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4/20 부활절설교,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강대식 2014. 4. 20. 23:46

본문: 고전 15:12-22

 

기독교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시고, 성령으로 잉태한 동정녀 탄생으로,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

예수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이 예수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오늘은 온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고전15:3-8)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내셨다.

십자가 사건을 제일 먼저 말씀한 성경은 창3:15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무리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23:33) 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8:44)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고

뱀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다.

뱀의 후손들이요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 동정녀에게 난 여자의 후손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십자가에 죽으심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의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에 어린 양을 제물로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어린 양으로 피를 흘림으로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한 모형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또한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셨다.

막달라 마리아, 게바, 야고보, 열 두 제자, 오백여 형제, 마지막으로 바울에게 나타내셨다.

 

게바, 베드로는 온 공회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담대하게 증거하였다.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3:13-15)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당국자들을 두려워하며 숨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본 후 그들은 담대한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다.

가롯 유다를 대신할 제자 맛디아를 뽑을 때도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라 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첫 번째 분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 다음 열매들이 될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15:22-23).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되었듯이

한 사람의 부활이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이유가 된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두 머리다. 두 뿌리요 두 첫 열매다.

아담과 그리스도 모두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은 레위기 23:10-11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안식일 다음 날, 처음 추수한 곡물의 첫 이삭, 곧 첫 열매의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와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드는 날에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스도는 이 날 첫 열매로서 가장 먼저 살아나셨다.

전체적인 부활의 날인 심판의 날에 온전한 추수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 날은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기쁨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고통의 날이요 저주의 날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시편 여러 곳에 예언 되어 있다.

베드로가 이를 인용하여 설교하는 말씀이이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하였으므로,

그는 선지자라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2:23-32)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확실히 예언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16:2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2-34)

 

내가 살아 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말씀을 통해 믿으시기 바란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면 사도들이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우리 믿음도 헛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부활을 증언한 사도들은 거짓 증인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우리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확실히 인증해 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라고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았는데,

부활이 없다면, 영원 세상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무익하고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이 어디서 보상을 받으며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이루게 되겠는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그렇게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냈지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도 부활할 때 그와 같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을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15:42-44)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15:4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15:51-53)

이 모든 말씀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부활을 증거하는 말씀들이다.

 

예수님의 이 역사적 부활을 근거로 하여 그 부활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와 영원한 세상에서의 우리의 부활된 삶을 위한 것이다.

로마서 6장이 이를 잘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4-5)

 

우리가 구원 받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도 함께요, 그분의 부활도 함께 참여하는 바가 된다.

그의 죽으심도 그의 부활하심도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죄에 대해서 죽었으면 우리도 함께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은

우리 또한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6:11-14)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에 있음이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해 죽은 것 같이

나도 그분과 연합하여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이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나도 그분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 새 존재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책임이 내게 주어졌다.

이제는 우리 몸의 사사로운 욕심에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우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아야 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막 살아난 자 같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제 우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은혜가 왕 노릇하며 함께 하고 법이 우리에게 주장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과 회심을 통해 우리 가운데 그 적용이 일어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로운 창조와 부활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새 피조물 새 것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우리 옛 사람이 죽는 과정과 체험이 있어야 한다.

죄에 대해 죽어야, 의에 대하여 살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죄는 우리 몸과 마음 가운데서 죽는 날까지 살아 있다.

성령을 힘 입고 은혜를 받아 이 죄와 육체와 마귀와 세상과 싸우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우리의 생명이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지고 떠나갈 날이 올 때까지

바울처럼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각자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야 한다.

 

그 날에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우리에게 썩지 않는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고 상을 주실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바울처럼 우리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14)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와 영원 세상에서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새 생명으로 살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 일에 방해되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옛 사람, 옛 성품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게 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 부활을 믿고 은혜가 왕 노릇하는 가운데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옛 습관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은 믿지 않고, 그 부활의 의미만 강조하는 잘못된 신학들이 있다.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로 영적인 연합이 없다면, 그 의미는 철학적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역사적 부활은 부인하면서 의미와 해석만 찾는 실존주의 신학과 해석은 마귀의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