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사랑의 부정적 의미와 중립적 의미/ 조나단 에드워즈
"타락의 결과 인간의 영혼은 고상하고 외부를 향하는 원리를 상실하고 완전히 자아사랑의 권세 아래 떨어졌다 ...... 타락으로 인해 즉시 인간의 생각은 원래의 위대함과 광대함에서 벗어나 아주 작고 좁게 되었다 ...... 그 전에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의 고귀한 원리에 의해 통제받고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자기 동료 피조물에까지 포함하는 사랑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창조주에까지 확장되어 저 무한한 바다에까지 확산되어 있었다.
.......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자마자 고상한 원리들은 즉시 상실되어 버렸고, 인간 영혼의 이러한 탁월한 광대함은 사라져 버리게 되어, 한 점으로 줄어들고, 다른 사람은 배제한 채 자기 자신만의 내부에 갇히고 말았다. 하나님도 버리고, 다른 피조물도 버리고, 인간은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완전히 좁고 이기적인 원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자아사랑이 자기 영혼의 절대군주가 되었고, 보다 고귀하고 영적인 원리들은 사라져 버렸다."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또는 동일한 의미로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한 사랑을 파괴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의 자기 행복에 대한 사랑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의지의 기능이 필요한 만큼이나 인간의 본성에 필요한 것이다. 인간존재 자체를 파괴하지 않고는 인간의 자기에 대한 사랑도 파괴할 수 없다. 성도들은 자신의 행복을 사랑한다. 성도들은 완전히 거룩한 사람들이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과 천사들은 자신의 행복을 사랑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행복은 그들에게 전혀 행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을 기쁨으로 즐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우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 사랑의 원리와 기준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 이 명령은 분명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주의: 이것은 최근의 자기존중이라는 현대적인 생각과는 무관하다. 에드워즈는 이런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아사랑의 원리로부터 나오는 많은 것들로 풍부하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약속과 위협, 부름과 초청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하라고 조언하고 있으며, 우리의 불행을 피하라고 경고해 준다."
- 존 파이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pp 155-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