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울리히 쯔빙글리(1484-1531)

강대식 2012. 5. 18. 09:35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그늘에 서있던 그는 종교개혁의 셋째 인물, 혹은 심지어 잊혀진 종교개혁자라고 불리운다. 그는 스위스에 종교개혁의 개척자이며 힘과 독창성을 지닌 종교개혁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로서 쯔빙글리는 개혁파의 특징 가운데 많은 것을 체계화시켰다. 그는 강해설교를 귀중하게 여겼으며, 교육목회를 설정하였고,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급진적인 예전의 개혁에도 관여하였다. 그는 또한 평신도의 훈련의 역할을 발전시켰으며, 개혁파 예정론가 성례론의 기초를 놓았다.

 

1484          출생

1506           목사안수

1506-1516   글라루수 체류

1516-1518   아이지델른 체류

1518-1523   쥬리히 체류

1523           67개조항 작성

1526           베이든 논쟁

1528           베른 논쟁

1529           1차 카펠전투, 루터와의 마르부르그 논쟁

1530          <신앙설명> 집필

1531           2차 카펠전투와 죽음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그는 헬라어 신약성경과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복음주의 입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과 확실성>에 대한 설교에서 영적 조명을 위해 기도하면서 읽을 때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이 있으며, 그 말씀이 본질적으로 명료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쯔빙글리는 교회와 국가를 너무 밀접히 연계시켰다. 신학적으로 쯔빙글리는 루터와 같이 연옥, 선행을 통한 구원, 교권주의, 성례주의, 최고 전통을 반대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완전한 십자가의 구속사역, 참회론, 선택론, 그리고 말씀과 성령에 의한 소명을 강조하였다. 쯔빙글리의 두드러진 강조점들은 성경의 명료성과 능력, 성경의 참된 주석자로서의 성령, 언약, 하나님의 섭리론과 예정론, 그리고 성만찬을 포함한다. 성만찬은 보이는 말씀이다. 성령께서는 성찬을 통해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이들을 양육한다.

 

이 성급했던, 고난의 개척자에겐 실수들의 명백히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 특별히 쥬리히의 볼링거와 제네바의 칼빈이, 쯔빙글리가 쌓아올린 확고한 기초 위에 그 실수들을 효과적으로 교정하였다.

 

- 존 우드브리지 엮음, <인물로 본 기독교회사> 하권, pp 2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