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8 주일설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마 7:21-23

강대식 2023. 1. 8. 12:30

2023-01-08 주일설교
본문: 마태복음 7:21-23
제목: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1.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7:2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그 인사 많이 받았다고 복 많이 받는 것 아니다. 

복 많이 받는 방법은 따로 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복 많이 받는 방법은 같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복을 많이 받고 복 많이 받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 
문제는,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거리가 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해야 복을 받고 그 복을 받은 사람이 천국을 차지한다.
부자 될려고 하고 성공하고 출세할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해질 수 없다. 겸손하고 낮아질 수 없다. 죄를 애통하고 회개할 수 없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산상설교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본문은 그 산상설교의 결론이다.  
예수님의 복은, 이어서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것이다. 

이어서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5:10)가 끝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로 시작해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로 끝이 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국이 자기의 것이 될려면, 산상설교의 팔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 많이 받으세요’는 세상 복, 곧 재물복 성공복 건강복을 많이 받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 년말부터 새해 한달 동안 앵무새처럼 같이 읊어대니 한심할 노릇이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할 것 없이 세상이 그려놓은 이미지들과 음악들과 글들을
아무 반성 없이 서로 주고 받고들 있으니,
성경의 복과는, 예수님 산상설교의 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세상이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천국과는 가까울지 몰라도,
그래서는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복과 천국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일 뿐이다.
교회도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아무 생각 반성 없이 성경 없이 따라가고 있으니 한심하다. 
그런 그림 음악 주고 받을 시간 있으면 마태복음 5장만이라도 읽어보세요.

성경으로 돌아와서, 산상설교로, 돌아와서, 복이 무엇인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 
로이드 존스가 설교한 “산상설교” 상 하 두 권을 한달이 걸리건 두달이 걸리건 읽어보기 바란다.
복과 천국이, 세상이 말하는 것과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비로소 알고, 가슴을 칠 것이다. ‘복 많이 받으세요’, ‘천국 가세요’가 쏙 들어갈 것이다.  

복과 천국을 바로 알지 못하면, 착각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복과 저주를, 거꾸로 알게 된다. 
천국 문인 줄 알고 가보면 지옥일 것이고, 복인 줄 알던 것이 저주일 것이다.
실컷 예수 믿고 교회 다닌 사람이 지옥 가고 저주 받는 것보다 
더 억울하고 더 분통 터질 일이 또 있겠는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 운다고 하셨다. 

믿음의 선진들은, 몰라서, 어리석어서, 그 믿음만 버리면 살려 주는데도,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가 박해와 고문과 감옥과 화형을 의연하게 받으며 믿음을 지켰을까?
그들은 복과 천국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며 경외하며 죽어갔다.   

복과 천국은 그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을 박해하고 불에 태우던 자들은 저주와 지옥이 그들이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은 거짓말 책이고 예수님도 거짓말 하였고, 십자가 죽음도 거짓일 것이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은혜로 선물로 위로부터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여야 한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는 평생을 주여 주여 했어도 지옥이 그들의 것이다.  
   
2.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야 한다. 
요즘 교회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만 알고 ‘초월해서’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은 잊어버렸다.
나와 비슷하고 무조건 복만 주는 ‘파더 이미지’ 하나님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하나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이웃 아저씨 부르듯 하고, 심하면 개 부르듯 하면서,
아무 경외심도 두려움도 없고, 하늘과 땅만큼 우리와는 다르신 분은 알지 못한다.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감각도 없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주여 주여 주의 이름 부른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내 아버지의 뜻은 성경 말씀에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말씀은 해석을 잘해야 한다. 
사도들은 예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초대교회는 사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구약 선지자들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받았다. 
초대교회의 가르친 전통은 대를 이어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며 오늘에까지 내려 왔다. 

같은 성경을 놓고도, 로마교회가 가르치는 전통은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였고,
같은 성경을 놓고도, 초대교회 가르친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로마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죽음을 부릅쓰고 믿음을 지키며 산상설교대로 살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진 믿음은 죄와 악독을 행할 뿐이다. 
더 무섭고 가증한 것은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들이면서 겉은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온다는 것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많이 모이는 곳, 크고 화려한 교회, 세상이 알아주는 교회로만 몰려가고 있다.
진리와 의에는, 관심이 없고, 눈도 한 번 안주고, 단 1분도 시간을 안 주고, 
로마교회 전통을 이어받은 영 줄기인 줄은 모르고, 태평성가 부르며, 
복과 천국을 따논 당상으로 여기며, 호호하하 웃으며, 즐기며, 지옥문을 향해 가고 있다.  

