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자의 특징 / 리처드 백스터
영원한 안식은 성도들을 위해 남아 있지만, 그들이 그 세계로 들어갈 때까지는 안식을 즐길 수 없다. 이 안식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구속자 그리스도께 주어지고, 거듭나며, 죄의 악함과 죄로 인한 비참, 피조물의 헛됨, 그리스도의 충족하심에 대해 깊게 확신하는 자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영원부터 택함을 받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사랑 안에서 그 앞에 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엡1:4) 자이다. 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적은 무리이며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눅12:32). 그들은 생각보다 그 수가 적다.
그리스도께 드려짐.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그분의 아들에게 드려져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상실한 상태로부터 구속을 받고 안식의 영광으로 나온 자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17:2).
거듭남. 사람은 모태에서 태어날 때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나기 때문에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원수로 남게 된다. 영혼 속에서 역사하는 거듭남의 새 생명이 없이는 누구든지 자신의 삶에 가장 위대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확신함. 하나님의 백성 안에 있는 이 새 생명은 영혼 깊은 곳에서 신성한 것들을 깨닫거나 느낌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낸다. 새 생명은 죄의 악을 깨닫는다. 죄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어김으로써 하나님께는 모욕을, 죄인에게는 멸망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자들의 눈을 여셔서 죄의 형언할 수 없는 극악함을 보여주신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첫 번째 타락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이후로 인간은 피조물을 신으로 섬겨왔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 지닌 가장 무서운 죄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은 피조물에 신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자기 영혼의 가장 높은 곳에 둔다.
쾌락과 이익과 명예가 자연인의 세 가지 신이다. 이 세 가지는 자연인의 정욕적인 자아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면, 우리 안의 다곤(Dagon)은 무너진다. 피조물은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신이 될 수 없으며 나아가 인간의 타락과 비참에서 회복하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인간의 행복이며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구세주임을 알려 주신다. 주의 말씀과 섭리를 통해 역사하시며 회심의 역사는 종종 고난을 통해 나타난다. 기근에 처한 사람은 음식의 필요를 깨달으며 정죄의 판결을 받은 사람은 용서의 필요를 깨닫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필요로 하며 그분의 충족함과 완벽한 뛰어남을 깨닫는 사람이다. 굶주린 자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금이 아니라 빵이다. 정죄 받은 자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죄 사함 밖에 없다.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겨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게 될 것이다. 무화과 잎사귀 같은 우리의 불의한 의로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리기에 부족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의는 충분하다. 우리의 의는 율법의 공의에 한참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의 의는 율법의 공의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의지가 균형있게 변화됨. 이 깊은 확신 후에 의지의 변화가 나타난다. 의지의 변화란 성경과 ‘이성’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가 감각의 종이 되어 무질서와 악을 행할 때를 혐오하는 것이다. 또한 변화된 의지는 죄로 말미암아 비참을 분별하며 그러한 비참으로 말미암아 애통한다. 바울의 설교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다”(행20:21). 영생은 먼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다. 참 믿음은 그리스도를 온 영혼을 다해 받아들인다. 이에 주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주께 합당하지 아니하다”(마10:37)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그러한 마음으로는 주님에 의해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로 영접한다. ‘구세주와 주!’. 이 두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믿음은 십자가 상에서의 주의 고난이 나를 위한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용서와 영광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의 주권을 인정함으로써 주의 통치와 구원의 방법에 순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음.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제 그들은 온 맘을 다해 그리스도와 언약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죄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거저 주시겠다는 언약에 온 맘을 다해 동의한다. 따라서 언약은 완전하게 체결되었다. “이제 나는 피로 값 주고 나를 사신 내 주님께 내 자신을 다 맡긴다. 주께서는 나를 주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약속 안에서 견딤. 하나님의 백성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은 이 언약 안에서 끝까지 견딘다는 점이다. 성도는 유혹을 받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주를 부인하거나 주님과의 관계를 끊거나 혹은 주님과의 언약을 후회하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안식의 조건이 되는 우리의 견인을 끝까지 붙들어주고 인을 쳐주시며 또한 그 견인의 조건에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서명하여 보장해주신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끝까지 견딜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하라. 그렇지 않고 “뒤로 물러가면 주의 마음의 당신을 기뻐하지 아니하실 것이다”(히10:38).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라는 진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확언해 준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그들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엡1:11). 누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주의 백성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서 앗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와 고난을 통해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사53:11) 여기는 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히4:9). 예수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또한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게“(눅22:29-30)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은혜의 모든 방편과 영혼에 끼치는 성령의 역사, 성도의 은혜로운 활동들, 회개하고 믿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두드리고 구하며 노력하고 수고하고 달리며 싸우라는 모든 명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안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눅1:79) 주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평강의 목적지로 데려가실 것이다. 하지만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마11:12). 성경 그 자체의 목적은 인간에게 최종 안식의 복된 상태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주고 또한 어떻게 그 안식 누릴 자격을 소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데 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실 것이라. 주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러한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히12:14,요3:3,36,엡5:5,시9:17,살후2:12,1:7-9). 죄인들은 지옥에서 자신의 어리석은 고집을 영원히 탓하게 될 것이다. 지옥은 이성적인 속성을 지닌 인간이 자신의 양심의 호소에 따라 합리적으로 고통이 있는 곳이다. 자신들의 악독함과 고집 때문에 지옥에 들어오게 되었다면 그들은 자신을 꾸짖는 영원한 양심의 ‘구더기’를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대상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가진들 그것은 가장 무거운 짐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수고하기도 전에 안식을 주시거나 승리하기 전에 면류관을 주심으로서 주의 공의를 무너뜨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안식을 꾀한다든지 또는 안식을 찾으려 애쓰지 않도록 주의하라. 지금 이 육신 안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수고와 궁핍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가난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 병마와 모진 원수들과 불친절한 친구 때문에 피곤한가? 이곳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가증한 일들과 성도들의 죄악들, 악한 자들의 강퍅함이 당신을 지치게 하는가? 당신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항상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신의 죄악과 고약하고 못된 심보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 그렇다면 더 신음하며 힘들어 하라. 그러나 이 모든 피곤함 가운데 당신은 당신의 안식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기꺼이 나아가는가? 또한 당신의 싸움이 마무리되며 당신의 경주와 수고가 곧 끝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마음이 안식을 바랄 때까지 자신의 마음에 대해 더 불만을 품고 더 힘들게 하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영혼들은 육체에서 떠나는 순간 천사들이 그들을 호위할 것이다. 그래서 그 영혼들은 곧 그리스도와 모든 완전해진 의인의 영혼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모든 완전해진 영혼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천국은 그들의 거처가 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행복이 될 것이다.
- 리처드 백스터, 『성도의 영원한 안식』, 4장, PP 74-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