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16 주일설교, '한나의 찬양', 삼상 2:1-8

강대식 2020. 8. 16. 19:19

2020-08-16 주일설교

본문: 삼상 2:1-8

제목: 한나의 찬양

 

1. 한나의 고난

 

한나의 고난을 모르면 한나의 찬양을 이해할 수 없다.

제사장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다. 하나는 한나요, 하나는 브닌나였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매년 실로에 올라가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을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다.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였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므로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한나가 울고 먹지 아니 하였다.

남편의 편애가 브닌나를 격분시킨 측면이 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결국 축복을 주시기 위한 전조이다.

광야에서 훈련을 하시는 것은 마침내 복을 주려 함이라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시는 과정을 잘 말씀해 주고 있다.

환난을 인내할 때에 연단이 이루어지고 그 연단이 소망 곧 축복을 이룬다.

고난을 통해 우리가 변하여 주님을 닮고 성숙해짐으로 축복을 받게 된다.

 

연단은, 바위 덩어리에 2그람만 금이 있어도 금광석, 그 금을 제련해 내는 것.

욥은 하나님이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 같이 되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올 때 속에서 낙심하고 불안해 하지 않아야 한다.

일시적으로 흔들릴 수는 있으나 이내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끝까지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여전히 찬송할 날이 오게 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고난을 주실 때마다 인내하며 연단을 이루지 못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대적하고 불평한 때문이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가

멸망을 받고 말았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목적을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훈련과 연단이었는데,

모세가 그렇게 가르치고 율법을 주셨는데도 마이동풍, 새겨 듣지 않고 귓등으로 흘리고 말았다.

 

고난을 주심은 여호와께로 돌아오고 말씀으로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재앙에 교인들은 하나님을 더 멀리하고 떡으로만 사는 데 급급하고 있다.

교회는 말씀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크고 화려하고 좋은 떡을 얻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고난의 목적을 알고 결과를 알고 인내하는 가운데 연단에 힘써야 한다.

말씀으로 살지 않는 곳에 연단 곧 변화와 성숙은 있을 수가 없다.

개혁은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전통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사도와 선지자가 가르친 전통, 청교도와 개혁자가 가르친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2. 한나의 서원

 

한나가 고난 가운데 괴로워하다가 인내와 연단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남편과 다툼도 끝내고 브닌나와의 격분도 끝을 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함으로 끝을 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

 

한나에게 인내와 연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저 아들만 달라고 기도하며 통곡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하던 아들이요, 불행의 근원이었는데,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서원한다.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것은 나실인 서원이요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엘리가 사사였고, 그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었다.

그 두 아들의 악행은 온 이스라엘이 머리를 흔들었고,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엘리에게 경고했는데도 잔소리 한마디 한 것으로 끝을 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삼상2:29-31)

 

사무엘이 처음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내용도 엘리 집안에 내리시는 저주였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삼상3:13-14)

 

한나가 아들을 평생에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은

그 당시의 제사장의 악행을 보면서 하나님이 제사장 아들을 필요로 하시는 것을

실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되어서 였을 것이다.

 

한나가 고난 끝에 인내와 연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18절도 증거하고 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기도와 서원은 고난의 인내와 연단으로 이루어지고

변화와 성숙, 그리고 뒤끝이 깨끗한 열매로 장식하는 것을 본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육신의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성령으로 하는 기도,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를 받으신다고 하였다.

육신, 곧 우리의 자아는 하나님과 원수이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회개할 수도 복음을 믿을 수도 없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린다는 한나의 서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얼마나 성령에 젖어야 하고 얼마나 말씀에 젖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우리가 얼마나 성령의 감동에 민감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육신 덩이라가 되어버린 늙은 엘리 사사는 한나가 통곡하며 서원기도하는 것을

술에 취한 줄로 알고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하고 있다.

한나가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아 통곡하고 서원한 것을 엘리는 영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엘가나 가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라마 집으로 돌아갔다.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1:19-20)

 

한나는 하나님께 한 서원을 성실하게 지킨다.

남편에게 하는 말이다.

아이를 젖 떼거든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서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1:22)

 

젖을 뗀 후에 여호와의 집에 데리고 가서 엘리에게 하는 말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1:27:28)

 

아들을 나중에 드릴 수 있는 핑계는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한나는 단호하게 서원을 지켰고, 그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으킨 충실한 제사장이 되었다.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삼상3:35)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은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

서원한 아들 하나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섯 배의 축복을 받은 셈이다.

 

3. 한나의 찬양

 

한나가 기도했다고 했지만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그의 평생을 드리고 여호와께 경배하며

드린 기도이며 찬양이었다.

 

유대인들은 모여서 이 한나의 기도를 암송하여 찬양하듯이 합창한다고 한다.

우리도 1절로 8절까지는 외어서 묵상하고 일상 속에서 읊조리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을 이루실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모세도 그러했고, 미리암도 그러했다. 다윗도 그러했다.

 

한나의 찬양은 주신 복, 아들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로 말미암아,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을 찬양한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2:1-2)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즐거워한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 뿔이 높아졌다.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내 입이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렸다고 하고 있다.

 

내 마음이 즐겁고 기쁜 것도, 내 뿔이 높아진 것도,

내 입이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린 것도, 다만 여호와로 말미암았음을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다.

 

우리도 그러한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에 그 모든 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았음을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았음을 감사하고 찬양하자.

헤브론에 오르며 이 한나의 찬양을 먼저 하나님께 올리자.

 

이제 한나는 이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를 찬양하며 경배한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으뜸이요 본질인 것이 거룩함이시다.

죄는 차마 볼 수 없으시고 완전한 순결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신 것이 의와 공의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입법적으로 나타나실 때 정의이고, 사법적 심판으로 나타나실 때 공의이다.

 

그 다음 속성이 선하심과 사랑이시다. 그 다음 속성은 신실하심이다. 미쁘심이다.

이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순서가 바뀔 때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이 네 속성은 서로 대립시키면 안 되고, 전체로서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거룩한 사랑이요 공의의 사랑이다. 거룩한 신실함이다.

우리도 이 네 가지 속성이 전체로서 하나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성숙이다.

 

하나님께 교만한 말 오만한 말은 통하지 않고 행한 대로 갚으심을 찬양한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3)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날 인생들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한나는 찬양한다.

주의 구원은 의인에게는 고난에 대한 보상이요 악인에게는 누림에 대한 심판이다.

용사의 활은 꺽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게 하도다.”(4-5)

 

인간의 운명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음을 한나는 찬양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도다”(6-7)

 

인생 역전의 극치는 거름더미에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심을 찬양한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우리는 한나의 고난과 기도와 찬양을 보면서 한나를 본받고,

우리의 믿음의 여정을 인내와 연단으로 소망을 이루기를 소원한다.

한나의 여정이 우리의 믿음의 여정 방정식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