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주일설교, '여호와로 말미암아', 삼상 2:1-2
2021-08-15 주일설교
본문: 삼상 2:1-2
제목: 여호와로 말미암아
1.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한나는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았다고 기도로 찬양하고 있다.
그가 여호와께 받은 선물과 축복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즐겁다고 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 아들의 평생을 드리는 결단력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즐겁다고 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선물을 주신 자는 잊어버리고 단지 선물 그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단지 주신 아들에만 관심과 자랑이 집중된다.
그러다가 그 아들에게 일이 생기면 주신 분을 원망하고 대적하기까지 한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모든 시내는 우리를 물의 근원으로 인도한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른다.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사람이나 재물로부터 얻은 즐거움과 기쁨은 사람의 변심이나 소유의 변동으로 요동을 친다.
그러나 여호와로부터 오는 즐거움과 기쁨은 영원하며 변치 않는다.
내가 언약을 지키는 한 여호와는 변할 수 없는 그분의 속성으로 우리를 기쁘고 즐겁게 하신다.
한나는 아들이 없어 아들이 있는 브닌나에게 괴로움을 당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였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였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
이 기도를 영으로 드린 후에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다.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었다.
그의 남편 제사장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 갈 때에도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기루와 포도주 가죽부대를 가지고 갔다.
엘리 제사장에게 말했다.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1:26-28)
여호와께 구하고 받고 드리는 사실과 순서가 담백하게 기록되었지만,
놀랍고 엄청난 믿음과 역사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드리는 한나의 기도가 오늘의 본문인 것이다.
이 한나의 기도는 유대인들이 외어서 성전에 올라가며 머물며 부르는 찬양이라고 한다.
우리도 외어서 수시로 불러 찬양해야 할 기도요 찬양이다.
여호와께 대한 신앙고백이요, 여호와께 대한 확신과 소망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일 것이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요, 이 날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그 날에 우리도 한나처럼 기도하며 찬양하자.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
주신 축복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기뻐하자.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으신 이가 없으심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니까,
자기 판단이나 자기 가진 것을 믿고, 심히 교만한 말, 오만한 말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거룩을 모르니까, 하나님이 자기 같은 줄로 안다.
완전히 순전하시고 흠이 없고 티가 없으니까 죄인들이 감히 가까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처리하고 의의 옷을 입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구약에서는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의 보좌에 피를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백성들은 금식을 하는 가운데 말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로 우리가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까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으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한 아들 제사장이 필요하였다.
엘리와 두 아들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함으로 죄악을 범했다.
한나는 아들 없는 괴로움을 겪다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평생을 드리겠다고 서원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시고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
한나는 그 아들을 은혜로 받고서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지켰다.
젖을 떼자 어린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니까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운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까 공의와 정의로 심판을 하시고 반드시 보응을 하신다.
욥은 주신 분도 취하신 분도 여호와라고 하였지만,
한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대로 아들을 드리되 그의 평생을 드렸다.
2.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한나에게 아들을 주심으로 한나의 뿔이 높아졌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 뿔이 높아졌다고 찬양하고 있다.
여호와는 뿔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
용사가 자랑하는 활은 꺽어서 못쓰게도 하시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게 하셔서 일어나게도 하신다.
사람들은 용사의 활도 자기가 강하게 하고, 넘어지면 일어설 수가 없다고 여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공의와 정의로 뜻과 섭리 가운데서 인간사를 통치하고 계신다.
뜻과 계획이 있으셔서 임신을 못하게 하시고 낮추심과 주림과 넘어짐 가운데 있게 하신다.
악인의 형통도 의인들의 훈련용 연단용일 뿐이다. 그 형통은 등불이 꺼지듯 꺼지고 만다.
한나의 뿔을 높이신 분도 낮추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의 뿔을 높이실 분도 낮추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한나의 찬양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라고 한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입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풍족한 자들은 항상 풍족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 날이 오게 하신다.
주리던 자들은 계속 그럴 것 같지만 다시 주리지 않게 하시는 날이 오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3-14)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굽게 하시면 누가 능히 곧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는 것이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이 성경을 통해 주신 법도를 따라 순종하는 것이 복이다.
소유나 환경은 언제나 변동하는 것일 뿐 의지하거나 자랑하거나 없다고 서러워할 것도 없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면 말이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는 자들은 일곱을 낳게 하실 날이 온다.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해질 날이 온다.
한나는 나중에 하나님이 세 아들과 두 딸을 주셔서 보상해 주신다.
임신하지 못하던 한나가 사무엘을 두 몫으로 친다면 일곱을 낳은 셈이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한나가 한 자녀를 낳을 때마다 브닌나는 두 자녀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한나의 기도와 찬양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의 예언이요 선포이기도 한 것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한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
지금 부한 자들은 가난하게 될 날만 남아 있고 지금 가난한 자들은 부할 날만 남아 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있다면 말이다.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뜻이 있어 낮추신 자들은 반드시 높이셨다.
요셉도 다윗도 모세도 욥도 그 과정을 겪게 하셨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셨다.
요셉은 감옥의 죄수에서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올리셨고,
다윗은 망명객 신세에서 일약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셨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생활 40년, 처가살이에서 일약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셨다.
이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고 하나님이 성경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고 예언인 것이다.
우리와 관계가 없다면 성경에 그렇게 자세히 왜 기록하였겠는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실 일을 알게 해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한나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고,
한나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도 능히 일어날 일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상주시는 분임을 굳게 믿는 하늘의 종교이다.
3. “내 입이 ‘주의 구원으로 말미임아’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믿고 사는 중에, 한나처럼 역사가 일어날 때,
우리도 한나처럼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리게 될 것이다.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을 때에는, 입을 열어봐야 들을 자도 없다.
홍해와 요단을 마르게 하여 건너게 하셔야,
비로소 땅의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의 손의 능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환난과 곤고와 기근 중에 있을 때에는,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고 있을 때에는, 입을 열어봐야 들을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실 때
우리의 입은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리게 될 것이다.
나이 85세에 갈렙이 거인들과 철옹성 기럇 아르바를 정복하여 헤브론으로 만들었을 때,
다윗이 시글락 위기를 겪고 헤브론에 올랐을 때,
갈렙도 다윗도 원수들을 향해 그들의 입이 크게 열렸다.
지금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우고,
궁핍에도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되면,
하나님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심으로 잔이 넘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 원수들을 향해 우리 입이 크게 열리게 될 것이다.
오늘 한나의 기도를 본문으로 주심은 그 날이 가까이 왔음을 고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