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울인들의 형성 과정: 바울인들은 누구인가? / 권현익
2. 바울인들의 형성 과정: 바울인들은 누구인가?
1) 바울인들의 신앙적 신학적 교리적 정체성
이미 편망하게 이해되고 있는 에드둬드 기번 류의 주장을 따져 보는 것에서부터 접근하려고 한다. 바울인들이 과연 마니교적 배경을 가진 이단어었는지를 실제 증거와 문서 자료들을 통하여 살펴보고, 이어서 정말 이들이 그 다음 세대가 ‘종교개혁’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봉우리를 쌓아 올리는는 데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를 가능한 1차 사료의 모양으로 남아 았는 증거들을 가지고 추적해 보도록 하자.
바울인들이 이단으로 최초 언급된 것은 아르메니아의 대주교 존 오준(재임718-729)의 연설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포티우스(810-891)와 800년경 바실리우스 1세 황제의 특사로 바울인들을 현장 조사한 페트루스 시쿨루스의 「마니교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적시되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당대에 바울인들을 격렬히 대적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들의 평가는 일방적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에 수백 년 후에 그들의 시대를 논의한 잉글랜드의 교회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조차도 “시클루스는 편견과 격노를 기반으로 바울인들의 역사를 기록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2) 바울인들의 명칭 유래
첫째, ‘바울을 좋아하고 따르는 추종자들을 자칭하는 이름’이라는 설. 바울인들 그룹 형성을 치초로 주도했던 콘스탄틴이 ‘바울 서신’을 좋아하였다.
둘째, 사도 바울이 아니라 ‘양자 기독록’을 주장하던 안디옥의 감독 ‘사모사타의 바울(260-272)’이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라는 설.
셋째, 그 이후에 사모사타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마나날리스’라는 곳에 나중에 콘스탄틴에 의해 ‘바울인들’로 불린 한 그룹이 형성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넓은 지역에 편만해진 종파로 크게 확장되었다. 그래서 초라한 그 ‘사모사타의 바울 추종자들’ 혹은 그런 자들의 후예들이라는 비아냥으로 그들을 ‘바울인들’이라 불렀을 것이라는 설.
3) 타락하는 비잔틴 제국의 교회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세웠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인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에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전달된 사도들의 강력한 교리가 실려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교회 가운데 사도들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거짓된 가르침이 일어나고 또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음이 잘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복음은 안디옥으로부터 다시 북서쪽으로도 퍼져 나갔다. 교회는 주류를 형성해 나갔고, 스스로 보편적이며 유일한 교회를 자처하면서 사제들이 다스리는 카톨릭 조직을 급속도로 발전시켜 나갔지만,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다.
3세기 동방의 아르메니아 왕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보다 먼저 기독교를 자기들의 국교로 삼을 만큼 열성적인 지역이었다. 그런데 4세기에 들어 기독교를 공인한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아래에서, 교회와 국가가 절충하고 합종연횡하기 위해 서두르는 상황이 나타났다. 반면에 그런 와중에서도 여전히 성경의 원리를 지속적으로 지키려는 교회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참 교회를 지키고 세우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는 모습 또한 볼 수가 있다.
동방의 종교 세계를 마니교가 주도하던 시대부터 이미, ‘헬라의 주류 교인’들로부터 자기들 스스로를 구별하여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동방의 참 교회는 오히려 로마 제국- 비잔틴 중심의 동과 로마 중심의 서를 불문하고- 쪽의 교회들에 의하여 ‘마니교도들’이라고 몰리고 비방을 당하였다. 이에 동방의 참 교회들은 결코 마니교도들이 아님을 선언하게 되었고, 마니교도들은 이교도들로서 그드르이 종교와 신앙 내용들이 자신들의 신앙 고백과는 결코 같지 아니하다는 사실을 여러 방법을 하여 증언하며 반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비잔틴을 중심으로 한 주류 교회는 이들 동방 교회를 야한 그들 자신의 확고한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공의회의 회의록들과 선언들, 또는 그들의 저술을 통하여 비방과 거짓 사실을 기록하고 공표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가증스러운 의도를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데에 나서기도 했다.
