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5권33 장, 영광을 위한 준비

강대식 2012. 11. 27. 11:01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

 

사도는 14절 전반절부터 우리가 가진 자격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러나 어째서 갑자기 고난의 문제를 거론하는가?

 

첫째, 고난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매우 긴박한 난제였다. 어느 의미에서 모든 신약서신들은 이 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 문제는 사도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이다. 문제는 어떻게 시련들과 환난과 고난을 이러한 지극히 위대하고 보배로운 약속들과 조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사도가 방금 묘사하였던 이 영광의 환상과 어떻게 조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행한 것은 그들이 결코 그 난제와 해결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어째서 이 모든 일이 내게 일어나는가?”라고 말한다. 계시록을 보라 그 책은 모든 세대에 있어서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그것은 그런 유에서 언제나 최선의 책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나라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논증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동시에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으며, 부연하여 구원의 확신과 확실성에 관한 최종적인 논증을 첨가하고 있다.

 

여기에 중요한 두가지 교리가 있다.

첫 번째 교리는 고난은 의심이나 문제를 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약속들이 진리임을 증거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그 약속들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증해 준다는 것이다. 고난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는 머리요, 우리는 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속한 일들에 대하여 동참자들이다. 주님이 땅에 계실 때 일을 살펴보라. 그는 ‘슬픔과 질고를 아는 사람’ 이었다. 그는 경멸을 당했고 ‘사람들의 버린’ 바 되었다. 아무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당했던 만큼 고통을 당한 사람이 없다. 고난은 그의 몫이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빛은 언제나 어두움에 감추어진 일들을 밝혀주는 것이며, 어두움은 그러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두움은 그를 미워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그처럼 많은 일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요한복음 16:33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였노라” 그런 일이 그처럼 일어나야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분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분이 받은 대접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몰라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또한 염려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에 대한 말밖에는 한 것이 없고 그저 앉은뱅이를 치료했을 뿐인데 붙잡혀 법정에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된다. 사도행전 9장에서 주님은 다소 사람 사울에게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을 주님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머리와 몸은 하나이다. 여기에 위대한 교리의 진수가 있다. 사도행전 14:22에서 바울은 주님의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즉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환난을 예기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종적인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환난’이 있는 길을 쫒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서신서들을 보면 거의 어디서나 같은 교훈을 발견한다. 고린도후서 1:-7, 4:17-18, 11:23.빌립보서 1:12-13, 28-29, 2:17, 3:10. 골로세서 1:24. 이것이 위대한 사도 바울이 살았던 삶의 내용이었다. 그 상전의 그 종이다. 야고보서 1:2-3,12. 베드로전서 1:6-7. 요한계시록 1:9.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고 가르치는 교훈이다. 우리는 축복에 참여하였다. 역시 그의 고난에도 동참하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고 또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두 번째 교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서 당하는 고난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에 대한 준비의 일부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2장과 5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지도자요, 구속자로서의 모든 고난을 ‘다 이루셨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과정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게 될 때 우리는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는데 신경을 쓴다. 우리의 기업의 영광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고난을 받지 않았으면 몰랐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배우는 것이다. 여러분이 고통과 절망과 환난을 받을 때 여러분은 이 놀라운 약속의 영광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사랑의 가장 큰 영광에 관한 어떤 것을 맛보는 것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점이나 티도 주름잡힌 것이나 그러한 것이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거룩한 존전 앞에서 거룩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복음을 마땅히 들어야 할 바대로 듣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병상에 눕히거나 낙담케하고 좌절하게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다면 기뻐하라.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가 된다. 이 예비 과정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곤경이 여러분의 성격을 두드려 부수고 있는가? 여러분은 이 정결케하는 과정에서 해를 입고 있는가?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 5권 끝-----

 

- 한가족교회, 김영희사모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