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십자가는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핵심이다/ 로이드 존스

강대식 2013. 3. 8. 17:53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신약의 교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이 십자가의 교 리,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다른 신약 교리들보다 더 큰 장애물이 되는 듯합니다. 사실상 십자가의 교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복음이 처음에 전파되었을 때에도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1:18). 그 후 각 시대를 거쳐 십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 속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믿기 어려워합니다. 십자가는 그들과 주님을 믿는 일 사이에 서 있는 하나의 장애물입니다.

 

신약에 의하면, 십자가 곧 그리스도의 죽음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핵심입니다. 오순절날의 베드로의 첫번째 설교는 바로 이 내용이었습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마치 플래카드처럼 매우 뚜렷하게 들어 보였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3:11). 십자가는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였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의도적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은 선지자 이사야의 표현을 빌린다면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킨 것이었습니다(사 53:6). 그러니까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체와 몸에서 인간들의 죄악들을 처리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들의 교리였습니다. 그들은 이 십자가의 교리를 가는 곳마다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들의 죄가 용서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얻고 이것을 복음 메시지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그분의 모범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그분이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죄 속에 머물러 있고, 용서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의 죄가 용서되고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이디어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위대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내세워서 인류가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구원이 아이디어나 사상이나 관념이나 기타 유사한 철학에 의해 달성된다고 믿습니다. 헬라인들은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구원을 성취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큰 권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고 하나의 거대한 왕국을 건설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메시야의 왕국은 찬란할 것이며, 그 결과 모든 사람이 메시야를 인정할 것이었습니다. 메시야는 유대인들의 원수 들을 모두 정복하고 그들을 해방시킬 자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분은 너무도 유약하였으며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가 그들을 정죄했기 때문에 더욱 십자가를 싫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반면 나머지 인간들은 이방인이며 하나님의 우리 밖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갈보리의 십자가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모두 정죄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을 향해 귀에 매우 거슬리는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간들이 자력으로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거나 자기들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모든 사상과 철학에 대한 영속적인 정죄의 입목(立木)입니다. 십자가는 자력 구원에 대한 일체의 아이디어들에 대해 아무도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고 응답합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불충분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인간들은 이것을 싫어합니다. 자신들과 자기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갈보리 십자가를 삭제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의 복음을 믿겠습니다. 십자가의 ‘피’에 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 신의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십자가의 의미는 우리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 사건은 영생에 대한 엄숙한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죄로부터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마 어마한 역설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거스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노엽게 해드렸는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책과 그 형벌을 받으신 후, 그것으로 인해 우리를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메시지입니다.

 

본인은 아직도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사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믿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나는 여러 세기 동안의 성도들을 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믿었고, 그 결과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봅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실패와 연약 속에서 십자가를 믿었고 그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논리와 논쟁을 포기하고 그분께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속절없는 상태에서 그분께 말합니다. “좋습니다. 저는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가장 완전한 희생 위에 내 손을 얹습니다. 저는 당신께 나의 삶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나는 아이작 왓츠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영광의 왕이 달려 죽으신/ 기이한 저 십자가 바라볼 때에/ 내 모든 부귀 명성 헛되이 여기고/ 내 모든 자만들을 내던져 버리네”. 나의 어리석은 자만이 성취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만에 멸시를 퍼붓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합니다. 나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고서 나는 주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내 죄가 용서된 것을 알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을 압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금석입니다.

 

- 로이드 존스, 「복음의 핵심」, pp 3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