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 신년설교, '푯대, 부름의 상을 위하여', 빌 3:13-14

강대식 2023. 1. 1. 12:57

2023-01-01 신년예배설교

본문: 3:13-14

제목: 푯대, 부름의 상을 위하여

 

1. 이미 한 일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14)

 

새해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해가 되게 하자.

푯대는 사람들의 야망도 욕심도 아니고 사명선언서를 써가며 내거는 목표도 아니다.

푯대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푯대 곧 부름의 상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부르신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만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만이 살 수 있는 푯대이다.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 한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2)

 

푯대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이어야 한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다.

그것만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모세는 이 부름의 상을 위하여 애굽의 모든 보화와 특권을 버렸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크게 여겼으니 상을 바라봄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2)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세상은 욕하고 핍박하는 데 하늘에서는 보화가 쌓이고 상이 크다고 하신다.

이 세상은 잠깐이요, 하늘은 영원 세상이다.

잠깐 사는 이 땅에서 재물과 권력과 명예의 차이로 괴로워하는데,

영원히 사는 하늘에서 그 상의 차이가 영원한 것을 알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가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뒤에 있는 것을 잊지 못하면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갈 수 없다.

 

자유주의 신학은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구원이고

과거에 의존하여 사는 것을 죄라고 한다.

실존주의 철학을 가져다가 적용한 것이다.

 

다분히 빌립보서를 인용한 것이다.

말로는 사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고 말씀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만 살 수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功成而不居라고 했다. 공을 이루고 거하지 말라.

한번 공을 세운 것 가지고 거기에 들러붙어 그만 뜯어 먹으라는 것이다.

공을 세웠으면 거기 거하지 말고 떠나가라는 것이다.

육신의 사람 정욕의 사람이 살 수 있는 진리인가?

 

참다운 개혁은 끊임없는 개혁이고 내가 이룬 개혁도 다시 개혁하며

끊임없이, 원리에로, 원칙의 말씀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을 따라 말씀으로 사는 자만 가능한 것이 개혁이다.

그 개혁 위에 하나님은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부흥을 주신다.

 

2. 이전 것은 지나갔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으로 살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려면 이미 지나가버린 이전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제자요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의 전이다.

옛 것은 지나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그렇게 달라져야 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성화요 성숙이다.

 

심리학 상담학이 말하는 변화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변화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능하고

그 일을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겨우 심리학적인 변화만 알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변화는 내버렸다.

신앙고백부터가 아니니, 전혀 뿌리가 다른 종교가 되어 버렸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가르친, 성령의 전통을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새 것이 되었고,

성령을 따라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을 자각하고 인식해야 한다.

 

새해에 푯대를 향하여 살려면, 이런 자의식과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한다.

육신을 따라 살 것인지, 성령을 따라 살 것인지,

육신의 생각으로 살 것인지, 영의 생각으로 살 것인지

사망을 살 것인지, 생명과 평안을 살 것인지, 순간 순간 결정해야 한다.

 

성경을 멀리하면, 영과 멀어지고, 육신을 따라,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게 된다.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자기 자신으로 충만해지고 자기 옳은 소견으로 살게 된다.

그 결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도 사사시대 암흑시대로 변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있기 전에는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삶을 지배하게 된다.

빛이 있어야, 낮과 어둠이 구별되고, 궁창 위와 아래가 구별이 있게 된다.

그 빛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빛이 성경이고, 성령의 역사이다.

그 빛의 사람들이 성경도들이고, 이들의 경건서적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항상 있다.

 

성경도는 성경의 제자, 성경의 종,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청교도성경도를 구별해야 함을 최근에야 깨닫고 있다.

청교도들 중 그 핵심과 중심이 되었던 소수의 사람들이 성경도들이다.

 

성경도들이 받아야 할 영광과 성경적 정체성을 과도하게 청교도들이 받았다.

청교도들의 책들 중 성경을 어렵게 만드는 데 기여한 것들은 제외되어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만을 알고 추종하는 사람들은 개혁주의이건 청교도주의이건 문제가 있다.

 

참 기독교 참 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라 성경적 가르침과 삶의 모범을 통하여

13세기에 전 유럽을 폭발적으로 종교개혁을 이루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성경도들이었고, 참된 믿음의 선진들은 성경도들이었다.

 

이 믿음의 선진들에 비하여 개혁주의와 청교도들은 지나치게 문서화 율법화 지성주의화 했다.

