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8 설교,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3

강대식 2022. 5. 8. 13:44

2022-05-08 주일설교

본문: 12:1-3

제목: 예수를 바라보자

 

1.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

 

우리에게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있다.

11장에서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이삭 요셉 모세의 믿음을 말씀하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선진들은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는 것도 믿음으로 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을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이미 단산하여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 사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고,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40)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 더 좋은 것을 받음으로 그들도 온전함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심었고 우리는 열매를 거두고 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써 감당해야 한다.

그럴려면, 경주에 방해가 되는 모든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믿음은 긴 경주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야 하는 여정이다.

향방 없는 달음질, 허공을 치는 싸움 그만해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한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변함없는 부지런함으로,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자기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경주를 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바라보는 그것들이 나의 믿음과 경주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바라볼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요 주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세상을 권력을 부와 명예를 믿지 않고 하늘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이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분은 우리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불과 성령으로 세례하여 주신다.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 시련과 연단을 주신다.

때로 낮추기도 하시고, 때로 주리게도 하시며, 우리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요 동시에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신다.

다윗에게 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도 통과하게 하신다.

 

그분을 바라봄은 그분을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해서다.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분께 복종해야 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로잡을까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계명과 철학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면 그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다.

성령의 지혜로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회복하여야 한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으로 얼룩진 유대 전통의 가르침을 향하여

우리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하시며 가르침을 개혁하셨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서는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 .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 였다.

 

우리는 과연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내게 유익하던 것 중 무엇을 버렸는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 것이 과연 있는가?

 

옛 사람 그대로 아닌가?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세계관도 달라진 것이 있는가?

재물과 하나님을 계속 겸하여 섬기고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지 않고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참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고 불과 성령으로 세례 받아야 한다.

육신의 사람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현재 우리 시대 교회들의 가르침이 주님과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지 못하고 안심들을 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것과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것의 차이를

고린도전서 2장이 그렇게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데도 관심이 없다.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 하려느냐? 하는 경고가 들려 온다.

 

우리 주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그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우리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참고 있는 자기 십자가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본받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과정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불뱀과 전갈이 있는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다 통과했고 다 겪은 십자가요 광야들이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그들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참았다.

과연 그러한 과정과 십자가가 있었다면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지극히 큰 영광으로 여러분을 세울 날이 이를 것이다.

 

광야 생활 40년 만에 모세를 세우신 것처럼

13년의 십자가 생활 끝에 요셉을 세우신 것처럼

십수년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끝에 다윗을 세우신 것처럼

여러분을 세우실 날이 이를 것이다.

믿음과 오래참음이 이를 이룰 것이다.

 

3. 피곤하여 낙심하지 말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12:3)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긴 광야 시절, 시글락 시절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피곤하고 낙심하기 쉬운 과정이기도 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11)

 

이 시편 기자도 그 광야 시절을 겪었기에, 겪으면서 하는 말씀이다.

때로는 낙심하고 때로는 불안하지만,

믿음의 사람아, 너는 끝까지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어라.

그러면 그가 나타나셔서 도우실 것이다. 그러면 너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변하지 않는 환경 때문에, 더욱 깊어지는 환난 때문에, 쌓여만 가는 세월 때문에,

낙심이 찾아오고 불안이 깃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믿음의 사람이라면 거기에 굴복하여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의 성경 기록이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인공이 될려면 역사의 주인공들이 겪은 과정을 겪고 통과해야만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2장은 광야 시절 시글락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귀한 말씀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본을 보이셨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0-21)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도록 그리스도인은 부름을 받았다.

이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하신다.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십자가와 고난의 자취를 우리도 따라오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의 십자가와 광야 생활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과 축복을 받기 위해 주시는 유일한 과정이요 지름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참으사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더니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영광과 축복을 우리에게도 안겨 주시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90:13-16)

 

모세가 긴 광야 시절에 하나님께 올린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언제까지이니까? 이 광야생활이 언제까지이니까? 수도 없이 올렸을 것이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울며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를 만족하게 하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이 어느날 아침에 오면

그때부터는 일생 동안 즐겁고 기뻐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즐겁고 기쁘게 하실 것이다.

 

그때는 그 괴로왔던 날 수와 화를 당한 연수가 긴 것이 매우 자랑스러워질 것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행하셨던 그 놀라운 기적이 주의 종들에게 다시 나타나실 것이고,

주의 그 영광을 그 자손들에게까지 나타내 주실 것이다.

 

잠시 받은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구름같이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있다.

우리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의 경주를 달려가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겨역한 일을 참으셨던 주님을 생각하자.

십자가 없이 왕관 없고, NO CROSS NO CROWN, 고난 없이 영광 없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