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16장 장차 올 심판을 피하라

강대식 2020. 8. 10. 15:37

16 장 장차 올 심판을 피하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은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이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11:7)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 이 두 본문을 함께 제시하는 것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약 성도들이 요한복음 서문의 이 영광스러운 진술을 이해하고 우리 것으로 삼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밝히기 위해서이다.

첫째,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인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실히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 이것이다.

둘째,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자기 신분을 확신하지 못하는 자가 다른 이들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나님의 자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실례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 모두 믿음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다.(2:11)

 

선진들이 이로써(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하면서 아벨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1. 아벨의 사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11:4) 아벨의 비결은 하나님이 친히 그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데 있었다. 하나님이 친히 그 확신과 자신을 주신 데 있었다.

 

2. 에녹의 사례, 중요한 점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갔다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11:5) 하나님은 그를 데려가시기 전에 이미 그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그의 신분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알았다.(11:6)

이처럼 그들의 비결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확신하는 데 있었으며 승리할 수 있었다. 1:12-13을 자기 것으로 삼고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3. 노아의 사례,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장차 무슨 일이 생길지 정확히 아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11:7)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들은 모두 이 사실을 믿고 자기 것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확신했다.

 

- 노아의 삶과 행보는 특히 지금 이 시점에 유익하고도 중요하다.

1. 우리는 홍수 이전과 놀라울 만큼 비슷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세상에는 노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5-9) 노아의 비결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다. 동행했다는 것은 단지 행실이 의로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친구가 되는 특권을 허락하셨다는 뜻이다. 아무나 그와 동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한 점 의심 없이 알 수 있다. 노아는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시면서 말씀을 다시 한 번 반복하신다. 내가 홍수를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6:17-18)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궁극적인 증거가 이것이다. 하나님은 멸망이 임박했다고 경고하시면서 그러나 너는 아니다. 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라고 하셨다. 이런 말씀을 들은 사람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확실한 지식에 따라 움직인다.

노아의 사례는 하나님이 친히 확신을 주시면 어떻게 되는지 풍성히 보여준다. 이런 확신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이것은 최고의 확신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확신을 얻을 수 있으며 여러 시금석을 통해서도 확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신을 훨씬 뛰어넘는 확신이 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라고 하신 것처럼, 성령이 친히 주시는 확신이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다른 모든 인물이 그렇듯이, 노아의 비결 또한 이 복된 확신을 얻은 데 있었다.

 

2.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필요하며,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노아는 사방에서 몰아치는 악의 폭풍 한복판에서도 마음과 양심의 안식을 누리는 삶, 기쁨의 삶, 믿음의 삶을 살았다. 무엇이 그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노아는 의인이요 - “의인은 하나님의 의에 관심을 쏟는 사람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주님의 권면을 따르는 사람이다.(6:33)

당대에 완전한 자 - 죄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그가 올바르고 진실했다는 뜻이다.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뜻이다. 노아는 하나님 일에 전심을 바쳤다.

그 세대 중에(당대인들 중에)” - 당대인들의 모습은 하나님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실 정도로 그들은 악했다.(6:6) 그 당시 땅에는 내피림이라는 거인들이 있었다.(6:4) 온갖 가증한 짓을 저지르며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아는 당대인 중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과 동행 -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중대한 열망이자 최고의 소원이었으며 무엇보다 앞서 추구한 목적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 사귀며 그가 자신을 기뻐하심을 아는 것이었고, 그의 소원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노아는 당시 세상 및 당대인들과 구별된 사람이었다.

 

해석하기 어려운 탓에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2)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해석하여 천사와 여자들이 섞여서 낳은 괴물이 네피림이라는 자들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설명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벨 같은 사람들, 경건한 계보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다.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가인의 후손들, 경건한 자들과 불경건한 자들로 갈라졌다. 그들은 서로 섞여 살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그 구분이 흐릿해지면서 경건한 자들과 불경건한 자들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다. 결코 섞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한데 섞여 버렸다. 경건한 계보에 속한 자들까지 길을 잃고 변절하여 악을 행하는 무서운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노아는 달랐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는 세상의 정신에 지배당하지 않았고 그것을 본받지 않았다.

 

우리는 홍수 이전 시대의 특징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는 추악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제각기 정한 상대적 기준이 도덕을 대신하고 있다. 진리는 없으며,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전의 모습, 본연의 모습을 잃은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아벨과 가인의 무서운 혼합에 잇따른 참상을 보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살 뿐 아니라 이런 삶을 흡족히 여긴다! 노아는 이런 사람들 틈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세상을 본받지 않았다. 바르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성경은 그가 당시의 세상을 정죄했다고 말한다.(11:7) 그는 우리의 세상도 정죄하고 있다.

 

3. 무엇이 노아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 만들었는가?

믿음으로 노아는---” -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전부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노아의 비결이었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비결이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진리를 계시해 주셨다. 노아는 그것을 믿었고,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살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삶의 토대로 삼았다.

 

특히 그가 믿은 것은 홍수에 대한 경고였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으며 여러분은 혹시 요즘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식이라거나 근본주의라거나(청교도라거나) 그 비슷한 이름으로 부리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노아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노아는 주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으며 여전히 장악하고 계신다고 믿었다. 주변 상황은 잘못된 것이며 그런 상황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고 믿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멸망이 곧 온다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우리더러 죄의 삶을 산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보면 막고 싶지 않든지 막을 힘이 없는 거야이것이 당시의 주장이었고, 오늘날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과학의 진보와 발전을 자랑하며, 이처럼 대단한 인간이 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고 모든 상황이 정반대로 보이는데도 하나님을 믿었다.

 

노아 같은 사람이 되려면 노아처럼 믿어야 한다. 혹시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는 현대의 지식과 학식에 휩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공평하고 의로우신 분이 아니라 사랑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의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바울의 말을 묵살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땅에 나타나고 있음을 모르겠는가?

1:18-32을 보라.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를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이 무서운 일들을 오늘날 우리는 그대로 목격하고 있다. 하나님을 잊을 때 삶이 어떻게 되는지 현대인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원도 믿지 않는 똑똑한 인간, 제 힘으로 완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때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기독교회에도 똑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교회는 19세기부터 성경의 권위와 심판의 사실성 및 지옥의 존재를 의심해 왔다.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 경외함은 비겁한 두려움이 아니다. 경외함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과 정결하심이 얼마나 큰지 희미하고 흐릿하게라도 아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데 있다. 그 거룩하심과 영광을 일부 본 노아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떨었다. 노아는 경외함으로 행했기에 경건한 자가 되었다. 기독교는 주를 경외함으로 행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라는 것과 그 앞에서 자신이 몸으로 행한 일들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뵌 요한도 그의 눈은 불꽃같고---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라고 했다.(1:14,17) 교회가 이토록 육신적이고 잘못된 의미에서 확신과 자신감에 넘치며 명랑하고 경박하게 등만 토닥여 주고 있으니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4. 노아는 의를 전파했다.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우리도 의를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려 주어야 하며 그의 거룩하심과 정의와 진리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가 장차 모든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죄의 결과로 닥칠 일들과 그 일들을 피할 유일한 길을 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믿고 그 방법을 따르라고, 그리스도께 달려가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 가증한 일들로 가득한 세상 한복판에서도 노아가 거룩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은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자신이 그의 자녀임을 알았기에 계속 자기 길을 간 것이다. 세상의 맹목과 어리석음과 불신앙을 정죄한 것이다. 그의 본보기는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격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