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은 설교를 공예배의 절정으로 간주했다. 즉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수반되는 말씀 선포와 그 말씀으로부터 오는 교훈을 구원과 성화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중요한 중재수단으로 여겼다. 이 선포되는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만 하는가?
예배의 형식과 목적에 있어서 영국 국교회와 청교도 사이의 충돌되는 문제는 대체로 공예배에 대한 개념에서 기인된다. 즉, 국교도들은 공예배를 근본적으로 제사장적 행위로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청교도들은 선지자적 행위로 이해함으로써 긴장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예배의 제사장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이에 수반되는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됨이라는 커다란 두 가지의 진리에 그 근거를 두었다. 따라서 목사를 통해 은혜의 중재는 목사의 제사장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목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청교들은 공예배에 있어서 선지자적인 요소는 참으로 중요하며 예배의 지배적인 요소로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선포된 말씀의 신학’은 ‘경청되는 말씀의 신학’을 낳았다. 존 웰스목사는 그의 책 <실제적인 주일성수>에서 예배의식을 대하는 회중들의 태도를 논하였으며, 특히 설교를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취급하였다. 그의 말이다.
“가정에서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가진 후에 우리는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공예배에 참여하러 간다.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셔서 ‘심령이 가난하며’, 영적인 구호품 등을 기다리는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에게 은혜의 보물을 나누어 주시는 은총과 구원을 받을 만한 이 복된 날에 예배드러러 간다. --- 공예배 의식은 우리의 영적 교환소요, 거룩한 장터요 천국박람회와 같아서, 그곳에서 우리는 물건을 사며 우리들을 위한 하늘에 속한 모든 일용품들을 구비한다. 이러한 예배시간에 우리는 또 다른 안식의 새 혁신이 있을 때까지, 우리 자신을 풍성하게 섬길 은혜와 지식과 위안을 가득 저장하게 된다.”
제레마이어 버로우즈 목사는 그의 논문인 <복음적인 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케 할 수 있는지’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먼저 준비가 있어야만 한다. 그 다음엔 선포된 말씀에 대한 행함이 수반되어야만 한다’라고 하였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케 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영혼이 무엇을 들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사로잡혀 있어야만 한다. 즉, 당신이 듣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살전2:13).
- 피터 루이스, 『청교도 목회와 설교』, pp 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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