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는 사람은 남의 상처도 낫게 할 수 없다 / 리처드 백스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우선적으로 숙고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게을러서 자신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도 낫게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일으켜 주기는커녕 자신이 먼저 넘어지고 만다. 참으로 자신의 마음과 삶으로 사역을 감당하지 않으면, 자기가 행하는 모든 사역들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영적인 사역에는 전문가이지만, 그 사역을 감당하는 방식에서 자기방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혜롭게 행동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이 행하는 유익한 것들을 뭉개 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묵상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거룩한 것들을 너무 성급하게 가르친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선포했던 것들을 그들의 행동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그런 목자들은 양 떼들이 따라가기에 너무 험한 길로 인도하며 걸어가고 있다.”(대 그레고리우스, 「목회지침서」, “연구로 알게 된 것을 삶에 실천하지 않는 자는 절대로 다스리는 직을 맡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양 떼들을 생명 물가로 인도한다 해도, 우리의 더러운 삶으로 인해 그 물을 흙탕물로 만들어 버린다면, 우리의 사역은 망치게 되고, 양 떼들도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최대한으로 헌신해야 한다. 처와 자녀들이 다소 변변치 않게 살아가는 것, 다시 말해 더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워서,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도록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이다. 사람을 도구로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통상적인 사역 방식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모두 그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육체를 조금만 불편하게 한다면, 여러 성도들이 비참한 상태에 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 해야 최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하고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설교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성도들에게만 해당되고,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
사실 가난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것도 아니다. 여러분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딤전6:8).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 것”(눅16:19)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눅12:5)
여러분이 따뜻한 옷을 입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 일에 여러분의 몸은 최고의 만족한 상태로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운 옷이라도 따뜻할 수 있으며, 빵과 물만으로도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영혼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서도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으며 사치스럽고 까다롭게 살 사람들이다.
- 리처드 백스터, 『참된 목자』, pp 11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