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0:24-33
오늘 본문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온다.
세 가지를 두려워하지 말라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마10:24-26)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들이 집 주인을 바알세블, 귀신의 왕이라고 하는데 그 제자와 종들이야 뭐라 하겠느냐?
그런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힘쓸 일은 제자가 그 선생 같아지고 종이 그 상전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주(하나님)로 섬기고 믿고 연합한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고 심판주이시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입술로는 어쩌고 저쩌고 해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더 사랑하고 더 중하게 여기는 것을 잃을까봐 하나님보다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눅16:13-15)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두 주인을 섬길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 그러고도 옳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실상은 그럴 수가 없는데도, 그럴 수 있다고 하니, 외식하는 자들이다.
사람 중에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
바리새인이 진짜 좋아하는 것은 돈이다.
사람은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는 미워하는 법이다.
하나를 중히 여기면 다른 하나는 경히 여길 수 밖에 없다.
한 마음 자리에 둘이 같이 차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를 먼저 놓으면 다른 하나는 옆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지요.
바리새인은 돈(사람)을 더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을 더 좋아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여러분, 마음 자리에 누가 계시는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그 사람 중에 누가 있는가?
누구를 가장 신경 쓰고, 누구에 의해서 여러분의 정서가 좌우되고 있는가를 보면 안다.
그 사람이, 그 일이, 지금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우상이다.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이다.
사람은 가까이 있으면서 왕노릇하는 이 우상의 횡포를 두려워한다.
이 우상의 사랑과 보호와 유익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그것을 잃으면 자기는 죽을 것 같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우상은 두려워할수록 더 기고만장하고 횡포를 부리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과감히 우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서 제 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
야곱처럼 우상들을 땅에 묻고 벧엘로 올라가 엘벧엘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살고자 하면 죽게 되고 죽고자 하면 사는 길이 열린다.
이것을 못해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전혀 그리스도인의 삶을 못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연명하던 사람들은 얼마 안 있어 실상이 드러난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하나님을 섬겼는지, 그 대신 우상을 섬겼는지, 실상이 드러날 날이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는지, 사람을 더 두려워했는지, 드러나고
그가 우상일 뿐이었지, 하나님이 아닌 것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 두려움이 임하는 날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우상은 허접 쓰레기일 뿐이다.
몸이 죽는다고 사실은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죽어야 진짜 죽는 것이다. 하나님과 분리될 때 영혼은 죽는다.
우상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지옥에서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겪는다.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날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선 당장의 작은 고통을 피할려다가 더 큰 고통, 결국은 크고 영원한 고통을 불러오게 된다.
작은 비극을 피할려다가 더 큰 비극, 나아가 크고 영원한 비극을 자초하고 만다.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고, 이를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결정해 가야 한다.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좋은 치료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물리치는 최고의 해독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쾌하신 얼굴을 대하기보다는 온 세상의 찡그린 얼굴을 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람에게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면서, 동시에 가장 안전하다.
2.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38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주는 고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고난 없이 축복과 영광을 약속하는 종교는 미신이다.
광야의 훈련 없이 믿기만 하면 가나안에 이른다는 약속은 거짓말이고 환상이다.
4차원의 영성, 믿음의 신학, 형통의 신학들은 다 ‘자기들의 형통’을 위한 ‘사기신학’들이다.
축복과 영광만을 약속하는 자는 교회이건 사람이건 다 사탄의 하수인들이다.
예수님에게 사탄은 내게 절만 하면 세상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사탄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목숨 걸고 그에게 절을 하고 있다.
거기에 절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가진 것 같다가도 이내 파멸과 멸망으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만사가 형통하던 그 형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요? 그 방통대군은 어찌하고 있나요?
그것은 일시적인 고통일 뿐이다. 사탄에게 절하던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고난은 우리 속에 있는 우상과 죄들을 처결하고 정화하고 씻어내는 성결의 수단이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고난은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우리 삶 가운데 맺어주는 것이다.
