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 주일설교, '빛과 어둠, 평안과 환난', 사 45:7-9
2020-06-14 주일설교
본문: 사 45:7-9
제목: 빛과 어둠, 평안과 환난
1. 빛도 어둠도, 평안도 환난도 창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하나님은 빛만, 평안만 짖고 창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어둠도, 환난도 짓고 창조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창1:3-5)
하나님은 자연의 낮과 밤의 개념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평안과 환난의 문제를 깨우쳐 주신다.
밤은 사망이요 낮은 생명이라고 대조해서 생각할 수 있다.
환난의 어려운 시기가 있고, 평안의 행복한 시기가 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낮과 밤이 교차하며 순환하듯이, 우리 인생도 환난과 평안이 교차하며 흘러간다.
이 교차와 순환의 원리를 안다면 밤의 시기에 환난의 시기에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3:5)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오랜 세월 지났지만, 오랜 밤의 시기를 지났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은 그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부어주시고 잔이 넘치게 하셨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구원은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구원은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우리가 구원을 받아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지만,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애굽을 곧 애굽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씻어내가 위해
하나님은 긴 광야생활을 허락하시고 남아 있는 어둠을 씻어내는 작업을 하신다.
그런데 그 광야생활은 어둠과 환난의 세월이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신8:15)
불뱀과 전갈이 있다는 것은 사망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고,
간조한 땅은 외롭고 공허하고 버림받은 것 같은 환경이다.
왜 이런 환경의 광야생활을 거치게 하시는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밤과 환난을 주시는 목적도 이 말씀에 나와 있고, 해결하는 방법도 이 말씀에 분명히 나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둠과 환난 그 자체와 싸우느라 일생을 허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리라”(렘13:16)
우상 숭배와 불순종의 대가는 하나님이 어둠을 일으키시고,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게 하시고,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였지만, 끝내 듣지 아니하였고
여호와의 양떼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감으로 에례미야로 하여금 통곡하게 만들었다.
주님이 친히 인감의 몸을 입고 참 빛으로 오셨지만 이 백성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9_13)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만이 빛을 영접하여 어둠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
어둠과 환난은 죄를 회개하기 위한 것도 있고,
우리를 정결하고 흠이 없고 거룩하고 완전하기 위한 것도 있다.
죄로 인한 어둠과 환난은 회개해야 한다.
거룩하게 하기 위한 어둠과 환난은 믿음과 인내로 잘 통과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늘이 할 일도 땅이 할 일도 여호와가 창조하신다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를 창조하였느니라”(사45:8)
하늘은 위, 땅은 아래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땅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하늘은 공급을 하는 곳이고 땅은 공급을 받는 곳이다.
하늘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공의를 뿌리고 구름도 하나님의 의를 부은다.
땅은 마땅히 마음을 열고 받아,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하늘과 땅이 마주쳐 울리며 열매를 맺을 때 참된 평화와 행복이 있다.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의와 공의를 이 땅에 뿌리시고 부으신다.
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이 법으로 표현된 것이고 심판의 기준과 내용이 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리고 하루살이만 지키고 낙타는 삼켰다.
의와 공의의 법은 율법에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다.
하나님은 또한 인간들의 양심에 이 공의의 법을 새겨 놓으셨다.
구원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하늘이 뿌려 주는 공의를 믿음으로 받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신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한다.
그리스도로 의의 옷을 입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땅은 마음을 열고 구원이 싹트게 된다.
구원이 씩트게 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면
이제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위에서 다 창조하시는 것들이다.
하늘과 땅이 마주쳐 울려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천국과 영생을 세워간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불러 증거를 삼으신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30:19-20)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하늘도 듣고, 땅도 들으며, 사람은 잊어도 이들은 증거하는 증인들이다.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고, 어느 것을 택할지는 인간의 책임이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사는 길이요, 복의 길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현대 교인들도, 하늘도 듣고 땅도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을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1:2)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늘과 땅을 부른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신32:1-3)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할 때, 하늘도 귀를 기울였고 땅도 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도 듣는 말씀이고 땅도 듣고 있는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불순종하는 것은 하늘을 부인하고 땅을 부인하는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하늘도 듣고 땅도 들으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말씀은 영원히 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40:8)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성경 공부와 성경 연구에 여러분의 시간을 내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복되게 하고 형통하게 하는 비결이다.
3. 진흙이 토기장이와 다툴진대 화 있을 것이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사45:9)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이 가르치시는 것으로 알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아니까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아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 불평하는 것이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감히 다투고 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냐고 감히 따진다.
네가 만든 것이 너한테 너는 손이 없다고 하고 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내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시50:21)
하나님이 회개하기를 바라고 기다려주는 인자하심을 모르고 까부는 것이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잠잠하셨더니 자기와 같은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책망하시고 죄를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실 것이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주님이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는 날이 온다.
심판 날에는 공명정대한 의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과 땅은 속일 수 없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거룩함과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동기와 의도와 목적까지 다 아신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사40:15,17)
피조물이며 유한하고 죄성으로 가득찬 인간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거룩하고 영이신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고 다툴려는 자체가 분수를 모르고 이성의 한계를 벗어난 망동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와 섭리와 심판을 부정하며 인간이 하는 일은 우상 숭배와 탐욕이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꾼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들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인간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자기에게 쌓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실 것이다.
표면적 명목상 교인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