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23 주일설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5-17

강대식 2021. 5. 23. 12:48

2021-05-23 주일설교

본문: 요일 2:15-17

제목: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1.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사랑은 나뉠 수 없다. 겸해서 사랑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사람은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는 미워하기 마련이고

하나를 귀중히 여기면 다른 하나는 가벼이 여기기 마련이다.

둘 다 사랑하고 둘 다 귀하게 여긴다고 하는 사람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거나, 바리새인처럼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같은 형상을 지닌 이웃을 사랑할 때 행복하게 하셨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화목하게 하셨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어서 죄를 범하였고

이 죄로 인하여 인간은 오염되고 부패하여 에덴 동산의 기업을 잃고

땀을 흘려야 생명을 부지하고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와 탐욕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오직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전부인 줄 알고

서로 더 많이 차지할려고 아귀다툼을 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만다.

 

주님은 온 율법을 두 계명으로 요약하여 주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범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온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 전체를 통칭하는 단어이다.

강령은 중요한 요약이고 기본이다.

두 계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첫째가 없으면 둘째는 없다.

 

사람이 왜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지 못하느냐?

자신 사랑,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람은 자신 사랑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자신 사랑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이웃도 제대로 보이고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있다.

 

정말 성령으로 회심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 사랑으로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주 예수를 믿으며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할 때

그 사랑으로, 그와 같으니,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있다.

휴매니즘은 만인 사랑을 외쳐 노래하지만 이 진리를 모르니까 허울좋은 망상으로 끝나고 만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예수님이 거짓을 말씀한 것이고, 성경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온통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수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은 영원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고

채우고 채워도 그것은 차지 않고 영원히 공허로 채우다가 꺼지지 않는 지옥불로 채우게 된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필요한 것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회복하고 채워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채워지고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 같이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성경의 두 강령을 따라서

하나님 사랑을 회복한 자들이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가정과 사회가 개혁되고 부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들이 되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탐욕으로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망하지 않을려면 말이다.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났으면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다 해로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신 사랑도,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도, 거기엔 없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로만 이웃을 사랑하고, 마음은 멀고 마음은 세상에 가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이웃을 만인을 사랑한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라.

입술로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말하는 유사 그리스도인들의 말에 속지 말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없음을 믿으라.

 

2.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람들이 왜 사랑하느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으로 탐하고 안목의 정욕으로 탐하고

이생의 자랑으로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정욕은 탐욕 욕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육신의 정욕의 기본은 식욕과 성욕이다.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생명의 유지와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육신의 정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도를 넘어 탐하고 섬기고 부정한 방법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웃을 해하고 사회를 해하고 결국은 자신을 해하는 데 문제가 있다.

법으로 금해도 불행을 보면서도 비극적인 종말을 보면서도

육신의 정욕이 끓어오르면 참지 못한다. 학식도 지위도 도덕도 못 말리는 것이 육신의 정욕이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따라 선악과를 따먹은 첫째 요인은 먹음직이었다.

식욕을 탐하다가, 성욕을 식욕처럼 탐하고, 또 다른 육신의 정욕들을 식욕처럼 탐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대로이다.

 

예수님에게 사탄이 제일 먼저 시험한 것이 식욕이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람들은 일생동안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다가 생을 마친다.

 

육신의 정욕을 이길 길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하고 믿고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다른 길이 없다.

육신의 정욕에 묻히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만 탐하고 영원한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살고 그 눈에 따라 사는 것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두 번째 요인이다. ‘보암직이다.

보암직한 안목의 정욕을 따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의 사자들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였다.

보암직한 능력을 보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다 보고 너를 높일 것이 아니냐 였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너 높게 취해서 안목의 정욕으로 보여줄려고 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취해서 보여 주는 것들을 안목의 정욕으로 탐하고

그 안목의 정욕에 온통 젖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코박고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외모 지상주의는 안목의 정욕의 대표격이다.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고 부러워하고 외모를 탐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을 안목의 정욕은 보지 못한다.

 

이생의 자랑은 안목의 정욕을 뒤따라 오는 것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눈으로 보고 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생의 자랑으로, 인생의 유일한 낙이요 자랑으로 여기는 정욕이다.

 

하와를 범죄케 한 세 번째 요인,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것이다.

세상 지혜가 자랑하고 탐하면서 하나님과 같아질려고 하는 욕망이다.

칭찬과 자랑은 하나님이 주셔야지 스스로 만든 자랑과 칭찬은 욕으로 변하고 패망으로 끝난다.

 

이생에 그렇게 자랑스럽던 왕들이 태통령 수상들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그렇게 자랑스럽던 부와 명예들이 헌신짝처럼 버림을 당하는 것을 인류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마지막 시험으로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하였다.

주님의 대답은 뭐였는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하셨다.

그 길만이 이생의 자랑의 탐스런 정욕을 물리치고 해결하는 길이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육신의 정욕으로 안목의 정욕으로 이생의 자랑으로

탐하고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 정욕과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교회의 현실이고 그 현실은 아담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에 만연하였고

중세 천년에 만연하였고 종교개혁 이후 오백년 동안 교회에 만연하고 있다.

그들이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신앙과 삶을 만나기 전에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귀로부터 온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이 세대를 본받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할 것이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할 것이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고 변화를 받고 의와 진리의 거룩한 새 사람을 입기 전에는

세상의 영을 받아 가르치는 지혜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3.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렇게 일생을 다해 사랑한 이 세상도, 그 세상에 있는 것들을 탐하던 정욕도 지나가고 만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애개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7)

 

죽으면 끝인 줄 알고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하고 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성경이, 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믿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하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원한 세상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면,

화형과 고문과 극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죽어간 이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죽었으나 아벨처럼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교회 안에서는 항상 주여 주여 소리로 넘쳐나고 있다. 그 믿음을 자랑도 하고 있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기준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는가 이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았는가 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했는가 이다.

 

그 날에, 심판의 날에, 많은 사람이, ‘많은사람이다 주님께 아뢴다고 한다.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선지자가 노릇 누가 하는가?

목사와 신부들이지요, 신학교 교수들이요 장로 권사들이지요.

 

그 많은 예배와 헌신들이 주여 주여 한 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사랑했을 뿐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 많이 있다. 어둠의 영, 조상으로 받은 영, 긍정의 영---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 많이 있다. 빈야드 신사도 G-12 운동들 ---

주여 주여에다가, 주의 이름으로, 목사 축사 권능 행했는데, 주님 뭐라신다고요?

그들에게 밝히말씀하신다고 하신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떠나서 어디로 가는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다.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곳이다.

 

주님의 영광의 보좌 왼편에 분리된 자들은 영벌에, 오직 자기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다.

오른 편에 분리된 자들은 영생에,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광으로 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