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하나님과 자신과 인생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고 그 결과 행동의 변화가 따른다/ 로이드 존스
회개는 하나님과 자신과 인생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고 그 결과 행동의 변화가 따른다/ 로이드 존스
복음 설교에 있어서 회개의 문제는 언제나 가장 먼저 놓아야 한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원칙이다. 무엇보다 먼저 복음은 우리더러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주님께서 어느 곳에 가시든지 사람들은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청천벽력처럼 회개하라고 강조했다.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의 사역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설교하는 것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순서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복음 전도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스도께 인도하면 회개할 것이라는 식의 개념이 일반화 되었다. 그러나 성경 자체가 그 순서를 뒤바꾸는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흥과 각성의 매우 위대한 시대마다 교회의 설교를 특징짓는 것이 바로 그 성경적인 순서였다. 오늘날 죄의식의 증거가 현격히 적은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자기 죄를 깨닫고 우는 사람을 보는 것이 드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자기 자신의 죄인됨을 의식하고 영혼의 고뇌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드물다. 회개에 대해 설교하지 않으면 그러한 일을 기대할 수 없다.
회개가 뜻하는 바를 살펴보기 위한 매우 편리한 방식은, 두 낱말을 함께 연결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회개라는 말이 파생되어 나온 라틴어 단어와, 회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헬라어 단어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다. 라틴어로 “Repent”는 “다시 생각하다”는 뜻이다.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멈춰서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말의 효과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효과이다. 다시 생각하지 않고서는 어느 사람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 둘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포도원에 갔다.
분명히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 두 번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회개했다는 것이다.
회개라는 헬라어는 “마음을 바꾸다”는 개념을 전달한다. 다시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다른 결심을 하고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처럼 두 번째 요소가 있다. 세 번째 요소도 동등하게 분명하다. 회개는 행동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생각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 뿐만 아니라 행동의 진로를 바꾸는 것도 포함한다. 또한 그 사람의 삶의 전체적인 방향과 습관의 변화를 함축한다.
우리가 회개할 때 마음을 바꾸고 행동의 진로를 바꾸는데 무엇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게 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육신의 생각들은 그릇되고 무가치하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대하여 전적으로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사람이 회개할 때 처음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회개는 에덴 동산에서 일어났던 일의 정반대이다. 하와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관점이 세상 속에 들어 왔다. 회개는 그 모든 것의 정반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를 단순히 행동의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술을 끊거나 음행을 멈추는 등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회개라고 행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의 결과이지 시작은 아니다. 시작은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서의 변화이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철학이나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께 이르는 논증의 차원에서보다 성경 계시의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요점이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전적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매우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들을 바꿀 필요가 있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알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비열하기 짝이 없으며 죄로 가득한 자구나! 나는 정말 불의하구나!”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회개한 사람은 그런 식으로 말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제까지 자신에 대해서 대단하게 생각하였고 자신을 추겨세웠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많은 허물이 있지만, 자신에게는 전혀 흠결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옛 퓨리탄이 표현한 것 같이 그는 알기 시작한다. “나는 부패덩어리에 지나지 않구나.” 다른 말로 해서 그는 자신을 곪아 터진 종창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 대하여 성경이 바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됨됨이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사실을 인식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다니 말이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회개이다. 세 번째로 그는 다른 모든 것데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인생에 대한 전체 관점이 달라진다. 사람이 회개하는 순간 이 세상에서의 인생에 대한 관점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빛 아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본다. 이제 그는 인생이란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순례라는 사실을 안다. 이제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짐승처럼 살던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보내 버린다. 아니! 그는 이제 사람이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된다. 히브리서 11장에 묘사된 저 위대한 사람들처럼 그 사람은 인생을 순례길, 나그네길로 본다. 그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순례 길을 가고 있다. 삶과 죽음과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그의 관점이 전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한 부분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결과로 그의 행동이 매우 심오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제가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인데 행동과 행실은 회개의 “마지막 결과”라는 점이다. 회개의 시작이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행동과 행실은 필연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나님과 사람, 인생과 죽음, 심판과 영혼, 이 모든 엄청난 것들에 대한 관점의 변화 때문이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회개힐 수 없다.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왕하22:19).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이 연하고 부드럽게 되었기 때문에 그를 용서해 주셨다. 주께 복종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한 사람 뿐이다. 거듭날 때 우리에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한다. 에스겔 선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11:19). 돌 같은 마음은 절대로 부드러워질 수 없다. 그것은 고정되고 굳어진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은 반응을 나타낼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의 변화, 새 마음을 필요로 한다. 반응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이 주어진다.
-로이드 존스, 로마서 강해 8권, 5장, pp 96-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