어디 교회에 속했느냐가 아니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여야 한다. 
내 아버지의 뜻을 바로 제대로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머리의 돌판에, 입술에, 아무리 많이 넣고, 읊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바로 알고 그 뜻대로 행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 그 지식은 헛것이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은 지은 지혜로운 자이다. 
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이다. 

주님의 ‘내 말’은 영이고 생명이다.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 되어야, ‘행한다’. 
마음에 생각에 기록되어야, ‘행한다’. 머리에 있는 것은 행하지 않는다. 
주님의 피가 마음과 영혼에 뿌려져야 하고 성령이 내주하셔야 말씀대로 ‘행한다’. 
  
머리와 마음 따로, 임술과 마음 따로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면서 헛 섬기는 것이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주여 주여 없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아무리 선행을 행한들 주여 주여 주가 없고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 주가 입술에만 머리에만 있지 않고 마음에 있는 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간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약에서도 신약 주님의 말씀에도 똑같이 강조하고 있다. 
신명기에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 
곧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저주를 받는 자는 순종하지 않는 자, 행하지 않는 자이다. 

여호수아도 다윗도 시편도 형통하고 복 있는 사람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말씀을 즐거워하고 행하는 자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도 종교적인 열심과 종교적 행함이 많은 자가 아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무너진 기초를 쌓으리니”(사58:6-12)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뻐하는 금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빛도 치유도 공의도 영광도 응답도 인도하심도 영혼의 만족도 뼈의 견고함도 물댄 동산도,
나아가 후손과 제자들도 역대의 무너진 곳 오래 황폐된 곳 다시 세우는 것도 
다 기뻐하는 금식, 곧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교회에, 이 행함이 얼마나 부족하고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주님이 양과 염소의 무리를 나누면서 그 기준이 바로 주여 하는 사람의 행함이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이, 복과 저주의 갈림이, 그 기준이, 믿음의 행함에 달려 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천국)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 헐벗었을 때에, -- 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4-40)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지옥)에 들어가라 ---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41-46)
- 이 행함이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3.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2-23)

주여 주여 하며 행하긴 행했는데 불법을 행했고, 
그 주의 이름으로 행한 자들이 누구인가? 선지자 곧 목사들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도, 오늘의 목사들이다. 
분명히 주의 이름으로 영적 역사를 하고 능력을 행했다. 

그런데 그것이 불법을 행한 것이다. 
불법은, 세상 법의 기준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것이다. 
제 뜻대로, 사탄의 뜻대로, 세상의 뜻대로, 행한 것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으로 안목의 정욕으로 이생의 자랑으로 행한 것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것은 행하지 않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닌 제 뜻, 사탄, 세상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은사 치유 권능에도 많이 속지만, 제일 많이 속는 것은 ‘선지자 노릇’에 속는 것이다. 

선지자 노릇하는 목사가 다 목사가 아니고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닌 것이다. 
음부에 권세에 놀아나고 포로가 된 교회는, 그 목사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사탄의 영 줄기는 에덴 동산에서 유대교회로 로마교회로 개혁교회로 현대교회로 
줄기차게 이어져 왔음을 새롭게 깨우쳐 알아야 한다. 

유대교회도 로마교회도 개혁교회도 현대교회도 개혁 안했나요? 
다 나름대로 개혁한다고 했지요. 전혀 안하면 그냥 썩어문드러져서 누릴 이익도 없어지니깐요. 
문제는 영 줄기가 달라지지 않으면 그 개혁은 허울좋고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가 되어 개혁하고 부흥하는 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 속고 있다. 
초대교회가 가르친 전통은 로마교회가 아니라 발도인들과 위그노들의 교회로 이어졌고
그들이야말로 13세기에 전 유럽을 믿음의 행함으로 폭발적인 종교개혁으로 변화시켰다.
유일하게 알려지고 다 머리숙이는 16세기 종교개혁은 
그와는 다른 줄기 로마교회의 개혁 줄기였음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 
발도인들 위그노들의 역사도 16세기 종교개혁에 그냥 연결시키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루터도 발도인 후예들이 찾아와서 만났고, 
칼빈의 사촌형도 발도인들의 바르브였지만, 그들은 그 영 줄기, 그 전통을 따르지 않았고, 
성공하고 있었으니까 자기네가 더 옳다는 것이었다. 파렐만이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처럼 행했다.
묵은 포도주는 개혁해도 묵은 포도주이고 결국 같은 모양으로 같은 열매를 맺고 있다. 

주님 말씀대로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믿음과 행함의 전통은 발도인들 위그노들이 이를 이어 받아 행함으로 실천하였고, 
그 전통과 그 영 줄기를 이어받는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존 폭스의 “기독교 순교사화”를 꼭 읽어 보고, 
권현익의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교회의 역사”를 꼭 읽어 보되, 
영 줄기가 다르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