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설교는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을 확대하고 확고하게 한다 / 조나단 에드워즈
가장 거룩하고 신령하게 생각하는 최선의 사람들도 말씀 설교를 통해서 자극을 받아야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확대하고 확고하게 합니다. 그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전파하는 목적입니다. 말씀을 받은 이들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의 주도적인 용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 전파는 두 가지 방식의 효력을 냅니다.
첫째, 우리에게 증거되는 말씀은 우리 영혼의 ‘영적 양식’입니다. 말씀을 토대로 영혼의 영적 원리가 유지되며, 그로 인해 모든 은혜가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많을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더 풍성하게 해낼 것입니다.
둘째, 그 말씀은 은혜를 실행으로 옮길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믿음과 사랑과 두려움과 신뢰심과 경외하는 마음의 진정한 대상을 우리 영혼에 제시하며, 모든 은혜들이 우리에게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거되는 말씀이 자기들에게 제시되는 그 순간에만 영적인 것을 생각하는 이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는 순간 즉시로 영적인 것들을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영적인 생각을 하는 자로서 그 말씀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가지는 영적인 것들에 대한 열심은 마치 한 순간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의 심령에 가해지는 영적인 압박이, 듣는 그 순간 그들에게 정말 바람직한 것이든, 아니면 정말 피해야 할 것이든 간에 그 기회를 통해 여러 가지 상상이 발동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마치 있는 힘을 다하여 영적으로 경주하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자기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생각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주어진 그 압박의 힘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자기들에게 주어진 신령한 의무들을 이행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결국 소진되고 영적인 수준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해 그들은 모든 노력을 중지하고 다시 그러한 생각이 새롭게 일어나기까지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영적인 생명의 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내면적인 은혜의 원리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순간적이며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다릅니다. 그 내면의 원리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그에 상응하는 자극을 받아 실행된 것들이기에 증거된 말씀 때문에 간헐적으로 일어난 이지의 생각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먼저, 이 내면의 원리에서 나는 생각들은 설교되는 것들 자체를 향한 ‘믿음과 사랑의 특별한 작용’들입니다. 진리를 사랑함으로 받아 나온 생각들입니다. 증거된 진리의 내용들 자체의 선함을 사랑함으로 나온 것입니다. 설교되는 명제들의 진실성 자체만이 아니라, 그 진리 자체를 사령하는 것이 그 생각들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지가 빛과 진리의 영향을 받은 의식으로만 가진 생각들에 불과하다면, 거기에는 그 빛과 진리 자체를 정중하게 사랑하는 것은 빠져 있습니다.
내면의 원리에서 나는 생각들은 영혼의 만족’을 동반합니다. 설교되는 말씀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만족은 오직 설교되는 것들의 능력을 사랑하고 체험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만족이란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상쾌함입니다. 말씀의 증거가 우리 속에 있는 은혜의 본질에 강한 확신과 위로를 줄 때, 우리의 영혼이 은밀한 만족과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생각들은 이렇게 동반하는 것들이나 효력들이 없습니다. 그 생각들은 어떤 몇 마디의 말씀이나 잠시 강론을 들을 때에만 존재하다가 다시 말라버리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증거되는 말씀 진리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영적 성장’의 방편들입니다. 채소들이 자라는 것은 무감각한 활동에 의하지 않고, 증식(增植)하려는 감각의 폭발하고 분출하는 힘으로 말미암는다고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영적인 성장에 그 믿음과 사랑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증거되는 말씀이 새로운 성품의 원리를 자극하여 여러 생각들을 하게 하여 그 속에서 ‘영혼의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같은 성질을 가진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목적은 마음속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은혜의 원리를 자극하고 북돋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대한 거룩하고 영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에 걸맞는 정서를 갖게 합니다. 이러한 목적 없이 기도하는 이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가정이나 모임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의 모임에 부단히 참여하는 일이나, 스스로 혼자 매일 기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기도의 의무를 온전히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시적으로 받은 자극이나 인상에 의한 일에 불구하다면 그것은 단지 그 마음에 은혜의 샘 근원을 전혀 가 지지 않은 가운데 행하는 외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pp 4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