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눅17:34). 주님은 이 분리의 순간을 또 다른 충격적인 그림으로 표현하셨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표현의 의미는 확실하고 명백하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선과 악,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둘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현재의 교회가 더 이상 혼합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섞여 있던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되고 그물에 걸린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나뉜다.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경건한 자들을 모아 상급이 약속된 곳으로 인도하고 악한 자들은 뒤에 남겨 심판을 받게 된다.
“회심했는가, 아직 회심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구분의 유일한 조건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동안 함께 일하고 함께 잤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앙에 따라 처분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가족은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던져진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회심한 자들과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분명하게 구분될 것이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자. 사랑하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우리는 특별한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라면 우리는 그들과 계속 함께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언젠가 영원히 헤어질 때가 올 것이다.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악으로 인해 죽은 자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지 않기 위해 하루 빨리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 일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 인생은 마치 바다의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가족 간의 이별과 헤어짐도 뼈아픈 고통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일어날 영원한 이별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존 라일, 『존 라일의 예수묵상 365』, pp 25-26
'존 라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생은 신분의 변화가 아니고 마음과 속성의 변화이다/ 존 라일 (0) | 2014.07.14 |
---|---|
“밭에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를 소유를 다 팔아 사는 사람/ 존 라일 (0) | 2014.07.04 |
겨자씨와 같은 작고 연약한 교회와 모임에 주님은 함께 하신다/ 존 라일 (0) | 2014.06.26 |
알곡과 가라지는 세상 마지막 때까지 교회 안에 공존한다/ 존 라일 (0) | 2014.06.26 |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례는 성령께서 마음에 주시는 내적인 세례이다/ 존 라일 (0) | 2014.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