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5권12장 "양자로 받아들임과 중생"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8장의 메시지는 구원의 확신이다. 이 주제는 5:1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알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12-21에서 이 권리를 가지게 된 기초는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의 교리를 소개한다. “아담 안에 있었듯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있다. 그것이 확신과 확실성에 관한 궁극적 원천이요 근거이다. 그런 다음에 난제들을 다루기 위해 6장 7장에서 논제를 벗어나야만 했다.
다음 8장에서 그 위대한 주제로 되돌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우리가 전적으로 율법에서 구원받아 성령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되었다는 차원에서 확실성과 확신의 주제를 더 풀어가고 있다. 5-11에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그의 역사하심과 우리의 궁극적인 몸 자체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의 궁극적인 영화라는 차원에서 그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12-13절에 실제적인 권면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을 비추어 볼 때 너희는 육신에 대하여 빚진 자들이 아니다. 육신을 좇아서 살아야 할 자들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너희의 신분과 전적으로 상충되는 것이다. 우리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이제 이 14절에서 17절까지 새로운 주제로 우리가 가진 신적자권의 입장에서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의 절대적 확실성과 확신을 말한다. 우리는 사도가 이 문단에서 양자교리를 다루고 있는 방식이 성화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에 관한 것임을 명백히 증거한다. 8장의 근본주제가 성화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화를 그 자체의 목적으로 삼을 때 참으로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자기들이 가진 문제들로부터 출발하여 “내가 그리스도인인데 나는 실패만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을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화가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도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아바 아버지”라 불러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바램은 우리들이 이 점에 대해서 확신한 나머지 외부로부터 어떠한 것이 우리에게 올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인내한다면 우리는 또한 그와 함께 영화롭게 될 것이다. 성화는 영화로 인도되는 과정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사도의 관심은 언제나 영화에 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보증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사실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모든 사람이 전부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적 구원론을 주장하는 그들은 인간 전체가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구원에 관한 전체 교리에 깊고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순전히 철학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격이 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든지 진노와 마귀의 자녀들이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말씀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이들은 14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불과한 사람들보다 더 특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 어떠한 구별이나 차이를 강조하고 있지 않는다. 그 차이는 관계 속에서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의 지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차이이다.(갈4:1-7)
셋째, 아들됨의 의미 이다. 우리는 아담의 혈통에 속해있어 본질상 하나님의 자녀나 아들이 아니라는 전제를 해 놓아야 한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이다. 한 사람이 법적 조치로 인하여 양자로 인정되면 그에게는 한 아들의 특권과 지위가 주어지며 아들로서 행동하게 된다.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법적 조치이다. 그것은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법정적으로 의롭다 인정하시고 자기 가정의 양자로 맞아들인 것이다. 양자됨의 의미하는 바는 우리를 법적인 방식을 통해서 양자로 받아들이는 분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그 행동은 번복될 수 없는 조치라는 것이다.(엡1:3-6) 이 교훈을 포착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영화를 확신할 것이고 그는 핍박과 시련과 이 세상에서 그를 향해서 오는 다른 모든 것을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양자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아니다. 그는 새로 태어났다. 그는 영으로 났다. 그의 성품에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즉시 붙잡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양자로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의 지체들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자에서만 멈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중생한 결과로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며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이다.
“기독교는 사람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헨리 스코우칼-
사도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강조해야만 했던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은 사람만이 아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진리요 진정한 구원의 확신에 대한 근거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여러분은 세상을 바라보되 하나님의 가정에 속한 하나님의 한 자녀라는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은 당황과 공포와 놀람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의미에서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 믿음이다.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