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복음으로 인도한다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해져야 한다/ 로이드 존스
율법은 복음으로 인도한다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해져야 한다/ 로이드 존스
무엇이 복음의 메시지인가? 오늘날의 교회는 청교됴들이 강조했던 선한 ‘율법의 사역’이 아니라 무작정 좋은 소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요즘 교회의 문제는 율법의 사역을 무시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회개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친구로 생각하며, 머리를 곧게 쳐들고서 생명의 길을 걷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율법의 사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율법은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한다. 율법의 사역 없이는 참된 회심이 있을 수 없다. 먼저 율법을 들어야, 즉 자신의 실상을 깨달아야 비로소 영광스런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의 끔찍한 실상과 처지를 깨우쳐 주고 나서 예수님에 관해 말한다.
교리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문제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이다.
복음의 시작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십자가의 대속, 부활, 심판의 재림를 가르쳐야 한다. 복음은 말로 전해져야 하고 이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복음의 메시지는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져야 한다. 바울을 비롯하여 역사상 참으로 위대했던 복음전도자들이 비결이다. 이것이 18세기에 등장한 개신교 지도자들과 청교도 설교자들, 휫필드와 같은 복음전도자들의 비결이었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혔고, 그들은 단지 도구이자 통로에 지나지 않았다. 전능하신 하나님, 곧 성령께서 그들을 사용하여 듣는 자들의 생각과 마음과 양심에 그들의 말을 심어주셨다. 그들은 큰 확신으로 그 일을 행했다. 그들은 그 어떤 술수나 방법도 동원하지 않았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그는 아첨하는 말로 청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다. 개혁과 영적 부흥이 일어난 시대에 교회와 설교자들은 항상 그랬다. 우리 역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희망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과 성령의 능력만을 신뢰하며, 기꺼이 세상에서 비웃음과 조롱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 모두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해진 복음을 통해 일어난 변화였다. 그들은 거듭났다. 그들을 새롭게 되었다. 완전히 변했다. 하나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빛내는 성도들이 되었다.
묻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본보기가 되고 있는가? 이웃들과 동료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는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본보기가 되며, 사람들의 호기심과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교회 안에서 영적 부흥과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설교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는 신자들, 곧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복음이 드러나야 한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복음의 메시지를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들에게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부어 달라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참된 영적 각성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 무한하신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금 하늘의 문을 열어 복된 소낙비를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실 때까지 기도를 쉬지 말자. 이것이 1세기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될 수 있었던 방법이요,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오 주님! 주님의 사역을 회복하소서. 주님의 능하신 팔을 드러내소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음성으로 말씀하소서. 주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듣게 하소서. 오직 주님께만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영원히 돌리게 하소서. 아멘.’
로이드 존스, 『영광을 바라보라』, pp 198-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