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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달한, 발도인들의 기원과 고대성(古代性)/ 권현익

강대식 2021. 12. 12. 14:53

사도적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달한, 발도인들의 기원과 고대성(古代性)/ 권현익

 

발도인들과 왈도인들 중 표현이 다른 것은, 발도인들을 의미하는 ’Waldense’의 발음이 게르만 계통에서는 왈도, 프랑스 계통에서는 발도로 발음되는 차이점 때문이다.

 

피에르 발도로부터 발도인들이 출현하였다는 견해는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주장이다.

왜냐하면 발도인들 운동의 출발점을 12세기로 묶어 둠으로, 로마 교회만이 유일하게 사도적 교회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때문이다.

 

피에르 발도가 출생하기 이전인 1120년에 발도인들의 신앙고백서가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발도인들은 피에르 발도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님을 잘 설명해 준다.

 

1630년에 로렌코는 발도인들의 기원과 고대성을 엄격히 조사는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피에몽 계곡의 이단 도입에 관한 서술책에서 발도인들은 스스로 그들의 근원을 사도 시대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 단지 최소한 튀랭의 클로드 주교가 8세기 교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에 선동적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고 발도인들은 9세기나 10세기의 새로운 종파가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발도인들에 가장 적대적인 튀랭의 대주교 세셀은 발도인들이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의 독실한 어떤 레온(one Leon)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발도인들이 모든 이단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가장 오래된 이단이기 때문이다고 주장하였다.

 

발도인들의 고대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계곡의 주민들의 언어로 발도인들의 신앙을 시의 형태로 압축해 놓은 고귀한 교훈이다. 이 신앙고백은 피에르 발도 출생 이전인 1100년에 기록되었다. 작성자는 알 수 없으나 저자는 직접 1100년에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고 밝히고 있기에 샤를마뉴 시대로 추정된다. 1100년에 기록한 이유가 계시록에 예언된 천년 왕국의 도래로 임박한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천년 왕국의 시작을 기원 후 1000년이 아닌 1100년으로 여겼던 이유는 사도 요한이 96년 경에 요한 계시록을 통하여 천년 왕국 도래를 예언하였기에 그 기록 시점으로부터 1000년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주 중요한 소식을 들으라 형제들이여. 우리는 항상 깨어있고 기도하여야 하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기 때문이라네. 우리는 선행을 하여야만 하네. 왜냐하면 이 세상이 곧 종말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네.”

 

시는 7개의 주제, 479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6행 세상의 종말, 57행 아담, 75행 가인, 76행 아벨, 103행 노아 홍수, 139행 아브라함, 144행 모세, 180행 다윗과 솔로몬, 210행 마리아, 22912사도를 언급한다. 230-265 새 율법, 266-333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334-360행 신실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찬양, 361-413행 박해 및 교황과 그 추종자들의 타락한 삶, 414-479행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묘사한다. 특별히 368-372행에서는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368), 그는 저주나 맹세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369), 간음과 다른 사람의 것을 취하지 않으며(370), 원수를 스스로 갚지 아니하는데(371), 바로 그들이 보두아’(발도)라고(372) 노래한다. 피에를 발도 이전에 이미 활동하였던 아쟁, 툴루즈, 알비 지역의 개혁자들도 발도인들이라고 불렸다.

 

409행은 로마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후 악습을 행하기 시작한 시기를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치하의 로마 주교 실베스터 때부터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도 발도인들은 교사를 세워 사도들의 가르침을 가르쳤고,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계속 전달함으로 사도 시대와 동일한 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음을 말한다.

 

355-360행은 사도 이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가르친 교사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누구인지 거의 알 수 없지만, 오늘 이 시대까지도 그러한 교사들이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르치는 것에 열정을 가졌고 큰 핍박으로 고통을 받음에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1580년 테오도르 베즈도 프랑스 왕국의 개혁 교회사를 통하여 발도인들의 신앙이 사도적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베즈는 나아가 이 사도적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해 발도인들은 로마 교회로부터 모든 가능한 잔인한 방법으로 박해를 받으므로, 그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으로 흩어졌고 들짐승과 같이 거처 없이 유리했다고 말하였다.

 

필립 샤프는 발도인들 교회의 고대성을 부정하였다. 필립 샤프에 관하여 심히 우감스러운 부분은 초창기 발도인들은 --- 개신교도 아니었다. 그들이 남긴 문헌에서 이신칭의 교릴ㄹ 진술한 내용을 아무리 찾으려 해도 한 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까지 언급한 것과 같은 부분이다. 그의 생존 시에 이미 알려져 있던 발도인들 신앙고백서 원본 뀌한 교훈정도만이라도 그가 읽고 그 내용을 진지하게 고려하였다면 이런 무례에 가까운 언급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동일한 시대였던 1886년 로랑 아귀에스는 루터는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의 사상에 영감을 받았다라고까지 주장하였다.

 

발도인들의 자체 주장

발도인들은 이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고 일반화되면서 발도인들 스스로도 이 용어를 수용하기는 했지만 그 의미는 달리하였다. 발도인들은 고귀한 교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은 ”Vaudois’(보두아)라고 밝히고 있다. 즉 발도인들은 특정한 종파를 만들어 그 종파의 결정에 순종하기를 다짐하며 가입한 제한적이고 특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인과 동일한 의미로 발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발도인들은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를 형제로 인정할 뿐 아니라 언제든지 그들과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였다. ‘발도그리스도인과 동일한 의미였기에 그들이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리든 상관없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며 동역하였다.

 

특히 알프스 계곡에는 대규모의 공동체가 형성되므로, ‘알프스의 이스라엘혹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복음의 시내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발도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의 레옹에 의해 비춰졌던 복음의 빛을 통하여 성경을 더욱 선명하게 깨달았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튀랭 근교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12세기에 와서는 레옹인(고대 발도인들)들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입박한 종말을 경고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권혁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22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