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 주일설교, '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3:15-16
2021-04-18 주일설교
본문: 딤전 3:15-16
제목: 진리의 기둥과 터
1.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딤전3:15)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도, 심지어 하나님을 예배하러 교회에 오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온다는 의식이 없다.
늦게 오는 것을 쉽게 여기고, 설교 시간에 앉아서 졸고, 딴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신은 죽었다 하며 탄생했다.
기독교가 지배하였던 중세 1200년을 보면서,
종교개혁과 더불어 계몽주의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쥐꼬리만한 지식을 가지고 신을 판단하고 신의 운명까지 결정하였다.
유럽을 지배한 교회가 보여준 것은 교황과 성직자들의 횡포와 억압과 불법 뿐이었으니
인간들이 볼 때 그 기독교 신은 죽었다고 죽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으로 천년 아성의 카톨릭이 무너지고 인간들은 기독교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 원하였다.
고대 희랍철학으로 돌아가 기독교 신이 없는 자유를 구가하였다.(휴머니즘)
그런데 희랍 철학의 시대에 종교는 너무도 인간을 닮은 다수의 신을 섬겼다.
요즘 티비를 장식하는 시지프스도 그 신들 중의 하나였다.
인간은 참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과 똑 같은 신을 섬긴다는 것이 문제이다.
유대인 프로이드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버지의 상’이라고 하였다.
어릴 때 나를 억압하던 아버지의 이미지와 그대로 닮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산주의는 기독교는 아편일 뿐이라고 하였다.
불평등과 사회의 거대한 악에 대하여 저항할 줄 모르고 순응하는 아편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다.
교회는 힘을 가지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신의 자리에 앉아 신의 이름으로 독재와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중세 천년 동안에 인간을 고문하는 도구는 다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대교가 행한 횡포는 그들의 왕국시대에 만연하였고,
그 종교 행태는 유럽 세계를 카톨릭이 지배하면서 재현되고 극대화 되었고,
기독교는 종교개혁 이후 오백년 동안 다시 그 행태를 닮아가고 있다.
구약의 참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치는 경고가 그대로 지금의 개신교에도 맞다.
살아 있는 유대인들이 몰랐듯, 살아 있는 카톨릭 교도들이 몰랐듯, 현대 교인들도 모를 뿐이다.
그 경고가 자기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고 그들에게만 향한 줄 안다.
오늘날 교회는 선지서들을 설교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있다. 자기에게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그 경고대로 유대도 카톨릭도 망했고 개신교도 망할 것이다.
왜냐?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교회도 모르고, 교회가 보여주지도 못하니, 세상은 알 턱이 없다.
성경을 주었어도 유대인들은 조문화해서 사람을 억압했고, 바리새인들이다.
성경을 세상화해서 아편이나 악세사리로 만들었다. 사두개인들이다.
현대 교인들의 하나님은 그 비슷하면서 ‘아버지 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의 말은 많이 알아도 그 속의 진리는 문외한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인간들은 타락했어도 그 형상이 희미하게나마 남은, 그 흔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고대 희랍인들처럼 교양과 자유를 말하면서도 다수의 우상들을 섬긴다.
지식인들이 점술과 신비주의에 탐닉하는 이유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제대로 공부하고 체험하지 못하면, 그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고 우상일 뿐이다.
구약을 통해 이스라엘이 심판 받고 멸망하는 역사를 보면서도,
인류 역사를 통해 악이 심판 받고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도,
인간들은 끝까지 살아계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타고난 본성과 본능 따라 죄만 지을 뿐이다.
심판은 더딘 것이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오직 주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고 있다.
지금도 하나님께 대한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는 하늘로부터 진노의 심판이 내려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딤전5:24-25)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의 특징은 변화하고 성숙한다는 것이다.
거룩하고 순전한 하나님을 경험하고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교회가 보여주는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변화된 성품과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입술에만 하나님을 달고 다니는 많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죽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먼 사람들,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만 깨끗이하고
마음 속은 탐욕과 방탕,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나와 자기가 진짜 섬기는 신이 어떤 신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고 구원 받지 못하면 천국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2. 이 집은 진리의 기둥과 터다.
“이 집은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사람들의 생각으로 만든 이론이나 사상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 자기도 말은 하면서도, 그 진리대로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살지 않으면 진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한다.
