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벤은 성경과 그의 주인만을 의지한 채 그곳에 갔다 / 존 라일
헨리 벤은 1759년부터 1771년까지 허더스필드의 부목사로 있었다. 이 12년의 기간이 그가 가장 위대하게 공적으로 쓰임받은 기간이었다. 공장 지대에서 복음의 공격적인 능력을 입증한 최초의 영국 목회자는 바로 헨리 벤이었다. 백 년 전 대형 도시의 복음주의적인 사역자는 거의 전적으로 하나의 무기에만 의존해야 했다. 곧 ‘사람들 앞에서 혹은 집집마다 방문을 하며’ 끊임없이 설교하는 선하고 오래된 사도적인 단순한 방법만이 그가 사용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한 가지 무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군인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영원한 설교자였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수많은 무기들을 가지고 일하지만, 사역에 있어서 사도적인 단순한 방법을 지나치게 많이 놓치고 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의견이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무기와 한 가지 책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모든 것보다 우선으로 삼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처음부터 많은 쇠를 가지고서 그것을 모두 뜨겁게 달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교구의 여러 방법들을 우상으로 만들고 그로 인해서 강단을 가볍게 여기는 일은 우리가 흔히 하게 되는 오류인 것이다.
이런 것들은 허더스필드에서의 벤의 사역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그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처럼 물매와 돌,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만을 손에 쥔 채 거대한 요크셔 교구로 들어갔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자. 그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며 헌금으로 도와줄 런던 위원회도 없이 그곳에 갔다. 그는 오랜 세월 검증된 계획이나 전략, 입증된 전도 공격 방식도 없이 그곳에 갔다. 그는 단지 성경과 그의 주인만을 의지한 채 그곳에 간 것이다.
그의 아들인 존 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가 허더스필드에서 설교를 하자마자 교회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해서 교회 밖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멸의 영혼에 대한 염려로 마음 속 깊이 변화를 겪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자주 예배자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의 임재 가운에 있음을 기억하라고 권고하면서 엄숙하면서도 인상적인 말로 예배를 시작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전에서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때 그분이 그들을 향해서 얼마나 특별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는지 이야기했다. 먼 촌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양들을 향한 한량없는 긍휼의 마음으로 그는 비록 그것이 자신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가져올 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섬기는 일에서 결코 만족할 줄을 몰랐다.
그의 영혼은 온통 설교하는 일에 집중해 있었다. 그리고 설교 시간 동안 그는 강단에서 단지 간단한 메모만을 사용했는데, 나머지는 그의 마음에서 사람들을 행해 흘러 나가는 공감과 관대함, 사랑으로 가득 메웠다. 일주일 내내 그는 시간을 따로 정해서 큰 교구 안에 속해 있는 여러 촌락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 가정에 그곳 주민들을 모으고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만큼 사랑과 열정을 담아서 말씀을 전했다.”
- 존 라일, 『18세기 영국의 영적 거성들』, pp 396-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