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주일설교,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 4:12-14
2023-11-12 주일설교
본문: 히 4:12-14
제목: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
주님의 말씀대로 ‘내 말은 곧 영이고 생명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되지 못하면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을 수 없다.
영으로 마음판에 썼느냐, 먹으로 돌판에 썼느냐의 차이는
말씀의 살아 있음과 활력이 있음의 유무를 판가름하는 열쇠이고 시금석인 것이다.
먹으로 돌판에 쓴 편지는 죽어 있고 활력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나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할 수밖에 없다.
말씀을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면 그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되고
성령이 가르치신 것으로 하면 그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된다.
그 말씀이 영과 생명이 되어 살아 있어야 활력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 있게 될려면,
먼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서 구원 받고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교리로 지식으로 아무리 많이 알아도, 변화나 열매가 있을 수 없다.
교리를 아니까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안심하기가 쉽다.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을 때 그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성령의 검이 된다.
혼과 영 사이를 관절과 골수 사이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인간의 힘과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그렇게 찔러 쪼개기까지 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기 마음의 생각과 뜻을 따라 산다.
그렇게 살 때, 그는 그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은 자이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게 마련이고, 그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다.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게 된다.
성경은 이와 같은 사람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로 살리셨다.
은혜와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구원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영적인 갈등과 싸움을 하게 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유혹과 정욕이 올 때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씀으로 싸워 이겨야 한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으로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분별하여
육신의 소욕은 물리치고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살아 있는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온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고 평안한 인생길을 가게 해준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분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의 사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령의 사람, 성경의 사람이 되는 일에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피상적으로 읽지 않기 위해서는
새 언약의 일꾼들이 영으로 마음판에 쓴 경건서적들을 가까이 해야 한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을 두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일만 스승들은 멀리해야 한다.
아버지 스승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 안에서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우리 영혼과 삶에 유익하게 적용하게 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과 등등하게 높이고 받들고 마음과 삶에 예리하게 적용하게 해준다.
성경은 사도들에게서 들은 것을 전통을 따라 가르치는 스승에게서 배워야 한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다. 배워서 지켜 행해야 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매일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인간의 계명 곧 철학은 헛된 속임수이다.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개신교 오백년의 교리책들과 신조들이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학문들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먹으로 돌판에 쓴 것들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할 견고한 진인 것이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과 혼 사이도 찔러 쪼개는 예리한 검으로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분별해야 한다.
2.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 앞에 다 드러난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받아야 한다.
한 해 추수를 결산하여 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일생의 추수를 감사함으로 잘 결산할 수 있을 것이다.
결산의 개념이 없으면 한 해도 한 달도 함부로 살게 될 것이고,
그러한 한 해 한 해가 쌓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의 결산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은 동일한 부지런과 인내와 오래참음으로
인생의 결산을 잘한 이들임을 기억하자.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인간은 언제고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지으신 것이 하나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결산을 받으실 하나님의 눈 앞에 드러난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8:17)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다고도 했다.
인간들이 행한 악행들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으니 악인들은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인간의 선행도 악행도 심판대 앞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행한 대로 행함에 따라 보응과 심판을 받게 된다.
그가 계신 것과 그가 반드시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푯대가 되어야 하고 그 상을 위해 달려 가야 한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검으로,
내 마음의 생각과 뜻을 분별하여 순종 또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육체의 욕심과 열매들은 버리고
오직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가야 한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이다.
하나님의 나라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다.
오직 영적인 것은 영으로 분별해야 한다.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으로 분별해야 한다.
사람의 지혜로 한 것과 영으로 한 것, 그 차이를 예리하게 분별해야 한다.
3.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14)
믿는 도리 또한 말씀이다.
말씀은 곧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1:1)
우리는 심판대 앞에 홀로 서지 않는다.
그 심판대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권세를 아들 하나님에게 맡기셨다.
그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 계신다.
그냥 대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나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갈리는 제사장이 아니라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히5:6)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말씀이시고 영원한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는
우리는 살아 있고 활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 수 없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모르고 그분을 마음에 모실 수 없다.
주님은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죄의 속량을 받고 또한 그 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친히 맛보셨다.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구원의 창시자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고 영광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믿는 도리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지요.
그 말씀은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고,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이 들은 것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었다.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이 들은 것을 전하여 준 말씀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그 가르친 전통을 목숨 걸고 피흘리며 지켜온 참 교회 역사를 대를 이어 가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도리이다.
인간들의 지혜와 학문으로 돌판에 쓴 먹물이 아니라,
영으로 마음판에 쓴 새 언약의 말씀이어야 한다.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여 행하는 말씀이다.
이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말씀도 지식이 되어 버리고 먹물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사람이
말씀을 새 언약으로 마음과 뜻에 새기고 준행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게 찔러 쪼갠다.
숨긴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을 심판대에서도 후회나 부끄럼이 없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알고, 믿는 도리를, 말씀으로 영으로 굳게 붙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