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아카데미

1/7 청교도아카데미 2014-1학기 개강예배 설교

강대식 2014. 1. 8. 11:30

 

본문: 렘 5:30-31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다고 하신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기 때문이다.

 

내 백성은 좋게 여기는 모습과, 하나님은 무섭고 놀라는 모습이 대칭되고 있다.

사실은 구약 전체의 역사가, 신약 시대 교회의 역사가 그래 왔다.

23절,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있으며”

 

이 배반과 반역은 구약 백성(이스라엘)이나 신약 백성(교회)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을 하시는 구약의 땅이나, 신약 교회의 땅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무섭고 놀라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1.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는 것’이 무섭고 놀랍다고 하신다.

 

선지자들이 누구인가? 지금의 목사들이 아닌가?

목사들이 거짓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놀랍고 무서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혼잡하고 순전한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백성들에게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종교개혁과 청교도들의 시대에 반짝 순전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이내 혼잡한 말씀, 철학과 속임수로 돌아가고 말았다.

세상 지혜의 아름다움들이 말씀의 자리를 차지한지 오래다.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에 상담학 경영학 신비주의들이 범람하고 있다.

 

더 이상 선지서들과 회개와 심판들은 설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었으나 노략질하는 이리들인 거짓 선지자들이다.

열매를 보고도 여전히 속하고 떠날 줄을 모른다.

말씀 혼잡의 열매, 음란과 횡령의 열매를 보고도 상관이 없다고들 한다.

 

선지자들은 바리새인이 되는 위험성이 항상 있어왔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셨다.(마15:9)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셨다.(막7:8)

 

주님은 저들이 모세의 자리에서 하는 말은 듣고 행하는 것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율법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으나, 맹인들이었고, 눈먼 인도자들이었다. 회칠한 무덤들이었다.

뱀들이요, 독사의 새끼들이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

 

2. ‘제사장들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놀랍고 무섭다고 하신다.

 

피터 루이스에 의하면, 청교도들은 제사장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됨에 의해 충족되었고, 선지자적 요소가 참으로 중요하고 예배의 지배적인 요소로 여겼다고 했다. 목사는 제사장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즉 선지자적 요소로 은혜의 중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제사장은 사두개인들이 되는 위험성이 항상 있어 왔다.

사두개인들은 영적인 것들을 믿지 않고, 보이는 것, 가진 것만 믿는 지도자들이다.

존 오웬은 이들은 두 가지 악을 저질른다고 하였다.

 

하나는 재물에 대한 탐욕의 악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을 차별하는 잣대의 악을 범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만족과 끝을 모르고 오직 탐욕에만 매달리는 악을 범한다는 것이다.

또 없는 자들을 종류가 다른 사람으로 차별하는 악을 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로 추앙을 받고,

선한 그리스도인같이 여김 받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제사장이 할 일은 백성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죄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섬기는 자가 다스리는 자가 된 것이 무섭고 놀랍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자기 권력으로’ 이다. 제사장들이 여러 권력을 쥐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로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다스린다는 것이다.

돈 주머니 위에 권력이 있다고 한다.

돈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다.

 

제사장직을, 섬기는 자리가 아니라, 권력으로 군림하고 다스리는 자리로 여기는 것이다.

권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개인적 부를 형성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사두개인들을 닮아, 재벌 회장처럼 군림하고, 횡령과 남용을 일삼고, 그 권력을 세습한다.

‘기도하는 집’을 장사꾼들이 들끓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다.

 

3. ‘내 백성이 그것을 좋게 여기는 것’이 무섭고 놀랍다고 하신다.

 

백성들이 그 선지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같으니 그것을 좋게 여기는 것이겠지요.(유유상종)

신앙이 같고 삶의 방식, 즉 철학과 가치관이 같으니까 좋게 여기는 것이겠지요.

다르면 좋아할 리가 없지요?

(렘7:13-14) “이는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위 아래가 한 통속이 되어서,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속인 것들로 집들을 가득 채우고,

그들이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여질수록 더욱 배반하고 반역하였다.

하나님이 징계의 상처를 주셨지만,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평강하다 문제가 없다 한다.

 

정말 평강을 얻으려면, 옛적 길, 선한 길로 가야 한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렘6:16-17)

 

내 귀를 즐겁게 해주고, 우선 위로가 되는 나팔 소리가 더 좋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비보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화려한 일만 스승이 더 좋다.

 

4.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고 하신다.

 

“마지막에는”은, ‘무섭고 놀라운 재앙이 쏟아질 때’이다.

하나님은 무섭고 놀라워할 분이 아니시다.

무섭고 놀라운 짓을 하다가 무섭고 놀라운 일을 당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설교)하고, 제사장들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구약과 신약의 성경을 보아도, 세계(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하나님은 통치와 심판을 하셔 왔다.

이 땅에서 다하지 않으신 심판은 최후의 심판 날에 다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지옥불을 무서워하면서도 그 원인이 되는 죄와 허물에 대해서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사1:5-7)

 

무섭고 놀라운 일을 돌이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망하듯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을 맡고 있는 목사들이, 지도자들이, 청교도신학과 사역으로 돌이켜야 한다.

순전한 말씀, 순전한 성령으로 돌이켜야 한다.

 

순전한 말씀과 성령의 사역이 균형을 이루고, 지성과 영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로이드 존스는, ‘칼빈주의 메쏘디즘’을 말했다.

 

오늘날 만연해 있는 바래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버려야 한다.

미혹의 영들과 귀신의 가르침을 버려야 한다.

옛적 길, 선한 길로 돌이켜야 한다.

 

모세가 레위지파를 축복한 길로 돌이켜야 한다.(신33:8-11)

레위인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그의 부모도 보지 않고, 그의 형제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자녀를 알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한 레위인만이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린다“고 했다.

- 가족보다, 하나님의 법이 우선인 레위인만이, 온전한 가르침 예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오늘날 상담학은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 가정이 우선이고 사역은 그 다음이라고 한다.

 

그러한 레위인에게 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다. 모세의 축복기도이다.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