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7 주일설교, '베뢰아 사람들', 행 17:11

강대식 2021. 1. 17. 12:33

2021-01-17 주일설교

본문: 17:11

제목: 베뢰아 사람들

 

1. 그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노블하였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17:11)

 

더 너그러웠다를 영어 성경은 더 노블하였다’(more noble)고 번역하였다.

그 아래 설명을 보면 더 너그러웠다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노블은 고귀하다. 품격이 있다. 귀족적인 모습을 가리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기에 노블은 고귀하고 품격이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절대군주제가 혁명으로 무너지고 공화국으로 직행하였다. 피를 많이 흘렸다.

그러나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 평화롭게 이행한 것은

노블 곧 귀족들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희생이 있어서였다고 할 수 있다.

 

더 고귀하고 품격이 있는 노블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노블한 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의무를 솔선해서 수행할 때 이루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부와 권력과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이 말은 사회 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사회 지도층이 온갖 특권을 동원해 이득을 취하고 서민을 울리고 분노하게 할 때

비판적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14세기에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를 당한다.

1347년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원병이 없어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즈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된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 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했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고귀하고 품격이 있는 노블은 그 의무와 희생과 책임을 다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라마다 역사를 보면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행한 노블들이 있어 왔다.

그런데 그런 가문들이, 그런 나라들이, 오래 번영하고 빛을 발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가문들의 종갓집들이 5,6백년씩 존속한 것을 본다.

귀족들이 솔선하여 임진왜란 때, 일본에 나라가 합병되었을 때, 의병을 일으켰고,

재산을 내놓았고, 자식들을 희생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

경주 최부자는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자가 없게 하라며 만석의 3분의 1을 내놓아 실천했고,

흉년에 논밭을 사지 말라 하고, 진사 이상 벼슬을 못하게 하였다.

역사는 그런 가문들이, 그 후손들이, 복을 받고 존경을 받고 사회에 기여한 것을 말해준다.

 

기독교는 순교자들의 희생과 실천 위에 세워졌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 위에 세워졌고,

주님의 교회는 자기 피로 사서 세우셨다.

 

귀족이 다 귀족이 아니고,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닌 것이다.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 예수를 팔아 치부하고,

음부의 권세의 지배를 받고, 많은 사람들을 큰문 넓은 길로 지옥으로 인도하는 자들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다는 것은

그들이 더 노블하였다는 것,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블리주가 없다면 노블도 없고 귀족은 그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악행의 주인공들은 유대인들이었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회당에서 전파하는 바울과 실라를 시기하여

저자의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였고,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가서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렀다하고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하고 고발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였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그들보더 더 노블하였다.

베뢰아 사람들의 노블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지 못하면 노블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말씀을 받는 간절한 마음이 없어서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

말씀을 받는 간절한 마음이 없으니까, 성경을 멀리하고, 교회를 멀리하고,

설교를 들어도 졸게 되고, 마음은 말씀과 멀리 떨어진 콩밭에 가 있게 된다.

 

영어 번역은 간절한 마음‘all readiness of mind’라고 하였다.

마음이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다는 것이다.

달리기 경주 때 심판은 레디 땅’(출발) 한다.

레디, 준비가 완전히 되어야, 달려나갈 수 있다.

 

마음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질 않으니,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지 못한다.

청교도들은 주일 전날 밤부터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일들을 멀리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평온하고 잘 준비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모든 준비를 갖춘 마음, 마음의 준비가 철저히 된 마음, 그 마음이 간절한 마음이다.

그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 마음이 옥토가 되어 있었기에,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럽게, 곧 더 노블하게 될 수 있었다.

말씀을 옥토에 받아 백배 육십배 삽십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모든 준비를 갖춘 마음이 없는 밭은 길바닥 같은 밭이거나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이 덮힌 밭이어서, 말씀을 받아도, 아무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돌맹이와 가시덤불만 무성하니 좋은 열매 맺을 수 없다.

 

마음의 준비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을 맡겨도 많은 시행착오와 낭비와 세월만 까먹는다.

한번에 마칠 수 있는 일을 여러번 헛수고 하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내버린다.

나이든 고참은 세 번 다녀와야 될 일을 젊은 신입은 한 번으로 끝내는 일화가 교과서에 있다.

 

마음의 철저한 준비, 모든 준비를 잘 갖추는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어떤 성과도 낼 수 없고, 주의 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다고 하였다.(10:26)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은, 사람에게, 누가 일을 맡기며 오래 함께 살려고 하겠어요?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하고, 준비성이 전혀 없고, 병든 닭처럼 졸기를 잘하고,

건수만 있으면 빠져 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길바닥 밭, 돌 밭, 가시덤불 밭이다.

