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로이드 존스, "에베소서 강해", 2권, 3장 원죄 (김영희 요약)

강대식 2022. 10. 24. 10:04

3 장 원죄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1-3)

 

- 앞서 첫 번째 원리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영적으로 죽은 존재임을 우리가 인식하기까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의 위대성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에서 공중 권세 잡은 자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점은 복음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뿐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사항이다. 기독교 교리가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개념처럼 얼빠진 것이 없다. 오늘 세상이 이처럼 뒤범벅이 된 것은 인간들이 성경이 인간에 관해서 말하는 진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4:1)

그들이 죄 가운데 있으며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들 밖에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데 빠져 있는 한, 세상은 계속해서 그러한 고통으로 일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적인 죄의 교리가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것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란 단순히 도덕적 최고치들을 수정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나 또한 교회를 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듣고 의무를 다하면 선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가는 것이라는 것은, 성경적인 교훈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가 그 문제의 참된 본질을 깨달으려면 먼저 인간의 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우리는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것과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그 상황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으며 모든 방면에서 우리를 구출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 두 번째 원리 어째서 인간은 이런 상태에 빠져 있는가?

1. “불순종의 아들들

단순히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특징적인 성경의 표현이다.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성경에서 악인들이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불려지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 어구가 불순종이 이 특징적인 성격의 원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의 현재 이러한 존재가 되게 한 것이 불순종이라는 의미에서 불순종의 자녀들이다.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고통은 불순종이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고통과 재난을 불러온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서 가지는 관계는 불순종이다. 죄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요 의도적이다. 그것은 순종과 떨어져 있는 것이고 우리를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권리와 다투는 것, 즉 모반이다. 성경이 인간에 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죄에 대한 성경적 교리는 약6, 70년 전에 사람들의 사고에서 떠나버리고 대신 심리학이 그 자리에 들어왔다. 때문에 훈육과 징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했으며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거스려 자기 자신을 높이 세우는 인간의 소행은 스스로 하나의 신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세 노선을 통해 역사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자기가 피조물이라고 하는 이 사상이 인간에게 모욕적인 것이라고 느낀다. 인간이 최고요 모든 것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대적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과 중추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앞의 요점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하나님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순종할 때에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적인 상태에 있으며 그의 복락은 그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실제화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한다.

 

복음처럼 자연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만 구원받으며 인간은 궁핍한 자로서 값없는 선물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혐오감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이다.

 

그 점이 십자가의 원수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불순종의 표현이다. 그는 은혜를 믿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거스려 일어선다. 또한 그 은혜를 향하여 싸움을 거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율성,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있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역설이다.

 

자율적인 인간은 자기로 충분한 사람,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독립하여 살아가는 사람, 하나의 신으로서의 인간, 우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 왕좌 위에서 보좌에 있는 인간, 바로 그러한 개념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불순종하고 그것을 자랑하며 그 안에서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불순종은 능동적이고 적대 감정에 있어서 능동적이다. 만일 우리가 그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순종한다.

 

현대인은 나의 의지는 자유롭다고 말한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에 관해서 자유의지 같은 일은 없다. 의지의 자유는 타락 때 잃어버렸다. 인간은 거기서 죄의 노예가 되었고 마귀의 지배 아래 오게 된 것이다. 그의 의지는 매여 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없다. 인간이 죄 가운데 빠진 깊이가 그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날필요가 있는 것이며 새로운 본성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본질상

우리는 나면서부터 다른 이들과 같은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불순종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

 

죄 안에 있는 인간은 결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중간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라나면서 죄를 짓는 것은 다름 아닌 나쁜 환경에 기인되는 것이다.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 자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이미 더러워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부모로부터 죄의 본성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반역의 성질이 있으며 금지된 것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본질상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를 의지의 행동들과 구별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죄가 우리 속에 있으며 우리의 본성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는 경우가 있다. 진정한 문제는 행동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답은 내 속에 있는 무엇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5:11,19-20)

 

문제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은 타락한 죄의 본성이다. 바울은 그것을 내 지체 속에 있는 법이라고 하였다.(7:23)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7:18) 그것은 본질상 부패한 것이요 악한 것이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만일 우리가 중간 존재로 태어났다면, 문제가 악한 환경에 기인한다면 여러분이 행해야 하는 것은 오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최근 6, 70년 동안의 주도적인 철학은 그것이었다. 인간이 타락했던 곳은 낙원이었다. 인간이 원래 의로운 조건에서 타락하였다면 하물며 이미 타락한 인간이야 얼마나 더하겠는가? 인간의 난제와 비극은 바로 그러한 깊은 곳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성경뿐이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3. “우리도 다

우리도 그런 자리에 있었으며, 우리도 다른 이들과 같이 진노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죄 안에 있는 사람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이방인뿐 아니라 유대인에게도 해당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다고 믿어 왔으며, 그들에게 이방인들은 외인이요 밖에 떠도는 개들이었다.

 

유대인들이 자기가 이방인과 같은 죄인이라고 말하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것이 유대인에게 매우 거침돌이었으며 유대인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희로 출발하였으나 여기서는 우리이다. 그것은 사도인 바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다소 사람 바울로서 그는 자기의 삶을 만족하게 여겼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율법이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할 때, 그는 그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고 자기가 엄청난 죄인임을 알았다. 죄인 중에 괴수니라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그 점을 아는 데 매우 더디다. 치명적인 실수는 죄를 언제나 본질과 성향의 차원에 두지 않고 행위와 행동들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실수는 그것을 마땅히 하나님과 우리 관계에서 생각하는 대신 특별한 일들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죄는 네 마음과 목숨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할지니라는 말씀에 일치되는 태도와 삶에 정반대되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면 여러분은 죄인이다. 만일 여러분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죄인이다. 여러분이 스스로 완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럴수록 죄는 더욱더 크다.

 

죄가 높아지면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독립하여 있어도 된다고 느끼는 것은 육신으로 짓는 어떤 죄보다 무한하게 더욱 큰 죄다. 자기만족, 자기 충족감, 자기 의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죄 중에 죄이다. 그것은 영적인 죄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그 점을 인식하게 될 때, 여러분은 사도가 우리도 다 다른 이들과 같이라고 말할 때 과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한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해당되는 것이다. 그것은 타락과 죄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이다. 여러분은 원죄의 교리를 떠나서는 현대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을 떠나서는 참된 구원의 교리를 가질 수 없다. 아담은 타락하였고 죄를 지었다. 그 결과 모든 아담의 후손이 부패한 가운데서 태어났으며, 본성적으로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보편적이며 어디서나 일반적이다.

 

전체 세계는 여기서 하나이다. 우리는 모든 죄 안에 있으며 불순종의 자녀요, 타락한 본성을 물려받은 자들이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3) 그러므로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전적으로 무능하다.

 

- 다른 것으로는 그러한 조건 안에 있는 인간을 타개할 수 없는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아니고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신 그 능력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셨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전에 빠져 있던 가공할 곤경에서

그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일으키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