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주일설교,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마 16:13-20
2023-07-09 주일설교
본문: 마 16:13-20
제목: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1.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한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그에 앞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더러는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정도로 본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을 이 정도 수준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주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완전한 인간이요 그 인간 중에 만왕의 왕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못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셨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그래서 아버지의 영이라고도 하고 아들의 영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셨다는 것은 피조물을 낳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을 아들로 낳은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오직 한 하나님이시다. 결코 세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분은 항상 ‘살아계셔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성경이 증거하고 성령이 증거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셋이 하나이고 어떻게 하나가 셋이냐고 물어왔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물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아무 의문 없이 성경의 증거가 그대로 믿어진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인간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로 오셨는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
요한복음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했다.
아들 하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는
동정녀 탄생과 성육신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성경의 증거가 그대로 믿어진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한 거듭난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모든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며 말씀으로 거듭난다.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이 그대로 믿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거듭났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요 만왕의 왕이시다.
동시에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신앙고백이 분명할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신앙고백을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혈육은 곧 인간은 이 신앙고백을 알게 할 수가 없다.
교리 책을 아무리 많이 쓰고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
아버지 하나님이 성령으로 깨닫게 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크고 화려한 곳으로 아무리 많이 몰려가도 소용이 없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가 구원을 받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아버지의 영의 역사로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고 베드로처럼 입술로 터져 나와야 한다.
그 은혜에 의하여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한다.
그 믿어지는 감동과 감격이 없다면, 평생 교회 다니고 천국 못 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입술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먼 사람이 그렇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침을 받은 결과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대로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말과 지혜로 가르치는 성경과 교리는 머리만 키울 뿐 마음에 감동을 줄 수가 없다.
그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게 할 뿐,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지는 못한다.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지키고 회복하지 못하면,
현대교회의 다수도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의 다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 다수일 뿐이다.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다.
여러분은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왜 그렇게 책망하시고
멸망에 이르게 하는지를 눈여겨 보고 남의 일로 여기지 말고 내 일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다수가 율법이 없었나요 예배가 없었나요 열심이 없었나요?
다 있었지만, 마음 가죽을 베지 않고, 묵은 땅에 가시덤불에 파종하였을 뿐이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는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을까요?
바리새인의 누룩은 교회를 개혁한다고 하면서 문서교리주의자들이 되는 것이고,
사두개인의 누록은 교회를 번영하게 한다고 하면서 세속에 물든 경건주의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누룩 곧 교훈과 가르침과 성경 해석들이 입술과 머리로만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능력을 행해도 주님은 도무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신다.
듣고도 행하지 않는 믿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그 알량한 지식으로, 사람의 지혜로, 교리 그만 파고,
교훈과 책망을 받으며 바르게 되고 하나님의 의로 교육을 받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함으로 보여주어야지, 입술로 교리로 그만 뇌까려야 한다.
가르침만 있고 지켜 행함이 없다면 그 가르침이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구원하지 못한다.
성령으로 가르침 받아 지켜 행해야 구원이 있고 축복이 있고 형통이 있다.
지켜 행해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것이다.
2. 이 신앙고백 위에 주님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사람들이 로마교회요 소위 천주교이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고 자기들은 그를 이어받은 교황과 직제라는 것이지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높이 칭찬한 주님이 갑자기 베드로 위에다가,
용감하지만 변덕 심한 베드로 위에다가 주님의 교회를 주님이 세우시겠어요?
그것은 앞 뒤가 안 맞는 해석이고 악한 의도가 있는 잘못된 문자주의 해석이다.
반석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게 한 신앙고백이다.
이 신앙고백 위에 주님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세우시는 내 교회이다.
베드로의 교회가 아니다. 그를 팔아 대를 이어 교황이 세우는 교회가 아니다.
주님의 교회는 이 신앙고백 위에 주님이 사람을 통해 세우신다는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 위에
주님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미 이긴 교회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운 교회는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될 수가 없다.
다른 거 위에 사람이 제 뜻대로 세웠기에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되지요.
어리석은 교인들은 맹인이 세운 교회에 합류하여 함께 맹인이 되어 구덩이 빠져들고 있다.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은 교회가 참 교회이고 생명을 인도하는 교회인 것을,
알려고나 하고, 찾을려고나 하는 의식이라도, 언제 가져본 적이 있는가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되고 싶은가요?
홍해를 건넌 다수인데도,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요단을 건넌 다수인데도, 결국 가나안에서 멸망을 당하고 마는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서도
지금 오늘날 교회의 다수는 다른 결과를 낳을 거라고 낙관을 하시는가?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되지 못하면,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 다 시대만 다를 뿐 같은 운명인 것을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와 로마교회 역사를 보며 제발 제발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주님이 세운 주님의 교회에 속하기 바란다.
3. 이 신앙고백 하는 자에게 주님이 천국 열쇠를 주신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9)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다.
베드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이 분명한 자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분명한가? 그렇다면 주님은 천국 열쇠를 주신다.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천국 열쇠이다.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을 주시는지 알아야 한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고 믿는다는 것은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하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천국 열쇠를 받아서 매고 풀고를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확실한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 집안이 매이고 풀려 천국에 갈 것이다.
기생 라합의 신앙고백이 그 집안 전체를 구원 받게 한 것과 같다.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간수와 그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은 것과 같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 형제들도, 현재 믿지 않는 부모와 형제들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분명한 한 사람이 받은 천국 열쇠로 인하여
그 집 전체의 구원의 문이 열릴 수 있음을 믿기 바란다.
로마 교회는 성경에 없는 연옥을 만들고 면죄부를 팔아서 만든 천국 열쇠로,
죽은 사람들의 구원의 문을 연다고 사탕발림을 하여 천년 동안을 속였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함께 구덩이에 빠졌다.
성령의 지혜가 아닌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아무리 율법화하고, 아무리 교리화해도,
그것이 천국 열쇠가 될 수는 없다.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하고 그 고백의 믿음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행함으로 그 믿음을 증거하였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였다.
그 가르침의 전통을 이어 받은 발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무장하고, 주님의 참 교회를 세우고,
음부의 권세인 로마교회의 그 잔인한 핍박과 감옥과 고문과 화형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알게 하신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잉태하는 것과 같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아는 자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한다.
여호와를 알아야 하고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을,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힘써 알아가야 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도 바로 하나님이 알게 하신, 이 앎에서, 배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교리로만 배우는 데 너무 오랜 세월을 보냈다.
개신교가 종교개혁 이후 오백년 동안 교리성만 쌓고 안심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왜 초대교회와 다른 열매인지, 왜 발도인들과 다른 열매인지,
우리는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어야 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로,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에로
그를 이어받은 발도인들의 단순한 복음과 삶의 모범에로 돌이켜야 한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천국 열쇠를 확실히 받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