주의 법을 알게 되고 지키게 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좋은 축복은 사실 없다.
그것이 내게 천천 금은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되시기 바란다.
말씀을 잠시 기뻐하다 고난이 오면 곧 넘어지는 자는 돌밭에 뿌려진 씨앗일 뿐이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자는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일 뿐이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살아야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결실할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친히 오셔서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셨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 영광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는 얼마나 죄에 관용하고 의에 외면하는가?)
벧전2:20-21)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8-39)
(요즘은 목숨이 돈이다)
잠시 잠간의 안정과 평안을 얻으려다가 영원한 불안과 파멸을 불러오게 된다.
안전, 안전 위주의 삶을 살다가 그 안전이 푹 꺼지고 말 날이 닥쳐 온다.
우리는 우리 생을 마감할 날을 알지 못하지만 그 날은 예고 없이 찾아 온다.
그 날에 우리는 그리도 아끼던 몸의 안일과 소유를 다 버리고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마지막 심판 날, 몸까지 다시 입혀진 영혼은 영원한 지옥 불에서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할 것은 지금의 일시적인 고난이 아니라, 지옥불에서의 영원한 고난이다.
지옥을 믿던 안 믿던 그 날은 오고야 만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누누이 말씀하고 약속하고 경고하고 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이 축복과 영광의 소망을 이루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고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항상 힘쓰고, 성경을 사랑해야 한다.
기도와 말씀을 중단하면,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고 우리는 다시 세상과 우상에 절하게 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사탄을 이길 수 있고, 죄를 이길 수 있고,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이길 수 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다.
3 그리스도인은 생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마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성도들의 모든 고난 중에 그들의 생명과 생활을 책임 지신다.
가장 작고 하찮은 존재인 참새들을 예로 들어 하나님은 그 섭리를 설명해 주고 계신다.
이 작은 동물은, 한 마리만으로는 계산할 수도 없을 만큼 하찮은 것이다.
참새 두 마리는 단 한 앗사리온의 값어치에 불과하다.(다섯 마리에 두 앗사리온, 눅12:6).
그러나 우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그분의 섭리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곡식 알을 주으러 '땅'에 내려 앉지도 못한다.
죽음으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참새의 먹고 사는 생활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
어찌 성도의 먹고 사는 생활과 죽음을 주관하고 섭리하시지 않겠는가?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성도들의 모든 일, 심지어 가장 보잘 것 없고 사소한 사실도 세신다는 격언적인 표현이다.
그들의 머리털을 세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그들의 머리를 세시지 않으며
그들의 생활과 미래와 영혼을 보살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더 그들을 상세하게 돌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할 것이다'(눅 21:18).
아무리 작은 해도 그들에게 가해지지 않을 만큼 성도들은 하나님께 그토록 귀한 존재들이다.
내 우상이 나를 먹여주고 지탱해 주고 지켜 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상이 없어지면 죽을 것 같지만, 없어져도 남은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다.
멍청하고 한심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이 우상이 없어졌다고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면 좋겠지만, 그 영혼이 다음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니까 그러는 것이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영원히 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복을 받든가, 영벌을 받든가 영원히 사는 것이 영혼이다.
우리는 죽으나 사나 영원히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임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눈 앞의 고난만을 보지 마시고 더 가까이 함께 하시는 분을 보고, 멀리 보아야 한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 혼자 받는 것이 아니고 주님도 함께 받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극심한 감옥의 고난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했다.
그는 함께 고난 받으시는 가까운 주님을 보았고, 멀리 그 앞에 마련된 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난 중에 우리의 믿음은 입증되어야 한다.
끝까지 고난을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고난의 때에 그를 인정하는 자들을 머지않아 영광과 승리의 날에 인정하실 것이다.
그때 그를 부인한 자들은 그에게 영구히 부인 받을 것이고 거절될 것이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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