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그리스도를 택하기로 결단만 하면 되는가? / 에룰 헐스

강대식 2013. 1. 2. 08:12

알미니안주의의 오류가 지난 1백여 년 동안 서구 기독교에 퍼졌다. 이러한 오류들은 불가피하게 선교지로 묻혀 갔다. 청교도들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균형 잡힌 교리이다. 청교도의 안정된 교리는 그릇된 결론이나 오도된 행위를 막는다.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반드시 병립되어야 한다. 그릇된 결론은복음의 진리를 쉽사리 흔들어 버린다.

 

자유 의지는 종교개혁의 한 중심 이슈였다. 마르틴 루터는 에라스무스에게 주는 답변으로 『의지의 속박』(The Bondage of the Will)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루터는 자유 의지는 구원의 근원에 대한 논쟁의 돌쩌귀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패커(J. I. Packer)는 의지의 속박에 대해 종교개혁의 투쟁이 무엇에 대한 것이었는지를 드러내는 고전적 설명이라고 하였다. 워필드(B. B. Warfield)는 이 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 개혁 선언서라고 하였다.

 

알미니안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닌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분명히 말한다(엡2:8-9).

 

우리의 첫 부모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 가능성도 함께 있었다.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 이것이 현재 인간 의지의 상태이다. 이러한 인간의 의지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죄악된 성향에 의해 지배된다. 중생과 회심으로 인간은 의지의 자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신앙고백서들은 신자 속에서 계속되는 투쟁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로마서 7장을 인용한다. 자유 의지를 다룬 장의 다섯 번째 문단은 이렇게 선언한다. “인간은 영광의 상태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오직 선한 것만 행하는 의지의 자유를 완전하고 불변하게 가질 수 없다”.

 

패커와 존스턴은 1957년에 루터의 『의지의 속박』을 새로 번역하면서 서문을 썼다. “루터가 의지의 속박에서 변호한 원칙들을 수용하면 현대의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정신적, 영적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설교와 전도에 급격한 변화를 줄 것이며 대부분의 신학 분야와 목회 사역에도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는 오늘날 인기가 없다. 이것을 회복하려면 많은 문제들을 대하는 관점에 코페르니쿠스적인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릇된 교리가 그릇된 행위를 낳는다. 구원 문제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옳고 그름에 따라 복음 설교의 방법과 교회에서의 행위들의 옳고 그름이 결정 된다.

 

인간 전체에 덮인 죄의 실체와 그 급진적 영향을 간과하면,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택하기로 결정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결단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은 ‘천박한 신앙’으로 회개가 제쳐져 있다. 결단을 한 자에게는 구원받았다는 선언을 해 준다. 이런 식의 접근은 그릇된 결신자를 산출시킨다. 육적 교인의 이론은 결단을 하고서도 거듭난 표시가 없는 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켄트 필풋이 쓴 『당신은 정말 거듭났는가?』라는 책은 죄에 관한 온전치 못한 인간론에서 비롯된 오도된 방법 때문에 해를 입은 많은 실례들을 예시하면서 설명한다. 이 책은 매우 힘있게 이 문제를 다룬 현 시대의 강론이다. 결신자를 강단 앞으로 부르는 것은 결단을 유도하기 위해서 심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 결과는 어떤 교회들의 경우에서 보면 뒷문이 앞문만큼 넓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결단을 하지만 변화되거나 거듭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망하고 뒷문으로 빠져 나간다는 뜻이다.

 

- 에룰 헐스,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pp 181-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