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8 주일설교, '거룩한 형제들', 히 3:1-6

강대식 2020. 11. 10. 17:45

2020-11-08 주일설교

본문: 3:1-6

제목: 거룩한 형제들

 

1. 우리는 함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3:1)

하늘의 부르심을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도, 함께 구원 받은 형제들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자들은, 때가 되면,

하늘의 부르심을 받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8-30)

 

구원의 순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귀한 성경 구절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을 하나님은 부르심을 입게 하신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미리 아신 자들이 따로 있다.

모든 사람이 아니다. 교회 나오는 모든 사람도 아니다.

아직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 중에도 미리 정한 자들이 있다.

 

외적인 부르심은 누구나 다 받는다.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4)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반적 부르심이 외적 부르심이다.

 

외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중에 반응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성령께서 내적으로 부르신 사람들이다.

효력있는 부르심이라고도 한다.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1:2)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고전1:23)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벧전2:9)

그들이 구원받을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효력있게 부르신 것이다.

 

효력있는 부르심은 내적이고 영적인 부르심이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6:63)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 성령의 역사 없이는 어떤 사람도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내적인 부르심은 영혼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말한다.

이 성령의 역사는 즉각적이고, 영적이며,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이다.

 

이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어떤 참된 영적 행동도 할 수 없다.

진리의 도덕적 영향을 받게 되는 정도가 아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 안에 새로운 영적 행동의 원리를 만드신다.

 

주께서 그(루디아)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16:14)

주님은 그녀의 마음에 뭔가 내적인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다.

외적인 부르심이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변한 것이다.

 

성령은 나를 때리거나 강요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인도하시고, 설득하시고, 나의 의지에 작용하셔서 복음의 부르심을 효력있게 만드신다.

내 의지에 작용하여 바라고 기뻐하고 사랑하게 만드신다.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4:14) 사람들은 부르심의 교리에 관심이 없다.

나는 교리에 관심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데,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잘못된 교리를 믿는 이유이다.

조만간 그들은 최신 사이비 종교나 이단을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모든 삶의 과정을 그분이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신다. 걱정할 것이 없다.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한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목적은 정해져 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이다.

그것이 다른 말로 하면 성화이고, 거룩이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늘에는 관심이 없고 땅의 것에만 관심이 있다?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 성화와 거룩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에만 관심이 있다?

그 사람은 과연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일까요?

 

거룩과 성화는 다른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다니는데 도무지 성품과 삶에 있어서 변화나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보통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내적 부르심에 문제가 있고, 결국은 그의 구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내적 역사와 부르심이 있었다면, 변화는 필수적이고, 없을 수가 없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만이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거룩한 형제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면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거룩한 분이시다.

그 거룩이 공의와 정의로 나타나고 사랑으로 나타난다.

거룩한 형제들은 아들의 형상을 닮아, 공의와 정의로 살고, 사랑으로 살아간다.

 

거룩한 형제들에게 광야의 고난과 연단이 많은 것은

거룩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거룩의 열매가 영광과 축복이다.

 

축복과 영광을 목적으로 추구할 때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고 있고, 거룩을 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의로 진리는 막는 모든 불경건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2.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따라간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습관을 형성하고 운명과 환경을 결정하고 만다.

하루 종일 주로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사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 부르심의 목적인 아들의 형상을 닮지 못하는 것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믿는 도리 곧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사도 곧 보냄을 받은 자로 오셨고,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단번에 드림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우리의 중보자시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기도 하신다.

 

그분은 그리스도 곧 만왕의 왕이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선지자적 사도이셨고,

자신의 몸을 구속 제물로 드리신 제사장이셨다.(삼중직)

 

그냥 교회만 다니고, 그냥 예수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하셨는지, 성경을 통해, 교리를 알고, 믿어야 한다.

우리가 믿는 모든 도리를 가르치시고 완전하게 하신 분이 그분이시다.

 

말씀을 떠나서는, 교리로 정리된, 확실한 말씀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만든 하나님,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무지는 경건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단의 어머니라고 했다.

 

지성에 차이가 없으면 삶에 차이가 날 수 없다.

지성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

특히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우, 거룩한 형제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성경의 교리를 우습게 알고 무시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무식을 폭로할 뿐이다.(부흥사들)

반지성적인 복음은 항상 만병통치식 즉석 처방이나 내놓고 사기치는 텅빈 복음일 뿐이다.

영의 생각만이 생명과 평안을 낳지, 육신의 생각은 아무리 화려해도, 사망을 낳을 뿐이다.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고 연합이 이루어진다.

거룩한 형제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런데 한 영으로 연합되고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머리를 떠나 어디로 떠내려 가겠다는 것인가?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믿는 도리도 제대로 알 수 없고, 은혜와 진리도 그분으로부터 공급받지 못한다.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불안에 빠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고, 공급 받을 수도 없다.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결과, 고난과 징계만 깊어질 것이다.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때,

위의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때, 그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적신이나 위험도 칼도 무서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자기 앞에 당한 경주를, 잘 달려갈 것이다.

 

3.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3:6)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로서,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기 위해,

모세와 비교하여, 주님의 신실하심을, 오늘 본문은 설명해 주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고 하나님께 신실하여 영광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다는 것이다.

주님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 하다.

 

마치 집 지은 자가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는데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을 닮은 거룩한 형제들인 우리가 그 예수를, 사도로 대제사장으로 깊이 생각하고,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요, 그 집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확신하고 자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끝까지 굳게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데 그것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고

그것들을 확신하고 자랑하고 있는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늘을 보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신다.

땅의 것만을 구하는 자들은 우선은 되는 것 같아도, 멸망으로 끝이 나고

세상과 벗된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은

그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고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을 더해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약속에 두어야,

그리고 확신을 가져야,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시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찬송하게 될 것이다.

 

세상 방법으로, 세상 지혜로, 형통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성경은 그것을 악인의 형통이라 한다.

풀과 같이 베어지고, 채소 같이 시들어지고 등불이 꺼질 날이 쉬 오고야 만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시는 분이시다.

복과 형통을 오래 오래 누릴 수 있는 그릇을 먼저 만드시느라

오래 걸리고 고난과 연단이 많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받을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비하면

우리의 고난은 잠시이고 가벼운 것이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