주류 교회가 계속적으로 참 교회를 정죄하였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정죄하는 내용르 입증할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못했다. 자신들의 피의자인 동방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과 설교를 드러내는 마로가 글,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게 하는 선언들과 증언들에서 그 어떤 증거도 찾아내서 제시힐 수 없었다. 도리어 동방의 참 교회는 자기들을 적대시하는 제국의 교회들에 의하여 고의적으로 붙여진 이름 대신 “그리스도인” 혹은 “형제들”이라고 스스로르 불렀고, 집합적으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하나의 교회”에 속한 자들이라고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세속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기 시작했던 헬라, 라틴, 아르메니아의 교회들은 당연히 성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고, 세속 권세를 가진 국가 조직에 영합하여 불신자들을 집단으로 유입하는가 하면, 갓 들어온 그들에게 곧바로 성찬을 베푸는 것과 같은 혼합주의적 비행들을 일삼았다. 동방의 참 교회들는 이런 로마 제국의 교회들에 대하여 ‘교회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다’고 선언하기 이르렀고, 그들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조차 삼가고 거절하게 되었다. 그러자 주류를 장악하던 로마 제국 교회들은 도리어 이런 주장을 하는 동방 참 교회의 성도들을 이단적 분파의 의미로 ‘바울인들’ 또는 ‘톤락인들’로 부르며 경원시하고 저대 또는 학대하는데, 이런 흐름은 7세기 이후에 더욱 뚜렷하고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4) 로마 제국의 박해와 제국 교회의 핍박
바울인들은 원래 일어났던 지역에서 본격적인 박해를 당하게 되자, 소아시아와 아르메니아의 넓은 지역과 아라랏 산 주변 지역,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 너머에 있는 광활한 지역들에서 복음을 듣고 세례받은 신자들 중심의 교회들을 세우며 그 지경을 넓혀 갔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복음을 받고, 들었으며, 세움을 입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이를 지켜 행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자처하는 이들이었다. 특별히 아르메니아 산악 지대는 서유럽의 피에몽 계곡처럼 복음의 순수함과 경건한 삶의 원칙들이 보존된 영적인 도피성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아라랏 고산 지대의 토로스 교회들을 제외하고, 도시와 밀접하였던 대부분의 교회들은 핍박을 당하면서 망가지거나 급속한 세속화의 영향으로 녹아 내려서 점점 메마른 저수지처럼 바뀌어 갔다.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적인 풍부함을 제공해 주는 제국의 권력 아래로 들어가며 타락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아니라 제국에 예속된 ‘국가 교회’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세속 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이ㅡ 내부 분열은 곧 제국 기반의 약화 그 자체를 의미하기에, 제국에 충성하는 거대한 하나의 대형 교회 집단을 형성하여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집중하여 제국의 교회를 지원하였다. 그러자 제국의 동방 비잔틴 교회는 이에 호응하여, 교회에 부여된 권력을 견고하게 하거나 이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제국의 계급 제도를 교회안으로 도입하였다. 연합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장치였다.
그리고는 그들 스스로 ‘우주적인 하나의 보편 교회’라고 선포하였다. 하지만 당시 개혁자들의 눈에는 성경적 진리와 무관한 거짓 교회의 보좌가 세워진 장소였을 뿐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교회 조직에 들어와 복종하지 않는 개혁 세력에 대해서는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억압하고 파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 시대에 이미 시작된 이런 박해의 패턴은 그 이후 수천 년 동안 지속되고 반복되었다. 초대형 거짓 교회는 참 교회를 추구하는 이 개혁자들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박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단 몰이’의 고삐를 틀어쥐고자 애썼고, 혹색선전(마타도어)과 선동(프로파간다)을 획책하면서 역사의 현장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을 소멸시키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동방의 산악 지대에 남겨 두신 가난한 교회를 통해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교회로서 거짓 가르침에 생명을 내어 놓고 저항하며 복음의 진리를 지켜 내게 하셨다. 그들을 사도적 교회의 신앙과 경건의 순수함을 보수하는 ‘영적 보고(寶庫)’로 보호하셨다. 면면한 교회 역사는 이를 드러내고 있다. 360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