 

일을 맡기면 부족함이 없도록 미리미리 준비하고 세심하게 살피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간절한 마음을 갖춘 사람이고,

다윗처럼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항상 모든 준비를 갖추는 마음, 그 마음이 간절한 마음이고 옥토이다.

그 마음이 없이는 완전한 마음을 이룰 수 없고,

마음의 완전함이 없으면 손의 능숙함도 이룰 수 없다.

손이 능숙해질려면 마음의 완전함, 간절한 마음이 필수 조건이다.

 

베뢰아 사람들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의 갖추어야 할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전에야, 옛 사람이야, 그랬어도, 이제,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살고,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면,

데살로니가 사람들 같은 습성들은 버려야 한다.

 

충성되이 여겨 일을 맡기지만, 충성은 모양만 있고, 그 안에 실질이 없다면,

마음의 온전한 준비와 손의 능숙함이 없다면, 그 일을 끝까지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의 몫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헤브론에 오르기를 기도하고 구하고 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마음의 준비를 온전히 갖추지 못하고, 손의 능숙함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런 의미의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망칠 것이고,

허점들이 드러나고, 원성과 불만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준비가 안 되면 쓸 수가 없다.

대충대충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일을 맡았다가도, 그 자리 오래 보전할 수 없다.

 

마음의 간절함, 마음의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가르치는 자도 듣는 자도, 마이동풍, 우이독경이 되고 만다.

말 귀에 동풍이 스칠 뿐이고, 소 귀에 경을 읽어주는 날들이 되고 말 것이다.

 

헤브론! 준비 되어야 올라 간다.

준비가 부실하고, 임하는 자세가 부실하고, 병든 닭의 조는 모습이어가지고서는,

나이 85세가 된 갈렙이 철옹성 거인들이 사는 기럇 아르바를 향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는 기상과 용기와 준비가 없어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다.

부모 처자식 형제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망대 하나 세우는 것도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잘 계산해 보아야 한다. 준비를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고 보는 자들이 다 비웃을 것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린다고 하셨다.

 

기도만 하고, 구하기만 하고,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느혜미야는 사람들에게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며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게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파수하느라 옷을 벗지 않았고 물을 길으러 갈 때도 병기를 잡았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원수들이 떼를 지어 위협하고 방해했지만, 52일만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완성할 수 있었다.

 

3. 그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상고했다는 것은 자세히 연구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이 없다면 마음으로 끝나고 손의 능숙함도 못 이루고 성벽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떡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매일 성경을 상고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그래서 고난이 많고 하나님이 돌이키실려고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시는 것이다.

 

허덕허덕 겨우 풀칠이나 하고 사는 것이, 말씀으로 돌이키는 작업인 줄을 모르고,

더 더욱 떡에만 매달리고 집착한다. 더욱 높아질려고 발악 수준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좀과 동록에게 도둑에게 다 빼앗기고 만다. 스스로 쌓은 바벨탑에 자기가 깔려 죽는다.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하였어도,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나도 성경을 붙들고 매일 연구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이 작업이 없다면 사도 바울의 가르침도 우이독경, 마이동풍이 되고 만다.

그래야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낮추신 것 높여주시고, 주리게 하신 것 풍성하게 해 주신다.

 

말씀도, 가르침 받은 것도, 반드시 가서, 성경을 찾아가며 복습해야 하고,

공부하러 갈 때 멍청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꼭 미리 읽어보고 예습하고,

간절한 마음, 모든 것이 준비된 마음으로 가서, 말씀을 받고, 가르침을 받으면,

졸리는 것이 아니라, 눈이 더욱 빛이 날 것이고, 마음은 은혜로 영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가르칠려고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의, 십분의 일만 준비해도,

자세와 진보가 매일 달라질 것이다. 하면 할수록 말씀으로 사는 습관이 쌓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베뢰아 사람들이 했던 일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좋은 습관이다.

그렇게 하여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은 이루어진다.

 

데살로니가인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베뢰아인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노블한 사람, 베뢰아 사람이 결코 될 수 없다.

 

베뢰아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온전히 모든 준비가 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마음도 그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어도,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나도 매일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베뢰아 사람의 믿음과 자세와 삶이 우리의 믿음과 자세와 삶이 되어야 한다.

다윗과 느혜미야의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을 본받아야 한다.

갈렙의 그 거대한 산지를 정복하는 자세와 용기와 준비를 본받아야 한다.

그러할 때 헤브론은 우리의 축복이요 영광이요, 주님의 영광이요 찬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