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차녹

거듭남의 본질에 대한 정의 / 스테판 차녹

강대식 2012. 5. 29. 05:06

1. 거듭남의 정의는 어렵다.

1) 본질에 대한 논쟁들 때문에 설명하기가 어렵다.

2) 효과만이 가시적이기에 어렵다.

3) 자연적인 무지가 눈을 가리기에 어렵다.

4) 경험하지 못했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듭남에서 하나님의 영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에 대한 것은, 자연인들은 이해할 수 없고, 오직 그 능력을 친히 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죄의 역사가 민감한 것이라면, 성령의 역사하심은 더욱 비밀스럽고 내적이다. 그래서 죄를 맛보고 싶어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하여는 더욱 알 수 없게 된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들이 전혀 맛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을 따라서 거듭남을 기술하려고 한다. 거듭남은 성령의 효과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위대하고도 엄청난 변화이다. 그 변화를 통해서, 생명력이 넘치는 원리, 새로운 습관, 하나님의 법, 그리고 신적인 성품이 마음속에 심어지고 뼈대를 형성해서,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워하면서 거룩하게 행할 수 있게 하며, 영원한 영광을 향하여 자라 가게 만든다.

 

이러한 의미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용어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전에는 없던 것이 존재하게 된, 변화와 창조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면, 분명히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이며, 살아 있는 자로서 생명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 자이다 살아 있는 피조물이라면, 살아 있기 때문에 행동하게 되는 어떠한 힘과, 이러한 행동을 쉽게 하게 만드는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그렇게 행동하는 힘과 그 행동을 용이하게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피조물의 본성 속에는 그러한 행동의 원리로서 어떠한 법이 있기 마련이다.

 

하늘의 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욥38:33). 그래서 그들이 언약을 맺은 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렘33:25).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세우신 이러한 언약의 조항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 속에는, 존재의 위계를 따라서 서로 닮은 것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닮은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의와 진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엡4:24), 혹은 ‘하나님의 성품’(벧후1:4)이라고 한다.

 

성경은 거듭남의 역사가 ‘새로운 피조물’, 혹은 ‘새로운 창조’라는 용어, 곧 ‘카이네 크리시스’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입시키신, 영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원리이며 주요 행동 패턴으로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양식이다. 이것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을 위하여 행할 수 있게 된다.

 

- 스테판 차녹, 『거듭남의 본질』, pp 3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