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히브리서 강해', 17장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김영희)
제 17 장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 우리가 당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삶과 그에 수반된 상황을 어떻게 직면 할 것인가? 특히 알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성경은 삶을 다루는 책이다.
닥치는 모든 일을 어떻게 직면할 것인지 가르쳐 준다. 성경보다 더 실제적이며 오늘날에 부합되는 책은 없다. 물론 여기에는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말하게 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성경이 자기 방식으로 자기 메시지를 전하게 해야 한다. 성경은 가르침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도 알려 주는데, 이 두 가지가 다 귀하고 중요하다. 성경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은 즉시 역사를 제시하며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 지를 보여줌으로 그 질문에 대답한다. 성경은 단순한 이론이나 학문적 논의가 아니다. 성경에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우리와 똑같은 세상에 살면서 이 가르침을 적용한 사람들이 나온다.
히브리서 11장이 다루는 특정 주제가 이것이다. 이들은 유대 역사, 히브리인의 역사에 우뚝 서 있는 위대한 영웅들이다.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비결을 설명해 준다. 히브리서 11장을 쓴 이유는 이 편지를 받을 많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삶에서 곤경과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이것이다. “너희 문제는 삶의 기본이 되는 중심원리를 모르는 데 있다. 하나님은 항상 그 원리에 따라 자기 백성을 대해 오셨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의 원리에 따라 자기 백성을 대해 오셨다” 믿음이야말로 이런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 이 주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물인 아브라함을 살펴보자.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다. 그는 유대인의 신분을 떠받치는 절대적 토대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그는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갑자기 하나님이 그를 불러, 큰 유업을 줄 테니 떠나라고 하셨다. 단지 자신의 말을 믿고 과거와 결별하도록,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그를 부르셨다. 그곳이 어디이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것이 그의 큰 비결이었다. 그는 후에 “하나님의 벗”으로 알려지게 된다. 구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삶을 정복한 인물로 위대한 영웅으로 우뚝 서게 된다. 히브리서 11:8은 그 비결, 알지 못하는 미래를 직면할 수 있는 열쇠를 알려 준다. 아브라함은 그 원리에 따라 살았고, 11장의 다른 인물들도 그 원리에 따라 살았다.
1. 그 삶의 원리가 무엇인가?
① 미래를 전혀 알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뿐이었다. 첫 번째 원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직면하는 방식이다. 이 원리를 알면 더 이상 장래 일을 염려치 않게 된다. 갈 곳을 몰라도 나아가게 되며 무슨 일이 생기든 개의치 않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은 이 원리를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겪는 일만 내내 생각한다. 이런 의도로 출발하면 장차 일어날 일을 정확히 알려는 욕망이 과도히 커지면서 미래를 훔쳐보려 든다. 그래서 예언과 예측과 예견과 장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용기이며 삶을 직면하는 방식이다. 삶 자체와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겪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이미 잘못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갈 곳을 모르면서도 나아갔다.
젊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며 지나치게 불안해하며 장래 일과 미래의 행복에만 골몰한다. 그러다가 모든 일에 지치는 단계, 다 환상이었다고 느끼며 일종의 냉소에 빠지는 단계가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을 시간이 성큼성큼 흐르며 모든 것이 급하게 스쳐 지나가는 단계로 현재를 붙잡기도 급급한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다 삶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초래되는 결과이다. 가질 것에 너무 집착하다가 이렇게 되는 것이다. 거짓 희망과 불필요한 불안 및 실망에 희생되고 있다. 불안은 현재 다른 어떤 질병보다 확연히 나타나는 질병이다.
아브라함은 미래를 전혀 염려치 않았지만, 우리는 장차 생길 일과 그 대비책을 정확히 알려 들므로 긴장해 버린다. 그러나 성경은 시종일관 다른 원리를 가르친다.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장차 생길 일을 미리 알아내고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기독교회 안에 있는 많은 이들의 생각, 즉 ‘장차 생길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애쓰며, 미래를 예측하여 사람들을 대비시키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는 생각보다 더 성경의 가르침에 심히 위배되는 것은 없다. 성경 메시지는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메시지,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똑바로 붙잡아 줄 수 있는 메시지이다. 이런 메시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아브라함은 갈 곳을 모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나아갔다. 일종의 철학적인 평정심 내지 체념의 정신이었기 때문인가? 그런 소극적 체념은 기독교의 방식이 아니다. 기독교는 일종의 철학적 초연함이나 평정심 내지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 걱정을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다’라는 운명론이 아니다.