머리에 있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
머리에 있는 것은 남을 판단하고 죽일 때 사용할 뿐이다.
아담의 후손들은 타고난 죄성으로 인하여 밥 벌어먹는 수단으로만 소위 진리를 공부하고
살 때는 이익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다.
세상의 큰 도둑놈들은 공부를 많이 한 자들이다.
세상을 더욱 악하게 만들고 불공평하게 만들고 끝없이 불법이 판치게 만드는 자들은
못 배운 자들이 아니라 많이 배운 자들이다.
대체로 공부 잘한다는 자들은 매우 이기적이다. 그들이 공정의 자리에 앉아 자기 이익만 챙긴다.
진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참된 이치이다.
그 참 이치대로 살면 양심과 마음이 평안하고 두려울 것이 없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개하여 새 사람을 입으면,
이제 썩어가는 구습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 것은 지나고 보라 새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따라 산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는 길은 하나님이 친히 쓰신 성경을 통해서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인 것을 모르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을 최고 권위의 삶의 기준으로, 오류가 없는 원칙으로, 믿지 못하고, 살지 못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하여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성경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신비주의자들 경건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의 특징은 똑같이,
성경의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 경건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체험을
자유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진리로 섬기는데, 체험이나 생각이나 결국은 같은 것이다.
신비도 생각도 그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탄이고 결국 그들은 뱀의 후손이고 마귀가 아비이다.
그래서 사람의 지혜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은 세상의 영을 받아 가르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령이 가르치시는 지혜를 알 수도 없고 어리석게 여길 뿐이다.
그런데 이들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정치의 높은 자리들을 꿰차고 앉아 있기 때문에,
진리는 온데 간데 없고, 말은 옳은 것 같은데, 행하는 것은 없다.
세상이 날로 악해져만 가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로는 진리를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나는 철학을 25년 살아봐서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깨달은 것은 진리는 사상이 아니고 존재라는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님과 진리의 성령께서 내 속에 들어오시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인 것이
확실히 믿어져야, 비로소 진리를 알고 진리를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진리를 말하면서도 살지는 않는가 하는 의문이 풀렸다.
진리 자체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살려면 마음 속에 들어와야 하는데 무슨 수로?
진리를 살려면, 참 진리를 만나야 하고, 그 진리가 내 마음에 새겨지도록 해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내 마음에, 내 생각 속에, 진리를 새겨주시고,
성경이 참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게 해주고, 살게 해준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못하고, 그 영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진리를 만날 수도, 알 수도, 살 수도 없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진리)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진리)를 지켜 행할지라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36:25-28)
하나님의 법 곧 진리를 우리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해야 진리를 살 수 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 숭배를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하게 해야 한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야 진리를 행할 수 있다.
새 영을 우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셔야 율례를 곧 진리를 행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씀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는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교회가 이 진리를, 기둥으로, 터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그 교회는 가짜이다.
축복 성회나 하고, 절기와 예배나 성대하게 하고,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만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회는, 현대판 유대교요, 현대판 중세 카톨릭일 뿐이다.
다른 복음 다른 교훈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진리를 말로만 하고 살지 않는 개혁주의자 청교도주의자는 회개할지어다!
3. 경건의 비밀은 크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3:16)
경건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우리 하나님이 되고 그의 백성이 되는 관계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었다.
이 비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는 나타난 바 되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7)
이 크신 경건의 비밀, 영광의 소망을, 송영으로 바울은 간략하게 찬송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만국에서 전파되셨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다.
그리고 그분은 영광 가운데서 승천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유일한 중보자가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곧 경건을 회복하여 주셨고, 유지하게 하셨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이 경건의 비밀이 실로 크도다. 영광의 소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구원의 창시자가 고난을 받으심으로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교회는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의 기둥이고 터가 되는 곳이다.
축복과 형통이 그 기둥이고 터인 교회들은 회개해야 한다.
사람의 지혜와 아름다운 말들이 기둥이고 터인 교회들은 돌이켜야 한다.
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고백하는 믿음의 반석 위에
주님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다.
교회는 다른 터 위에 세워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터 위에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 교회만이 주님이 피로 세우신 교회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교회이다.
오직 주님과 주님의 진리가 기둥과 터가 되는 교회를 이루고, 세우고,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