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혁교회가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을 자신들의 영적 선조들로 확인, 이를 공표하다! /권현익
장 폴 페랭 목사는 총회와 노회의 지원으로 1618년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당시까지의 관점을 완전히 뒤엎는 것으로서
카타르인들과 개신교회 사상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해 주는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알비인들과 동류로 함께 인식되었던 발도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 콘스탄티노플 출신으로서 레옹에 거주한 어떤 이가
교회의 세속적 부요함에 항거하던 때로부터 연원하였다.
이는 결국 위그노들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617년 비트레 총회의 의장인 앙드레 리베는 총회 기간 중에
공식적으로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은 신앙과 교리에 있어서
개혁 교회와 완전히 동일함’을 다시 확인하였다.
같은 해 소뮈르 아카데미 교수인 존 카메론도 요한계시록의 박해받는 하나님의 교회 두 촛대를
‘가난한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이라고 발언하였다.
위그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순교자들의 책’(1554년)의 저자인 장 크레스팽은
“알비인들과 발도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실천을 계승하였다”라고 명백히 말하였다.
존 폭스도 알비인들을 ‘개혁 신앙을 가졌던 집단’으로 평가하였다.
또한 그는 알비인들을 발도인들로 칭하기도 하였다.
교단의 공식적인 결정과 여러 저자들의 알비인들에 대한 재평가 덕분에
프랑스 개혁 교인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을
자신들의 영적 선조를 확신하는 공감과 이해를 갖게 되었다.
결국 이 두 개혁 공동체들은 이전 시대에
“주님 앞에 선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11:4)로 여겨지게 되었고,
알비인들은 발도인들 교회의 일부로 여겨졌던 것이다.
‘위그노의 교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프랑스 개혁 교회의 대표적 신학자인 필리프 모르네(1549-1623)는
‘죄악의 신비’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항거는 모든 세대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다른 저서인 ‘교회론’에서는 “알비인들과 발도인들은
적그리스도에 항거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들이었으며,
교리와 관련하여 위클리프와 후스가 일치하였던 것처럼
알비인들과 발도인들 역시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는데,
이를 더 직접적이고 정확한 표현으로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은
오늘 우리 개혁 교회와도 완전히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교황주의의 역사’에서도
“이 시기에 우리 프랑스에서 발도인들 또는 알비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로마 교회의 모든 그릇된 전통을 비판하였다.
이들은 피에몽, 도피네, 비브레, 랑그독, 기엔 게곡들에서
교황주의의 부패와 인위적 교리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순수함과 단순함 안에서 강건하게 지켜 냈다.
알비인들은 초대 교회와 동일하게 ‘남은 자들의 진정한 혈통’에 속했으며,
알비인들에게서 마니교의 흔적 따위는 아무것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아그립파 도비네는 ‘비극’에서
사도들이 가르침을 보존한 진리의 증인들 가운데
발도인들과 함께 카타르인들, 얀 후스를 포함시켰고,
‘보편사’에서는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이 초대 교회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 사상과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의 참 교회의 역사>, PP 504-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