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플라벨

섭리의 손길이 거룩의 길로 이끈다 / 존 플라벨

강대식 2012. 3. 21. 22:12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세상의 위로를 빼앗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전부, 또는 일부를 제거해 세상을 향한 욕망을 억제하도록 도와준다. 성화의 사역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시는 성령님이고, 다른 하나는 외적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섭리이다. 성령님은 성화의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이시다. 성화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에 달려 있으며, 성령님 없이는 그 어떤 섭리도 성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섭리가 성령님의 축복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할지라도, 성화의 사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외적 상황을 섭리하시어 성령님의 사역에 이바지하게 하신다. 섭리와 성령님의 사역은 서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그 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 합력한다.

 

성령님은 섭리의 수레바퀴 안에 거하시며 그 방향을 인도하신다(겔1:20). 따라서 성령님과 섭리는 서로 뜻을 같이해 함께 움직인다. 성령님의 내적 사역은 성도 안에서 죄를 죽이는 것이며, 외적 섭리는 그러한 성령님의 뜻에 조력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위를 율법의 울타리로 두르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지키고자 하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뜻을 거스르려는 성향이 존재한다. 그러한 경우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도록 보호하실 목적으로 섭리를 베푸신다. 성령님은 죄의 성향을 억제하시고, 섭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죄의 길로 치우치려는 우리를 방해한다(욥33:17-19). 예를 들면, 육신의 질병이 죄를 예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바실은 만성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하나님께 두통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지만 두통에서 벗어나자마자 육신의 정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께 다시 두통을 앓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죄의 더러운 본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단지 고통에 못 이겨 죄의 삼가는 것은 정말이지 훌륭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경건한 신자는 그보다는 좀 더 고귀하고 고상한 동기를 지닌다.

 

고통의 섭리는 유혹의 오염으로부터 신자를 정결하고 깨끗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사27:8,9). 고통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영혼에게 복된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케 하실 목적으로 섭리를 베푸시어, 우리가 지나치게 사랑하는 피조물을 거두어 가시거나 고통을 바꾸어 괴로움을 주신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피조물에게서 기쁨을 얻도록 이끌며, 희망차고 장래성 있는 세상의 일들에서 삶의 만족을 찾도록 유도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벌써 악인들의 이에 씹히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악인들, 곧 불과 홍수와 짐승에 비유되는 사람들이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다(시124편). 충만한 섭리를 베푸시어 하나님의 교회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 존 플라벨, 『하나님의 섭리』, pp 14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