기독교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갔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누구와 가는지 알고 나아갔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비결이었다. 갈 곳이 어디냐는 염려치 않고, 하나님이 함께 가시느냐만 염려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의 중대한 원리이다! 하나님만 함께 가시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아브라함이 힘차게 길을 떠난 것은 누가 자기와 함께 가시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삶과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직면할 때 중요한 것은 이 한 가지뿐이다. 우리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나눈 교제의 성격을 생각해 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전부 그런 교제를 누릴 수 있다. 기독교는 단순히 개념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 우주의 창조자,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사귀며 교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강한 능력을 깨닫는 특권이여!
이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쏟으시며 염려하시는 하나님, 이런 분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심만 안다면 무슨 일이 생긴들 문제가 되겠는가?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큰 계획과 선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②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그의 성품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친히 계시해 주셨다. 그래서 갈 곳을 몰랐지만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고후6:10).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5:5)
③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성격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하나님은 길을 떠나 유업으로 주실 땅에 도착할 때까지 생길 일들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려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삶의 절대적인 기초이다. 중요한 문제는 올해 무슨 일이 생기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영원히 지내느냐 하는 것이다. 여정이 아닌 목적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세상은 중요치 않다는 말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일종의 예비학교와 같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외국인과 나그네”이다.(히11:13) 우리가 받을 유업은 따로 있다.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많은 아들들에게 주시는 영광이야말로 우리의 유업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장차 임할 “영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마침내 시간 너머 저 영원한 영광 가운데 펼쳐진 바닷가에 서게 될 때, 세상은 그저 작게 보일 것이다. 세상에 명멸했던 모든 일들이 일고의 가치조차 없이 하찮게 보일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일에 참여하는 것, 오직 이것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들었기에 갈 곳을 모르면서도 나아갔다.
④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다. 그가 우리를 영광으로 데려가신다는 확신이 있다.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아는 사실은 하나님이 절대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고 많은 일들이 명멸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빛들의 아버지”로 계신다는 것이다.(약1:17) 시간은 영원의 이마에 어떤 주름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그의 복되신 아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13:8)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그 거룩하심과 공평하심과 의로우심과 불변하심과 영원하심 때문에 그의 약속이 확실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결코! 그는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든 함께 하실 것이다. 그가 함께하시면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다.
가까이 계신 주 축복하시니
가까이 있는 적 두렵지 않나이다.
불행도 무겁지 않고
눈물도 쓰리지 않나이다. - 헨리 라이트 -
⑤ 우리가 만나는 어떤 일도 하나님보다 강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알지 못하여 인간의 능력을 많이 고려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인생길에서 만나는 어떤 일도 그보다 클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무슨 일 만나든 하나님보다 강하지 않다는 사실, 여러분을 그의 능력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확신해도 좋다.
올 한해가 어떤 이들에게는 무서운 역경의 해가 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아무 상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롬8:28) 바울은 롬5:1-4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과 이 관계만 유지되면 시련과 환란이 닥쳐도 기뻐할 수 있다. 그 시련 때문에 오히려 더 사랑하는 분의 품으로 달려갈 것이며, 전에 몰랐던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역경을 겪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13:6) 하나님의 성품을 살펴보면 무슨 일이 생기든 “주는 나를 돕는 이시라”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비결이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누구와 가는지 알고 나아갔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한다. 그는 고향과 조상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이런 믿음과 승리와 기쁨의 삶, 하나님과 함께하기에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삶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안전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용서와 죄사함을 받으라. 죄 많은 세상에서 떠나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라. 그가 기뻐하는 삶을 살라. 성령의 인도에 복종하라.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 그리고 이렇게 아뢰라. “내 인생 주의 손에 있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모든 염려를 주저 없이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
하나님과 동행하자. 그를 알고 그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