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5권13장 "우리의 아들됨에 대한 확신"

강대식 2012. 7. 20. 14:3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양자의 의미는

 

첫째, 유사성과 닮음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부자에게는 유사성이 있고 서로 닮았다. 사고방식과 마음에 있어서 유사성과 닮음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모든 일을 하나님 입장에서 살펴본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5-16)

 

또한 행동에 있어서의 유사성과 닮음을 내포하고 있다.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시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대우하시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마5:44-48) 이것이야말로 거룩한 삶을 위한 장엄한 동기이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다.(엡5:1-2) 그 유사성과 닮음은 우리의 존재 전체와 우리의 행동 전체에 확산되어 있어야 한다. 사고방식, 이해, 행실과 행동들 그 모든 것에서 그 유사성과 닮음이 나타나야 된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나, 중대한 구분은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태도와 그의 아들 그의 자녀들에 대한 특별한 태도 사이에 차이이다. ‘아들들’ 이란 말은 인간처럼 육신의 아버지처럼 그는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가진 애정어린 관심과 특별한 배려가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는 아버지로서 우리를 위해서 아들들을 영광 그 궁극적인 영광에 이르게 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지도하심으로써 그 목표에 이르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개별적인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가 방종으로 우리 자신을 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때때로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고 벌하시고 고난도 받게 하신다. 우리는 징계를 당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그것은 매우 힘든 수업이나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돌보시고 보호도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 함축하고 있는 개념의 부요한 어떤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받으실 준비가 되어있고 우리말을 듣고 축복을 해주실 차비를 차리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가 받기를 희망하는 것보다 더 주실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때 이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만일 우리가 의심하고 확신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기도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완전한 신뢰심을 가지고 어린아이들처럼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영원한 심판자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곧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갑시다” 우리는 ‘보좌’와 동시에 ‘은혜’를 강조해야 한다. 우리가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겁쟁이의 공포는 버려야 한다.

 

어떻게 우리의 이 아들됨을 확신할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순례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다. 세상은 황량한 광야이다. 그러나 하나님계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가 바라는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고 계신다. 바울은 우리를 안락의자에 앉힌 채 옮겨진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발과 무릎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넘겨 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치는 교훈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은 인도와 지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걸어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수동태이면서 현재 진행형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거역하여서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의지를 설득시켜 우리의 확신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일들을 사모하게 한다. 기독교에 있어서 강제란 없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5:3)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시32:8-8)

 

그러나 아무리 자연인이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는 자연인에겐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의 욕망 이외의 어떤 것에도 인도를 받지 않는다. 자연인은 자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세상의 사고방식(이성)에 의해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디어(MEDIA) 곧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기타 미디어를 통제하는 권세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는다. 즉 자기 자신의 이해와 의지력과 결정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다른 위치와 범주에 속해있다. 그리스도인은 그와 그의 삶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와 지시를 받아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하다고 하는 의미는 추호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주요 경향성이 성령에 의해서 지도되는 것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여러분 스스로 “나의 모든 결정과 실수와 그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사실이지만 내 삶에 있어서의 주도적이고 충추적인 힘은 하나님의 성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대의 바램인가? 바울은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