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15)고
사도 바울은 증언하였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날 성령이 충만하여 제일 먼저 증거하는 것도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행2:23-24)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베드로 설교의 결론은 이렇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1) 부활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확증’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적 형벌적 죽음이었다.
부활은 예수님의 몸을 속죄제물로 화목제물로 하나님께서 만족하게 받으셨다는 확증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긴밀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죽으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2) 또한 부활의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고
그분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분은 그분의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아 연합되었고,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순간, 그 연합은 실현되어 영원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천년 전의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하고,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과 연합하고,
그 연합은 주님의 재림과 영원까지 이어진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4-6)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3:2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게 된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3) 부활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10-11)
부활은 우리가 새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2. 주님의 부활은 “지극히 높이심”의 총체이었다.
총체라는 것은 부활이 단지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함께 이어지는 모든 영광이 부활로 왔다는 것이다.
지극히 높이심의 모든 것이 왔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그 인성을 지극히 높이셨다.
예수님의 신성, 하나님이심은 변할 수가 없는 영원한 본질이시다.
예수님의 신성은 더 이상 높이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성을 어디까지 높이셨느냐?
예수님의 신성만큼 높이셨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하늘에 있는 모든 피조물, 현재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죽은 자들
산자와 죽은 자들과 모든 피조물이 다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히10:12-13)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인성으로도 주, 곧 하나님이 되게 하셨다.
예수님의 인성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셨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17:14)
왜 그렇게 주님을 지극히 높이셨는가?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이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신 것이다.
부활은 주님의 높이심이요, 그분과 연합한 우리의 높이심이요, 그 보장이요 약속이다.
십자가의 고난 끝에 지극히 높이심의 축복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왜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는가요?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10)
우리를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구원의 창시자인 그분(인성)도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되셨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바울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0-12)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으며 달려가는 것이다.
고난은 우리를 온전케 하며 부활의 권능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고난은 우리를 지극히 높이심의 축복과 영광으로 인도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우리의 고난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받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현재의 고난은 아무리 크다 해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신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신다고도 말씀하신다(고후4:17).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이 말씀의 뜻은 그 다음의 24절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옛사람을 내려놓는 정도가 아니다.
불교처럼 자아를 내려놓는 것도 아니다.
상담학처럼 몸에 벤 어린시절을 내려놓는 것도 아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도, 고난을 견디는 정도가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영혼의 구원이 그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제 목숨을 자기 힘으로 구원코자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서 제 목숨을 구원하기는커녕 제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그 자기를 내려놓는 데 목숨을 걸라는 것이다.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도,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걸고 주님을 따라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25절 말씀을 보면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9:25)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부활과 영광은 없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베드로 사도는 말씀한다(벧전2:21).
그것이 우리 믿음생활의 여정이고 부활의 영광을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우리 앞에는 또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이루어야 할 구원이 있다.
지극히 높임을 받기 위한 낮아짐이요, 부활하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목숨 걸고 자기를 부인하고 목숨 걸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몫으로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그 끝에 지극히 높이심의 부활의 영광과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주님의 자취를 따라 끝까지 항상 복종하여 우리의 십자가에서 죽고자 할 때,
주님은 우리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실 날이 올 것이다.
모든 무릎을 우리 앞에 꿇게 하실 것이고, 모든 입으로 우리를 높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날이 오게 하실 것이다.
부활은 고난과 영광을 연결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였다.
하나님의 능력이,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게 하셨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부활과 영광 또한 이루게 하실 것이다.
성경은 마지막 날 우리의 몸도 부활하여 주님과 같은 영화로운 몸이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의 구원은 완성이 되고 영광스런 복락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항상 주님께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남은 구원을 이루어 가자.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4 주일설교, 받은 전통대로 (0) | 2013.04.14 |
---|---|
4/7 주일설교,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0) | 2013.04.07 |
3/24 주일설교, 그리스도의 십자가 (0) | 2013.03.24 |
3/17 주일설교, 생수의 강 (0) | 2013.03.17 |
3/10 주일설교, 기도와 낙심 (0) | 2013.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