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주일설교,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 수 4:23-24
2021-07-04 주일설교
본문: 수 4:23-24
제목: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
오늘 우리 시대는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시대이다.
사실은 모든 시대가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믿고 의지하지 못하였다.
모세의 당시에도, 여호수아의 시대에도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믿는 자가 거의 없었다.
믿음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을 때 믿었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미리 말씀해 주셨을 때 믿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말씀하셨을 때도 믿지 않았다.
성경이 완성된 다음에는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고 계신다.
모세의 홍해 기적, 여호수아의 요단 기적은, 곧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알게 하는 기적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개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어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행하심의 약속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주 하신 책망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이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믿음이 작은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한다.
성경의 기적의 역사를 통해, 기독교 역사의 기적을 통해, 믿음을 키워야 한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나고, 말씀 공부와 묵상을 통해서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수1:8)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2)
그러나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히4:2)
기적을 경험한 자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면 그때뿐이요 반역과 배교에 빠지고 만다.
믿음과 결부시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다. 항상 살아 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때 오늘도 우리는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널 수 있다.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고,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할 것이다.
1.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요단 물을 밟을 때 갈라지게 하셨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수3:13)
마르게 하여 건너게 하신 것은 홍해와 요단이 같았지만, 이루시는 방법은 달랐다.
홍해는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였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14:16)
홍해가 다시 흐르게 하는 것도 모세의 손에 쥔 지팡이를 사용하셨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14:26)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모세의 지팡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했을 때,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이 나타난 것이다.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에 능력이 있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때에는 아직 여호와의 궤가 완성되기 전이었다.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든 율법의 말씀을 주시고 기록하여 궤에 넣게 하셨다.
그 법궤 또는 언약궤는 항상 레위 자손의 제사장이 메게 하셨다. 대원칙이었다.
다윗도 웃사의 사망을 보고서야 후에 깨닫게 되었다.
모세를 통하여 언약궤가 완성된 다음에는 언약궤가 여호와 임재의 상징이요 말씀의 상징이 되었다.
이 언약궤를 제사장이 메고 요단 물을 밟을 때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은 나타났고 요단은 갈라졌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 우리는 이 모습과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수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수4:18)
하나님은 거룩한 땅에서 모세로 신을 벗게 하시고 그를 맞았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도 여리고성을 가까이 갔을 때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였다.(수5:15)
하나님 앞은 항상 거룩한 곳이며 그 앞에 나아갈 때는 신을 벗어야 한다.
신을 벗는 것은 자기의 모든 권리를 벗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신을 벗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요단 물을 밟을 때 요단은 갈라질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며 보는 언약궤 그 자체였지만
이제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요단 물을 밟을 때 갈라지고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간다.
언약궤를 멘 자가, 곧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자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율법책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
나를 나타낸다는 말씀은 나의 손의 강하심을, 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에게? 나의 계명을 지킴으로 나를 진정 사랑하는 자에게다.
그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성경을 멀리하고, 말씀 공부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고 있으니, 무섭고 놀랍다.
계명을 바로 지킬려면, 공부해서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헛된 가르침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말씀으로 돌이켜야 한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마음과 목숨 바쳐 말씀을 사랑하고 지켜 행하고 주님을 사랑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말씀과 결부되었고,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씀을 전하거나 살까봐,
바울처럼, 우리도 두려워하고 심히 떨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지만,
그 믿음이 여호와의 말씀과 결부되지 못하여 이내 반역하고 배교하다가
광야에서, 가나안에서, 멸망을 당하고야 말았다.
2. 땅의 모든 백성에게 알게 하고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4:24)
홍해를 가르고 요단을 가르는 기적을 보이신 것은
두 가지 목적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손의 강하심, 곧 손의 능하심, 전능하심을 알게 하려는 데 있다.
애굽에서 그 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도 바로와 애굽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오늘날도 손의 강하심을, 곧 능하심을 나타내실 때,
무엇보다도 땅의 모든 백성들이, 믿지 않고 교만한 자들이 놀라고 무서워하게 될 것이다.
고난의 시절에 멸시하고 능멸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손의 능하신 역사를 보고 기절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믿는 우리들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광야 고난의 시절에는 힘이 빠지고 낙심하고 흔들리기가 쉬운데,
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을 경험할 때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영원토록 경외하게 될 것이다.
홍해를 건너게 하심으로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부르시고 주님과 연합하게 하신 하나님은
광야의 연단을 믿음으로 통과하게 하시고 반드시 가나안 기업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라.
홍해를 마르게 하심으로 건너게 하심과 같이 요단을 마르게 하심으로 건너게 하심을 믿으라.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요 이 날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시편 기자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주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주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속히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소서.
3. 요단 물에 있는 열 두 돌을 취하여 기념하게 하셨다.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 하라”(수4:20-22)
하나님은 열 두 지파의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길갈에 쌓고 표징이 되게 하셨다.
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도 돌 열둘을 세우게 하셨다.
기념이 되게 하고 표징이 되게 하시는 것은 잊어먹기를 잘하는 백성들에게
계속 깨우치고 기억하게 하여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요단을, 손의 능하심으로 건너게 하실 때, 기념물을 취하고 표징을 삼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 풍족하고 배부르고 편안할 때 하나님을 잊고 말씀을 잊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8:12-14)
모세가 염려한 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넜지만 1세대는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또한 모세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경고하였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특히 돈을 섬기다 멸망한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신8:19-20)
복을 받는 것도, 멸망을 받는 것도, 한 가지에 달렸다.
언약궤를 멨느냐 아니냐 이다.
광야냐, 가나안이냐에 달려 있지 않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멸망했고, 2세대와 그 후의 자손들은 가나안에서 멸망하였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얼마 있다가 사사시대의 암흑시대를 만들었고,
그후 왕정시대, 포로로 70년 끌려갔다 돌아와서도, 결국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으로 살았느냐, 아니냐에, 축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이 달려 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살았느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말씀으로 살았느냐,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씀으로 살았느냐,
그 선택에, 개인과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다.
홍해를 건넜다고, 요단을 건넜다고, 안심하고 평안을 노래하다가는 큰 일 난다.
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으로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에 이르게 하시면
우리는 강단 좌우에 현수막을 걸 것이다.
우)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게 하시고”
좌) “언약궤를 메고 요단 물을 밟게 하소서”
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을 경험하고서도, 항상 조심할 것을 모세는 이렇게 경고하였다.
“내가 오늘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신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