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익(참교회,종교개혁이전)

3) 보고밀인들-참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지도자들/ 권현익

강대식 2022. 8. 10. 11:41

3) 보고밀인들의 주요 지도자들

 

보고밀인들의 지도자들에 관한 정보를 알려 주는 대부분의 책들은 이미 파기되었지만,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의 딸 안나가 바실이라는 인물에 대해

적대적으로 기록한 내용을 통하여 그에 관한 간접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실은 수도사로서 보고밀인들의 불경함을 아주 교활하게 가르쳤고,

‘사도들’이라 불리는 12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다.

또한 미련한 습관을 갖고 사는 비참한 여성들과 여러 명의 청년들을 끌어들여

사방으로 그의 사악한 교리를 퍼뜨렸다.”

 

“제국의 수도에 있는 상류 계급에 침투하였다.

바실이 가르친 교리는 정통 교회의 신학을 거부하는 것이었고,

교회 내 계급 제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교회를 귀신의 거처라고 경멸하기도 하였고,

성찬에 그리스도가 실제의 몸으로 현존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거부하였다”.

 

또한 이단 저술가인 유티미우스 지가베누스에 따르면,

“의사 바실은 15년 동안 홀로 연구한 결과 보고밀인들 교리를 집성한 후 이를 52년 동안 가르쳤다.

바실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알렉시우스에게 이단 재판을 받았다.”

 

이러한 사료를 바탕으로 미루어 보건대,

바실은 1070년 이전에 보고밀인들 지도자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바실은 의사로 자비량으로 생활하면서

약 40년간(1070-1111) 지칠 줄 모르는 자세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희생적인 삶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끼쳤다.

 

그로 인하여 보고밀인들 사상이 제국에 널리 펴지게 되자,

하루는 알렉시우스 황제가 “바실의 고매한 인격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희망한다”며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바실은 콘스탄티노플 궁전에서 그의 교리에 관하여 토론을 하면서

황제 앞에서도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그와 면담하여 교리에 관한 깊은 토론을 하고 있던 중

커튼 뒤에 숨겨 둔 지가베누스를 비롯한 몇 증인들을 등장시켜

그가 말하였던 내용들을 근거로 현장에서 그를 체포하였다.

 

그는 고문을 당하고 생명을 위협당하면서까지

자기가 전하던 교리를 포기하도록 종용받았음에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음으로 매우 용감한 신앙을 가진 보고밀인으로 기억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바실은 법정에서도 계속된 교리 토론의 공방에서 일체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롬에서 공개적으로 화형당하고 말았다.

바실의 체포 때 많은 보고밀인들 동료들이 함께 체포되어

화형을 당하거나 평생 감옥에 구금되는 형을 선고받았다.

 

바실이 공개 처형된 이후에도 보고밀인들의 활동은 계속되었고,

114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수도원에서 보고밀인들의 교리책이 유행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모든 책을 불사를 것을 결의하였다.

3년 후 갑바도기아 주교 두 명은 이단의 친구라 하여 추방되었고,

수도사 니폰은 금욕주의적 학자로 정죄받아 총대주교 미셀에 의해 수염을 잃고 종신형을 받았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409-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