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표징과 증거들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명료하게 제시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점에 대해 무지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사도 요한의 첫 번째 서신서에서 이에 대한 시험 준거 내지 시금석들을 자비롭게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다. 이 주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열쇠를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요한일서를 철저히 연구해 보아야 한다.
1. 중생한 사람은 습관적인 죄를 범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다(요일5:18).
그는 더 이상 중생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의 마음으로나 뜻으로나 모든 성향으로 범죄치 아니한다. 죄는 그들의 친구였지만 아제는 그는 죄를 싫어한다. 죄를 피하며 죄에 대하여 싸우며 죄를 가장 큰 역병으로 간주한다. 죄의 짐 아래 있을 때 신음하며 자신이 죄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을 때 애통해 한다. 그리고 죄루부터 온전히 구속되기를 열망한다.
죄는 중생한 자가 혐오하는 가증한 것이 된다. 그는 죄가 자기 안에 거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1:8). 그는 나쁜 생각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결점과 태만과 온갖 결함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음”(약3:2)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목전에서처럼 진실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의 전 속성은 중생하지 않은 자들이 하듯 그렇게 이러한 것들에 대해 동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중생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는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이다”(요일5:1).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혼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예수님이 바로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위임하시고 기름 부으신 거룩한 분임을 믿는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사역과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덕분에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여겨지게 되었으며 놀라지 않고 죽음과 심판을 기대하게 되었음을 믿는다. 그는 두려움과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는 때때로 마치 자신이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한 것처럼 느낀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가 비록 자신이 연약하고 악하게 느껴질지라도 온 세상을 준다 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믿어도 좋다.
3. 중생한 삶은 성결한 사람이다.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이다”(요일2:29).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하고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들을 피하고자 애쓴다. 그의 목표와 갈망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의 이웃을 그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의 바람은 자신의 구세주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범으로서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바라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명하시는 일을 무엇이든지 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친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완전하지 못하다. 그는 자기에게 붙어 있는 자기 속에 내재하는 타락의 무게 때문에 신음한다. 그는 끊임없이 은혜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자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리려고 하는 악한 원리를 그 자신 안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비록 그런 악한 원리가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모든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길의 평균적인 경향과 성격은 성결하다. 그의 행위가 성결하며 그의 취향이 성결하고 그의 습관이 성결하다. 그의 모든 빗나가는 것과 벗어나는 것에도 불구하고, 역풍을 거슬러 나아가는 배처럼 그의 사람의 일반적인 경로는 한 방향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위한다.
존 뉴톤, “나는 내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나도 아니다. 나는 내가 다른 세상에서 되기를 소망하는 나도 아니다. 그렇지만, 또한 나는 예전의 나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지금의 나인 것이다.”
4. 중생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모든 참된 제자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요일3:14).
하늘에 있는 그의 아버지와 같이, 그는 크나큰 보편적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하지만 또한 그는 그 자신과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 그의 주요, 구세주와 같이 그는 가장 극악한 죄인들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슬피 울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믿는 자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지닌다. 집에 있을 때보다는 오히려 그의 동료들과 있을 때 더 그러하다. 그가 이 땅의 성도들과 탁월한 자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 하는 때는 없다.
다른 사람들은 저희가 선택한 사회에서 학식이나 영리함 혹은 친절이나 부 혹은 신분 등을 가치 있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은혜를 귀중히 여긴다. 탁월한 은혜를 지닌 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와 참으로 닮은 자들이야말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는 그들이 그 자신과 같은 가족 구성원들임을, 그의 형제요 자매이며 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느낀다.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영적인 우애 내지 공감이 있다.
5. 중생한 사람은 옳건 그르건 세상의 의견을 자신의 법칙으로 삼지 않는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요일5:4).
그는 이 세상의 방법들과 개념들, 습관들에 대해 마음을 쏟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극복하고 있다. 그는 그의 주변에 있는 행복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것들에서 아무런 기쁨도 찾지 못한다. 그것들은 그를 피곤케 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다. 그는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더 사랑한다.
그의 눈을 구분을 좇기로 결심하고 있다. 이러한 좇음에는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분리되는 일을 필요로 한다. 중생한 사람은 그렇게 함에 있어서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유행과 습관의 노예가 아니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서 부차적인 고려사항일 뿐이다. 그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6. 중생한 사람은 그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대단히 유의한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신다”(요일5:18).
그는 단지 죄로부터 깨끗게 되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죄로 이끄는 모든 것으로부터 깨끗게 되기 위해 애쓴다. 그는 그의 동료들에 대해서도 유의한다. 그는 나쁜 교제가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질병이 건강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이 선보다 훨씬 더 손에 닿기 쉽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시간에 대해서도 유의한다. 그것을 유익하게 쓰고자 한다. 그는 그가 읽는 책에 대해서도 유의한다. 그의 마음이 유해한 저술들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친구관계에 대해서도 유의한다.
그는 그 자신의 일상 습관들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유의한다. 그는 그 자신의 마음이 거짓되며 세상이 온통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는 항상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하고자 애쓴다. 그는 적국에 있는 병사처럼 대비하기를 갈망한다.
이상과 같은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시해 주신, 중생의 여섯 가지 큰 표징들이다. 모든 사람은 주의 깊게 그것들을 읽고 거기에 마음을 두도록 하라. 나는 “중생한” 사람들에게 있는 이러한 표징들의 깊이와 명료성의 정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떠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희미하고 불명료하며 미미하여 거의 식별하기가 힘든다. 그것들을 구별해내는 데는 현미경이 필요할 정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들은 대담하고 날카로우며 명료하고 상세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다. 동일한 한 영혼에게 모든 표징들이 똑같은 정도로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사도는 이러한 표징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 존 라일, 『오직 한 길』, pp 22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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