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이자 지옥의 문이다 / 루이스 베일리
인간은 누구나 노년기에 이르면 오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한다. 그처럼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보면 자연히 ‘어서 죽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이자 지옥의 문이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노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참으로 소름끼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가 오랜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아왔다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죽음은 인체의 주요 기관, 즉 오장육부와 사지를 강타하며 찾아오고,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운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든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온갖 고통을 당하며 힘겹게 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디며 죽어가는지 모른다. 몸이 여기저기 콕콕 쑤시고, 경련이 나고, 열이 오르고, 폐색증에 시달리고, 눈물과 콧물이 쏟아지고, 가래가 끓고, 복통이 나고, 결석이 생기고, 가스가 차는 등 그 고통이 말이 아니다.
죽음이 찾아온 순간 침상에 누운 노인의 눈은 퀭하고, 식은땀이 전신에 흘러내리고, 사지가 달달 떨리고, 머리가 쑤시고, 얼굴이 창백하고, 코는 검게 되고, 아래턱이 축 처지고, 안근이 늘어지고, 말을 더듬고, 숨을 헐떡이고, 한 번씩 숨을 내쉴 때마다 심근이 부서져 나간다. 그러는 동안 비참한 그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태양이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하늘에는 폭풍이 휘몰아치고, 불꽃을 길게 늘어뜨리며 떨어지는 별똥별들로 가득하고 바다는 성내며 소리친다. 그때 인간의 마음은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알고는 두려워 낙심한다.
이는 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죽음은 하나의 작은 세상이 끝나는 순간이다. 태양과 달이 빛을 잃듯 눈이 그 빛을 잃고, 달이 핏빛으로 변하듯 주홍같이 붉은 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작은 별들이 떨어지듯 인체의 모든 감각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천체가 흔들리듯 절망의 폭풍과 지옥의 불길 속으로 곧 휘말려 타들어 가리라는 두려움으로 마음과 이성이 온통 흔들린다. 땅 위의 것들이 흔들리듯 몸이 떨리고, 바다가 성내며 소리치듯 고통스러운 인생이 저주스럽게 끝나간다는 생각에 목구멍에 거품이 인다.
인간의 죽은 뒤에 하나님의 법정에 선다. 하지만 죽기 이전에 이성이 재판관이 되어 스스로를 저울질해 본다. 그의 상상 속에는 마치 스가랴의 환상처럼 거대한 두루마리가 펼쳐진다. 그 두루마리 안에는 자신이 저지른 악한 행위와 선한 행위, 죄로 인한 저주와 심판이 기록되어 있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로 인해 인간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를 지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두려움을 느낀다.
지옥에서 온 마귀는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즉시 데려가기 위해 곁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육체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영혼은 마치 집이 머리 위로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고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한다. 지옥 사자들은 영혼이 어서 나오기를 기다린다.
살아생전 수많은 날을 헛된 일에 낭비하며 살다가 이제는 마침내 온 세상을 포기하고 죽을 때가 닥친 것이다.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며 하나님과 화해하려고 애쓰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동안 죄의 습관에 너무나 깊이 물들었기 때문에 회개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는 마치 예전에는 즐거움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영원히 끝이 없는 고통만 남는다. 과거에 지은 죄를 후회한들 소용없고, 죽어가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한들 소용없다. 다가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온몸이 전율할 따름이다.
친구도 없고, 아무런 도움이나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본 영혼은 결국 자신이 곧 영원한 고통에 처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의 마음 속에는 비탄과 슬픔만이 들끓는다.
나는 이제 비참히 죽는구나.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는구나, 이제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의 덫이 나를 낚아채버리겠구나. 마치 눈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듯이 사망이 오는 것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 채 아무런 감각도 없다. 죽게 되었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이런 비참한 날이 오리라고 그 얼마나 경고했던가? 아, 그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무시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그동안 세상의 재물을 모으려고 애를 써왔을 뿐 내 양심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순간의 쾌락 때문에 영원한 고통을 받을 생각을 하니 지옥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지옥의 고통이 나를 엄습한다.
아! 여러 가지 악한 일들에 써버린 시간들을 성경 읽기와 설교 듣기, 성찬 참여와 기도, 회개와 금식에 사용하여 내 영혼을 위해 준비했더라면 지금쯤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확신하며 기쁘게 떠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너무 늦고 말았다. 부패한 시체와 썩은 고깃덩어리 같은 비참한 나여, 그동안 마귀에게 속고 말았구나. 이제는 마귀와 함께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 이제 나는 도랑에서 짐승만도 못한 신세가 되고 말았어, 하늘의 의로우신 재판관이 나를 심판하실 텐데 그 앞에서 대답할 말도 없고, 그동안 나를 은밀하게 꼬여 죄를 짓게 한 사악한 마귀가 나를 정죄할 텐데 스스로를 변호할 말도 하나 없구나. 이미 내 양심도 나를 정죄하니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 나는 내 육체와 작별을 고하게 되었구나. 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운명의 시간인가! 하지만 장차 이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무서운 최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때 이 육체도 다시 살아나 영원한 심판을 받으리라. 인간의 영혼은 죽은 자의 몸에서 빠져나와 지옥 사자의 손에 붙잡혀 끝이 보이지 않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 그리고 그것에서 최후의 심판이 이를 때까지 죄인처럼 갇혀 있게 된다. 끔찍한 시체로 변한 육체는 무덤에 장사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죽은 자들이 죽은 자를 장사한다. 즉 죄로 인해 죽어 있는 자들이 육신의 죽음을 당한 이를 땅에 묻는다.
- 루이스 베일리, 『경건』, pp 7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