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에베소서 강해', 2권 9장 하늘에 앉히사 (김영희)
제 9 장 하늘에 앉히사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2:4-7)
- 세 번째 단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사”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고 일으키심을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영적으로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나야 된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된 것이다. 사도는 여기서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리심을 받았고 일으키심을 받았으며 하늘에 앉힌 바 되었다. 사도의 진정한 요점은 이 에베소 사람들에게 이것이 자기들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것이다. 그는 “그것은 이미 실제적으로 하나의 사실이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일들은 우리의 머리요 대표적인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우리와 그리스도간의 신비적인 연합의 차원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1.“하늘”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소”라는 말은 번역자들에 의해서 첨가된 말로서 잘못된 첨가이다. 그 말은 너무 장소를 국한 짓는다. 하늘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간” 한 사람을 안다고 간증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첫째 하늘은 공기 구름 우리가 보는 세계이고, 둘째 하늘은 별과 달과 태양이 속해 있는 영역,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 특별히 자기 임재와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영화로운 몸으로 거주하고 계시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은 우리가 중생한 결과로 인해서 들어간 영역을 말한다.
본문을 강해해 나갈 때에 명심해야 하는 것은 이 본문에서 1-3절에서 대했던 대조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에 반대는 거듭난다는 것이다. 정죄 아래 있다는 것에 반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요, 새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사”라고 묘사된 이 세 번째 단계에 있어서도 정확히 같다.
1) 부정적인 국면
①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에 그는 전적으로 이 세상에 속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이 세상 너머의 어떤 것에 관해서도 알지 못한다. 사도는 중생치 못한 사람은 세상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세상에 매여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세상의 사람일 수 없다. 한 사람이 동시에 세상 안에도 밖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이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에 관한 진리는 언제나 그가 “세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갈1:4) 그리스도인은 현재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는 아직도 세상 가운데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거기에 속해 있지는 않는다. 그는 더 이상 그것에 매여 있지도 않는다. 그의 전체 사고방식이 그것에 의해서 결정되지도 않는다. 비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한 가지 차이는 비그리스도인은 세상에 굴복하고 있으며 세상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구속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비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하는 일”에 의해서 통제를 받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 통제를 당하고 있다. 세상에 의해서 조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그들을 부른 호칭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 곧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가 의식하는 첫 번째 일 중에 하나는 자기가 세상에서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 세상을 되돌아보고 세상의 향수를 가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어리석다면, 그는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모순을 행하고 있다.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말한다.
② 더 이상 사단의 지배 아래 있지 않으며, 사단의 나라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에 그러하였다. 세상은 이 점을 비웃고 조롱한다. 세상이 철저하게 어리석고 눈이 멀어 있어서 그것조차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학식이 많고 영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하늘로 옮겨지게 될 때 더 이상 그는 마귀의 지배 아래 있지 않는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에게 위대한 사명을 부여하셨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7-18) 그리스도인은 어둠의 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리스도인 우리가 더 이상 사단의 지배에 있지 않다는 것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며 지금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깨닫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③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온 세상 위에 임하려 하고 있다. 이 세상과 세상 안에 있는 모든 악들과 세상의 체질과 또한 그것에 속한 사람들에게 심판이 오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부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 무서운 심판과 가공할 멸망이 있게 될 것이다. 노아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스라엘 자손들의 여러 번의 포로 생활,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 등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 위에 덮칠 하나님의 재앙에 대한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그곳에서 빠져 나와 있다. 이미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을 건드릴 수 없다.
2) 적극적인 측면
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것이요 사실이다.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진리를 순종치 않는 사람들, 자기 배를 신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였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속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나라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3:3) 그것이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늘 빠져 있었던 아담의 사람은 문자 그대로 죽어 있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그 점을 알고 있는가? 그것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가 이 땅에서 순례자라는 느낌,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잠시 동안 고향을 떠나 있는 것이다. 돌아갈 고향,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 하늘이야말로 우리가 속해 있는 전부이다.
② 우리는 성령의 통제 아래 있다. 더 이상 악한 영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속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통해서 그 일을 행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인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고 말한다. 더 이상 세상의 정신과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에 의해서 인도를 받지 않는다.
저는 어떤 사람이든지 이 세상에서 하늘의 영향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에 대해서 조롱하는 복음적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저들은 너무나도 하늘에다 전신을 빼앗긴 나머지 세상에서 쓸모가 없는 자들이야” 여러분은 아무리 하늘에 정신을 빼앗긴다 할지라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문제는 하늘에 온전히 정신이 빼앗겨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필연적으로 하늘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③ 하늘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고 고유하게 자신을 나타내시며 자기의 임재를 드러내시는 곳이다. 그것이 하늘이 하늘 되게 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4:5에서 요한은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서 환상을 보았다. 그가 본 첫 번째 요점은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것이 하늘의 특징이다. 우리는 하늘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까이 있는 영역 속에 있다는 것이다. 전에 우리가 허물과 죄 속에서 죽어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었고 우리가 마음의 원수로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하늘에 있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지어다”(히4:16)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12:22-24) 우리는 거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가게 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그 곳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그것을 인식하라. 그리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④ 우리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조차 하늘 생명에 대한 어떤 것을 맛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하늘에 삶에 대한 어떤 것을 누리고 있다. 아직 큰 수확기에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첫 열매를 딸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그것들을 얻게 되었다. 사도 바울처럼 세 번째 하늘에 들려 올라가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영광에 관한 어떤 것을 알아야 한다.
“은혜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시작된 영광을 보았네.
믿음과 소망에서 자라날
하늘의 열매들을 이 땅에서 보았네“ (아이삭 왓츠의 찬송시)
그것은 여기서 이 땅에서 시작된다. 여러분은 그것을 체험했는가?
2. “앉힌 바 된”
그것은 우리 주님의 부활과 승천에 관련하여 우리 주님 자신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니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히1:13),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10:12-13)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되었다. 앉아 있다는 것은 완성의 증표이다. 사람이 자기 일을 마칠 때에 그는 앉는다. 더 이상 일할 것이 없고 휴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 영광스러운 승리가 있다!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승리의 표증이다.
여러분의 구속의 역사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더 이상 어떠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이루어졌다. 그가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안전하고 완전하다. 그러나 여러분은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여러분은 아직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역사 속에서 안식하라. 만일 우리 자신에 관한 이 진리를 인식하기만 한다면 야고보가 “마귀를 대적하라 그가 너희를 피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가 여러분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속에 계시는 분,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그를 물리치시고 끝내 패퇴시켰던 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하늘 처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여러분은 하늘에 있음을 아는가? 여러분은 구별됨을 아는가? 여러분이 그와 함께 있으며 모든 어두움이 물러갔다는 사실을 아는가? 여러분의 연약한 열심을 북돋아 줄 영원한 영광이 비취고 있는 것을 보는가?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