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 주일설교, '마음의 완전함, 손의 능숙함', 시 78:70-72
2020-09-27 주일설교
본문: 시 78:70-72
제목: 마음의 완전함, 손의 능숙함
1. 하나님은 양의 우리에서 다윗을 취하셨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왕이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도 다윗의 영원한 왕권으로 상징되고 예표되고 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는 영원히 보전되지 못하고 그 왕위도 영원히 견고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집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
그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을 예언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상징할 왕을 택하시는데
하나님은 왕족이나 귀족의 가문에서 택하지 않으셨다.
그의 백성 야곱, 그의 소유 이스라엘을 기르게 할 왕을 선택하는데
세상이 알아주는 가문이나 무리 가운데서 택하지 않으셨다.
‘양의 우리에서’ 택하셨다.
양 치는 목동들 중에서 택하신 것이다.
목동은 알아주는 직업이 아니었고 천시하는 직업이었다.
우리 주님도 신약시대의 교회를 맡길 12제자를 택하시는 데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않고 갈릴리로 가셨고
귀족 명문의 사람들이 아니라 어부들, 세리를 택하셨다.
사람 보는 기준, 사람 택하는 기준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얼마나 달라야 하는지를 깨우쳐 준다.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한다.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을 폐하려 하시니라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티비 영상시대가 되어서 사람들은 그 영향으로 외모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외모만 보고 중심은 보지 않다가 큰 코 다치는 경험들을 많이들 하고 있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 사람과 오래 친숙한 사람들의 평판을 들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사무엘 선지자 같은 지혜로운 사람도 다윗의 형들을 외모만 보고 왕으로 택할 뻔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도 사무엘 사사가 집에 오는데 여덟 째 아들은 불러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몰라 주는데 하나님은 알아주는 사람이 다윗이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서러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언제고 크게 빛 볼 날이 반드시 온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지 사람이나 세상에 두어봐야 별 볼 일 없다.
모세는 나이 40에 왕궁에서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장인 이드로도 아내 십보라도 그의 장래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 80이 되도록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돌보며 그대로 끝나는 인생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십년이 차매’ 그를 부르셨고,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셨다.
그를 괴롭힌 날수대로 화를 당한 연수대로 그를 기쁘게 하셨고 위대하게 쓰셨다.
모세의 기도대로 이루어졌고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이루었고 구약을 대표하게 되었다.
‘양의 우리’의 시절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심도있게 표현한 것이 시 23편이다.
여호와가 나의 목지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지만 주께서 함께 하시니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해 주신다.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면, 하나님은 내 원수가 보는 가운데서,
잔치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시고, 내 잔이 넘치게 하신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통과하게 하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요,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면 주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내 축복의 잔, 영광이 잔이 넘차게 해 주신다.
모세와 다윗의 축복, 아브라함과 요셉과 욥의 축복이 다 이 과정을 통과하였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신다.
2. 다윗은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그들을 길렀다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마음의 완전함은 성품의 성숙이요 장성한 자의 성품이다.
아들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셨다.
아들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 주님의 성품과 삶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지 않는다면, 그는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성품을 이루어 가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면 새로운 출생이요 새로운 시작이다.
회개함으로 우리는 옛 사람의 성품과 삶을 버린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마음의 완전함을 이룰려면 옛 사람의 성품과 습관들을 하나씩 버려가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띠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헌 옷 벗듯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고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따른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따라 갈 수 없다.
새 사람을 입을 수 없다.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속 사람이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의가 자리하고 있는지,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함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성경 지식이 많으면서도 의와 거룩함은 없을 수 있다.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지 않는다면 자기 신학으로 주의 주장으로 끝날 뿐이다.
의로워봐야 겉만 의로운 바리새인의 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의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마음의 완전함을 이루어 갈려면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만 스승에게 배워서는 신학 지식은 풍성해져도
신앙의 성숙, 마음의 완전함,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혁주의자는 되어도 개혁자는 될 수 없고,
청교도주의자는 되어도 청교도는 될 수 없다.
