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울인들과 마니교 1) 마니교의 등장과 세계적 종교로의 성장/ 권현익
5. 바울인들과 마니교
(1) 마니교의 등장과 세계적 종교로의 성장
마니교는 3세기 중엽에 발생한 페르시아의 영지주의로서 당시 세계 종교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영적인 세계 즉 빛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즉 어둠의 세계로 나누어 모든 우주와 개념들을 양분하는 이원론을 그 바탕으로 한다.
마니교 사상은 한 때 서유럽까지 확대되었으나 7세기 경에 급격히 사라졌으며, 오히려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전달되어 17세기에 이르도록 존속하기도 했다. 바울인들의 공동체가 시작된 지역이 한때 마니교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역이었기에 그들의 대적들은 이들에게 마니교의 일파로서 마니교 사상을 전파한 이단이라는 허울을 씌워 공격을 가했는데, 공교롭게도 바울인들의 사상 가운데 대적들이 이원론적이라 비판할 만한 요소들 때문이었다.
도표 11: 서유럽 지역을 장악하였던 주요 종교들
마니교(3-6세기) ⇒ 아리우스 사상(4-6세기) ⇒ 로마 교회(5세기 이후)
바울인들이 서유럽으로 진출하였을 때는 마니교가 이미 유럽에서 사라져 과거의 종교가 되어 있었다. 바울인들이 그런 마니교 사상을 다시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어 내고 전파하기 시작하였다는 주장은 과연 얼마만큼의 설득력과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마니교가 서방에서 급속히 사라진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6세기에 접어들면서 아리우스인들의 신앙을 가진 게르만족들이 마니교라는 이방의 타종교가 흥왕하던 지역을 고스란히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리우스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이들은 성경을 가진 기독교 종파로서 게르만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마니교와 섞인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있을 일이 아니었다.
중세 후반까지 로마 교회는 대부분의 유럽 지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 교회의 타락에 반발하여 개혁 운동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이들의 신앙적 영향력아 확산되어 감에 따라 로마 교회와 그들의 조직은 영향을 잃어 갔고, 선구 개혁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신자와 지도자들이 그 지역과 사회들을 확보해 나가게 된다. 로마 교회는 더 이상 그들의 교인으로 자칭하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그들의 교인들에게조차 영성으로든 신앙의 지도력으로든 그들을 인도하거나 감화하는 종교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 사상이 정착해 나갔던 것에는 로마 교회의 강제성과는 달리 현저히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게 되었다. 아리우스 사상이나 로마 교회에는 진리와 복음의 자리가 없었기에 인위적 형식들과 진정성 없는 우상 종교에 지치고 굶주린 나머지, 그 갈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력 있는 가르침을 찾아 들어와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선명히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의 참교회의 역사', PP 402-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