심령의 변화와 삶의 모범보다는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많이 써, 성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믿음의 선한 싸움과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는 그렇게 어려운 책들과 지성이 필요하지 않다.

말말 많고 글만 많고 책만 많고 행함이 없는 자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세상은 지식 수준만을 높여 과외 없이 돈 없이 좋은 대학 못 가게 만들고 있고,

좋은 대학 또한 지식 자랑 학위 자랑만 하고, 출세와 성공의 발판 노릇만 할 뿐,

참으로 사람이 변화되고 개혁된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지성은 필요하지만 성품과 삶의 변화보다 우선일 수 없다.

그렇게 두꺼운 책들과 어려운 학문들은 사람의 머리와 교만만 키울 뿐이다.

기독교 학교들도 처음 취지와는 달리 정규대학들이 되면서 변질되고 세상화되었다.

참 기독교 학교는, 성경 학교는, 세상의 대학이 되지 말아야 순수성을 이어갈 수 있다.

 

이조시대에는 어려운 과거시험이, 현대에는 소위 어려운 고시가,

자기 이익, 파당 이익만 추구하는 고급 지도자들을 산출할 뿐이고,

그들로 인하여 세상은 더욱 어지럽고, 어두워지고 있고,

그들이야말로 불공정과 불평등의 주범들이 되고 있다.

 

초대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실천을 따라 그 전통을 이어받은 성경도들은

로마교회의 핍박과 학살과 화형에도 불구하고 참 믿음과 실천을 위해 헌신하였다.

지도자들도 두꺼운 책들, 많은 책들을 써서 유명해질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성경을 사랑하며 영성과 순수하고 단순한 가르침에 의해 성도들이 선거로 선출하였다.

 

참된 믿음과 실천을 위하여 성경을 참으로 사랑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성경도가 되자.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주추를 세운 지혜로운 자와 같다고 하셨다.

신학은 실천신학이 되어야 한다. 성경도 실천 성경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로, 새 것으로, 성경을 따라 사는 것,

그것이, 새해는 물론, 전 인생을, 복되게 하고 형통하게 하는 비결이다.

이미 지나간 것에 의존하고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달려갈 수 없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기대할 수 없다.

 

3.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6;19-20)

 

이 말씀의 결론은 33절에 나와 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해가는 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땅에 보물을 쌓는다.

나를 위해 땅에다 쌓아두면 내것이 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좀과 동록이 무엇인가?

작은 사고들, 소소한 질병에 드는 돈들, 분실하고 실수와 낭비로 없어지는 것들 아닌가?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기 크게 당하고, 큰 병 걸리는 것, 큰 사고를 당하는 것, 큰 낭비와 큰 실수들 아닌가?

 

학개서는 말씀한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1:6)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졌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10-11)

 

자기를 위해 땅에다가 보물을 쌓으면 하나님이 불어 버리신다.

전대에 구멍이 뚫어지게 하신다. 많이 뿌리고 수고했는데도 수확이 적게 하시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한재(가뭄으로 인해 생기는 재앙)가 들게 하신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으면 좀과 동록도, 전대 구멍도, 도둑질도 당하지 않게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먼저 구한다는 것은 우선 순위가 하나님 나라이고 그 의인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내 가진 것을 우선적으로 쓰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와 주의 일에는 인색하고 억지로 하는 것은 도둑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좀과 동록을 불러 들이고 한재를 불러 들이고 전대에 구멍을 뚫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이런 것들을 다 없어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살면, 내 수입은 날로 줄어들 것이고,

하늘의 계산법으로 살면,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새해에는 성경이 말씀하는 하늘의 계산법으로 살아서,

이 모든 것이 더해지고, 형통해지고, 더욱 풍성한 새해가 되시기를 빈다.

 

그것이 새해, 푯대를 향하여 사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하나님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의 방법 이길 수 없다.

 

빨리 깨달은 만큼, 한해의 수확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고,

늦게 깨달은 만큼, 한해의 한재가 많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음 새해에 다시 어떤 결과를 갖게 되었는지 비교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기도 하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을 먼저 붙든 사람은 재물도 잃고 하나님과도 멀어진다.

하나님을 먼저 붙든 사람은 재물도 상도 크게 받고 풍성해진다.

 

아무쪼록 새해의 푯대가 내 야망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 푯대를 향하여, 그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새해, 풍성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