복음 진리로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는 아버지 스승에게 배워야 개혁자 청교도가 될 수 있다.
요즘 조엘 비키가 쓴 ‘청교도신학의 모든 것’, 1100페이지가 되는 책을 읽고 있다.
정보와 지식과 역사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로이드 존스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 한 편 읽고 오는 감동을 찾아 볼 수 없다.
학자의 특징이요 한계라 본다.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되는 역사, 심령이 새로워지는 역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역사는
역시 아버지 스승의 책과 설교를 읽음으로 얻을 수 있다.
마음의 완전함을 이루어 갈려면 골로새서 1장 마지막 절 말씀을 심비에 새겨야 한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8-29)
다윗은 어릴 적부터 마음이 상당히 성숙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지 않고 주의 증거들에 향하는 마음가짐이 주효하였다.
“폐하시고 다윗을 욍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13:22)
그러한 다윗이지만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며
마음의 완전함을 이루게 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여느 통치자들과 달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를 따라 공의와 정의로 나라와 백성을 통치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을 축복하시고 높이 세워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고
그의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게 하셨다.
3. 다윗은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다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마음의 완전함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손의 능숙함이다.
마음의 완전함이 성품이라면 손의 능숙함은 능력이다.
어떤 사람은 성숙을 성품과 능력의 균형이라고도 한다.
마음의 완전함만 가지고는 뜻을 실행에 옮기거나 성취할 수 없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물매의 능숙함이었다.
양 떼를 지키며 곰과 사자들과의 싸움에서 훈련하고 연단된 솜씨였다.
맡긴 일을 충성을 다해 완수할려면, 치밀한 계획과 손의 능숙함이 필수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얼마나 오랫동안 손의 능숙함을 익히는지 볼 수 있다.
설교도 가르침도, 사실은 배움도, 손의 능숙함이 있어야 한다.
뭐든지 10년은 해야 기본을 터득한다.
모세 광야 40년은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을 이루게 했다.
미디안 광야 40년 익숙함이 이스라엘 광야 40년을 익숙하게 잘 인도하게 하였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손을 능숙히 하는 데 게으른 사람은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다.
연한과 밥그릇 수만 내세우는 사람들은 머지 않아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중학교 영어 책에서 옛날에 본 얘기이다.
오래 근무한 사람은 자기가 승진할 줄 알았는데 얼마 안된 신입이 승진하였다.
사장은 화가난 그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세 번을 갔다 와서야 보고가 완료되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똑 같은 심부름을 승진한 신입에게 시켰는데 한번으로 보고가 완료 된다.
손의 능숙함을 기르지 못하면, 어느 분야에서도 큰 일을 맡거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청교도 신앙을 십년을 배워도 거의 진전이 없고 능숙이 없는 사람들을 본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훈련을 스스로 전혀 하지 않고 귀동냥만 하면 그렇게 된다.
우리의 손이 익숙해져야 하고 능숙해져야 하는 것은 청교도 신학이 아니고 청교도 신앙이다.
청교도 신앙이 청교도 신학으로 표현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청교도 신학만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청교도주의자가 될 뿐이다.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고 상호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마음의 완전함을 이룬 자는 손의 능숙함도 아울러 이루어야 하고,
손의 능숙함을 이룬 자는 마음의 완전함도 아울러 이루어야 한다.
게으른 자는 마음의 완전함도 손의 능숙함도 이룰 수 없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한다고 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는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고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다.
하나님은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택했다.
출신과 혈통과 가문과 학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그 마음이 탐욕을 향하지 않고 진리를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손의 능숙함만을 가지고 바벨탑을 쌓을려고 한다.
마음의 완전함이 없는 손의 능숙함은 결국 자기 운명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마음의 완전함만 있고 손의 능숙함이 없다면 그 또한 절름발이이다.
마음의 완전함과 함께 손의 능숙함을 길러야 한다.
때가 차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크게 쓰실 것이다.
다윗의 얘기가 내 얘기가 될 수 있기를!
“내 소유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였더니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잘 지도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