 복음을 들으며,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구절들을 성경에서 찾아낸다. 세상에는 행복을 약속하는 사교나 단체들이 많다. 행복을 장담하는 심리학의 한 형태, 한 철학, 한 이론을 고수하면서도 성경 구절 몇 가지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체험이야말로 진정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되 신약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자기 가르침을 제시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한다. 거듭 상기시키는바, 이런 세상의 여러 단체를 통해 걱정에서 벗어나 더 행복해졌다 해도 여전히 비그리스도인의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위안과 위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순한 위로의 메시지로만 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도의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자들도 많다. “무엇을 할까? 둘 중 어느 길로 갈까?”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삶을 인도를 받는 한 가지 방편에 불과하다. 육신의 치료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복음을 한낱 치료의 방편으로 축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초월자와 조화를 이루고 싶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우주의 중심과 일체감을 느끼길 원하여 성경을 찾으며 오직 그 부분만 뽑아낸다. 그중 다수가 신비주의를 신봉하며, 하나님을 찾으려 하면서도 정작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기본요소는 무시해 버린다.

 

마지막으로 선한 삶을 인생의 중대 관심사로 삼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아주 도덕적인 사람들로서, 세상을 떠난 이후 영혼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성경에는 도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에 그 내용만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린다. 이러한 위험들에 빠져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만족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추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그 자체로 잘못된 접근법이 되는가?

 

복음은 모든 것을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선행하는 일이 있다. 복음의 중심 메시지를 먼저 믿어야 복음의 축복이 따라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들은 것에 유념해야 한다. 떠내려가지 않도록 자신들이 이미 들은 특정한 사실들을 등한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호하거나 희미하거나 막연하지 않으며,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것이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가장 먼저 전하시고 사도들이 이어 전한 메시지이다. 이후 모든 시대에 전해진 특정한 메시지이자 성경에 기록된 구체적인 메시지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전체를 다 전해야 한다. 일부만 취하고 나머지를 무시할 권리가 없다. 복음 전체를 전하지 않으려면 아예 전하지 말아야 한다. 들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 단순한 치유나 윤리나 위로가 아닌 메시지 전체, 신약성경이 말하는 특정 메시지의 핵심을 가리킨다. 이 메시지 내용은 분명하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른 사도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자신도 똑같이 전한다고 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사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주님께 받은 메시지요 성경의 메시지요 다른 형제들이 전하는 메시지이다라는 것이다. 그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구원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질문 1) “이생과 영원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것이며 맺을 수 있는가?”

 

아픈 마음으로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러분의 첫 번째 가장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러분에게 불멸하는 영혼이 있다는 것, 그런데 여러분은 죽어야 하고 죽은 후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선고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마귀는 부차적인 문제를 일차적인 문제와 맞바꿈으로써 결국 일차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하게 만든다. 슬픔을 통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찾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면서 남은 이의 영혼을 깨우는 경우가 있다. 19세기 위대한 설교자 토머스 차머스는 병에 걸려 1년 동안 병실에 지내는 신세가 되었을 때,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으로 설교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참으로 믿은 적이 또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질병을 도구로 사용하여 그를 빛으로 이끄셨고 온전한 진리를 알려 주셨다. 그는 자신의 와병을 감사드렸고, 이후 새로운 방식과 능력으로 복음을 설교하며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다.

 

부차적인 문제를 일차적인 문제와 맞바꾸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없다. 자신이 이런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여러분은 자신이 아무 소망도 없고 힘도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 길을 잃은 절망적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정으로 알고 있는가? 아무리 성경의 인도를 받고 비범한 체험을 했더라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유죄선고를 받은 죄인임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질문 2) 여러분 삶의 체계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대적인 중심과 핵심을 차지하고 계시는가?

 

예수와 무관하게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에서 그가 중심에 계신지 묻는 것이다. 히브리 신자들이 들은 것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중심을 차지하시는 분이다. 아무리 놀라운 인도를 받고 비범한 체험을 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망도 품을 수 없는 길 잃은 죄인임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고 그와 화목케 되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함을 알고 있는가? 자신이 참 그리스도인인지 알려면 두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질문 3) 여러분에게는 십자가 죽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건인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노라”(고전2:2) “들은 것”, 즉 진리 안에 들어가려 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중심적이고 긴요하며 절대적인 사건이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없으면 내가 죄 사함을 받을 소망이나 하나님을 뵐 소망이나 천국에 이를 소망이 다 사라져 버림을 안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비참하게 살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안다라고 고백이 나오게 된다. 복음 메시지의 중심적이고 긴요하며 핵심적인 사실이 바로 이것이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바울이 전한 진리, 신약 모든 서신서의 주장이 이것 아닌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그의 피가 아닌가?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와 무관한 복음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죽음에 관심이 있는가?

 

- 다시 한 번 엄숙히 말씀 드린다.

 

모든 것에 앞서 자신의 영적 상태부터 직시하라. 우리는 다 덧없고 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여러분은 살아 있는 영으로서 마지막 날을 향해 피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구원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가 여러분의 죄를 사해 주신 것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가 되어 주신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종말을 준비하라. 자신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날 의롭다 하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라.

 

장담컨대, 하나님을 그처럼 아는 사람은 다른 문제들도 하나씩 담대히 그 앞에 가져갈 것이요 하나님은 그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 이 영혼의 필요를 가장 먼저 채우지 않은 채, 작은 필요들을 일시적으로 채우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