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5권 31장 약속을 따른 후사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에게 ‘인쳐’ 주는 분으로 강조한 다음에 바울은 계속해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성령께서 역시 기업 자체에 보증자가 되심을 말하고 있다. 즉 ‘인침’ 과 ‘보증’ 의 이중적인 능력을 가진 성령을 말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의 목적은 우리에게 우리의 궁극적이고 완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에 관한 확신을 주려는 데 있다.
유대인의 법과 달리 로마법에 의하면 모든 자녀들은 그의 상속자들이요 그 상속자들은 동등하게 같은 권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들이 모두 자녀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개개인이 후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자녀이면 곧 후사요” -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지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사실이다. 우리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요, “그 조물 중에 첫 열매”가 되었다.(약1:18) 우리는 단순히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 그보다 더한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벧후 1:4) 이다. 우리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후사’ 라는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위대한 기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큰 주제가 경홀히 여김을 받고 있는 것에 놀라며, 이 주제보다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 더 중요한 주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수반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에 대한 인생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이 점은 우리의 복음전도에 있어서도 지배적인 역할을 해야 함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거짓된 복음전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걱정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이것을 믿기만 하면 모든 아픔과 고통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매우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고 성경이 약속하는 것은 주로 미래에 되어지는 일이다.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죽으면 그들은 지옥에 갈 것이고 그들의 영원한 미래가 비참과 수치의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복음서의 중요한 핵심은 언제나 ‘임박한 진노’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내가 후사요, 그 기업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위함인 것이다. 참된 복음전도는 이 세상에 있는 우리의 삶에서의 모든 고통을 무마시키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서 너희는 환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겼음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약속’이요, ‘기업’이다. 그것은 장래일이다. 사도는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도 역시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포기하고 끝까지 견디기를 계속하라.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여러분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기업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로, 성경 전체는 이 영광스러운 미래를 지적하고 이 ‘약속’을 가리키고 있다. 그 약속은 창세기 3;15에 나타나고,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 후손으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고, 그 후손을 통해서 또한 그 안에서 이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구원이라는 위대한 축복을 보내실 것을 의도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약속이다. 이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을 따라 후사”가 되었다. (갈3:28-29)
구약의 메시지는 어느 의미에서 완벽하게 히브리서 11장에서 요약되어 있다. 믿음의 영웅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 안에서 죽었다. 그들은 약속의 성취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순례자들”로 스스로 만족했다. 그들을 지탱해 주었던 것은 기업에 대한 약속이었고 그것으로 힘을 얻고 살며 그것을 고대하였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5:34에서 주님께서 친히 말씀 하셨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것이 바로 약속이며 곧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이다. 바울은 이 세상의 삶에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고 장차 올 생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행26:17-18, 엡1:15-18, 골1:12, 3:24). 베드로 역시 베드로 전서에서 말하고 있다(1:3-5, 13, 3:2-3).
제가 성경적인 교훈에서 이러한 진술들을 뽑아내는 것은 이 ‘유업의 소망’ 이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약속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사람의 눈이 그 기업에 있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인 표증이요, 그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는 것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이다. 또한 그가 자녀이기 때문에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표증이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과 우리 구주께서 오시는 것’을 고대해야 한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런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2-13)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늘 이처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다만 ‘우리의 기업의 보증’을 받았을 뿐이다. 위대한 기업 자체는 앞으로 장차 도래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여기서 첫 열매를 맛보는 자들이다.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