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영원한 행복과 복락에 대하여
근거가 충분한 확신을 이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증거
1. 확신의 기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시니라”(롬8:32-34). 사도가 이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영광스러운 확신은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 보편적이며 공통되는 그런 논증으로부터 그 영광스러운 확신을 도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도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과 복락에 관하여 근거가 충분한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성경의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확신을 얻도록 돕는 것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과 복락에 대하여 근거가 충분한 확신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 었다.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자들이었고,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리는 안위가 강력하고 우리의 구원이 안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의 말씀과 맹세와 인침을 주셨다. 확신이 없다면 성도가 무슨 위안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내 영혼을 위로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내가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 내가 복음의 수많은 위로와 여러 가지 귀중한 약속을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 내가 귀하신 그리스도와 분명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확신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겨우 아는 것만으로는 내 영혼 안에 큰 위안을 불러일으키기에 역부족이다. 내 영혼에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러한 것들과 내가 분명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 안에 평화가 있고, 죄사함이 있으며, 부유함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아는 것이 어떻게 내게 위안이 되겠는가?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그런 지식은 나에게 기쁨과 위로의 근거라기보다는 나를 고문하는 지옥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또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의 복락과 영광에 대한 확신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성경에 계시해 놓으셨다. “내게는 온 세상을 소유하는 것보다 성경책의 한 장을 소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루터).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이며 천국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이다. 사람들은 계약서나 권리증서를 소중히 보관한다. 성도들은 얼마나 더 하나님의 보배로운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의 벽장 안에 조심스럽게 간직해야 하겠는가?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그들의 보존과 구원과 보호와 확증과 위안과 영원한 구원에 대한 모든 확신이기 때문이다.
3. 많은 성도들이 이미 얻은 확신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레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5:12).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63:16).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확신을 얻었다는 점과 그러므로 지금도 성도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과 복락에 대하여 감미로운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옛날에 성도들을 사랑하셨던 것과 동일하게 지금도 성도들을 사랑하신다.
4.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확신의 약속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84:11). 하나님은 확신을 무작정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확신이야말로 좋은 것 중에서도 좋은 것이요, 성도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고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 주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고후1:20)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보배로운 책이다. 그 책 한 장 한 장에서 몰약과 긍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므로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젖을 빨아 먹으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불로 여러분의 몸을 따뜻하게 하라.
사탄은 즐거움을 약속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고통을 준다. 사탄은 생명을 약속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사망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주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의 사랑을 확신시켜 주시겠다고 스스로 속박하신 이런 약속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약속들을 주님 앞에 펼쳐 놓으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행복과 복락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것은 당신에게 위로와 평안이 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명예가 되며 영광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라.
5. 성도 안에 있는 확신의 샘
모든 성도 안에는 확신을 가능케 하는 여러 가지 샘근원이 있다.
1) 보배로운 믿음은 확신을 가능케 하는 샘근원 중 하나이다. 이 믿음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성도 안에 다 있다.(벧후1:1) 믿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확신으로 승화되고 진보하게 되어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소유로 만드는 은혜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덮어주는 이 의는 내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긍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용서하는 이 긍휼은 내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붙들어 주는 이 능력은 내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지혜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 갈 길을 인도하는 이 지혜는 내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피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 나를 구원하는 이 피는 내 것이다”.
2) 소망도 확신을 가능케 하는 샘근원이다. 소망은 천국과 지성소를 굳게 붙잡는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마치 아침 햇살과도 같다. 아주 가날픈 빛으로 시작되어도 마침내 찬란한 햇빛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자신의 소망만큼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망이 있어야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망이 하나님의 광채요, 영광의 불꽃임을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망으로 충만한 영혼은 머지않아 감미로운 확신을 누리게 된다. 여러분은 소망과 인내를 포기하지 말고 더 굳건히 붙잡으라. 잠시 후면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이 결코 지체하지 않고 오실 것이다.
3) 선한 양심도 확신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샘근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3:21). 선한 양심은 노아처럼 모든 혼란과 소동의 한 가운데서도 정직과 평온, 그리고 담대함과 의로움 속에 거한다. 선한 양심과 선한 확신은 언제나 함께 한다. 선한 양심은 가장 어둠침침한 구름을 꿰뚫고 그 너머에서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악한 양심에게는 이 세상에 지옥이 없는 것처럼 선한 양심에게는 이 세상에 천국이 전혀 없다.
4) 성도들에 대한 참된 사랑도 확신을 가능케 하는 샘근원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형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생명과 영적인 상태와 천국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전에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이다”라는 속담이 유행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마귀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옳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지옥은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혼이여! 여러분은 여러 가지의 샘근원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생명수를 솟구쳐 내는 여러 개의 샘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러분은 하갈처럼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여러분 위에 있는 샘뿐만 아니라 여러분 안에 있는 것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물을 맛보고 마시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6. 하나님의 성령께서 확신을 권고하심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1:10) 성령께서는 우리를 권고하시며 ‘온전한 확신’에 이르기를 고대하고 재촉하신다. “힘써”는 헬라어로 가능한 신속함과 속력과 그리고 행동함에 있어서 진지함과 의향의 모든 태도, 이런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사실상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일을 가장 큰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라. 이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모든 문제도 해결된다.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다른 모든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의 필요성과 유용성과 탁월함과 가능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더욱”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다.
확신이라는 것은 그 가치가 보석과 같고 그 귀중함이 진주와 같아서 누구든지 그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땀을 흘려야만 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하고 그것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금이 묻힌 광맥에 도달할 수 있다. 확신이라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흰 돌’, ‘새 이름’, ‘감추인 만나’이다.(계2:17) 그것은 목숨을 내놓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와 명예를 획득하는 것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눕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확신이라는 것을 냉랭하고 게으르며 열의 없는 수고로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결코 헐값으로 팔지 않는 다섯 가지가 있다. 그리스도, 진리, 하나님의 영광, 천국, 그리고 확신 바로 그것이다.
만일 성도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복락에 대하여 온전하고도 근거가 충분한 확신을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그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또 온전한 확신에 이르도록 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시고 신실하심에 결코 어울릴 수 없다. 만일 이 일이 불가능하다면 비록 사람이 죽음 후에 지옥을 피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의 삶은 지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7. 확신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편들
확신을 권면하실 뿐만 아니라 성취할 수 있는 방편도 보여 주신다.
1)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2)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11:28). 자기를 살피는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관계, 어떤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확신하는 태도를 갖게 되고, 영생을 위해서 생명의 떡과 하늘의 만나를 떼어 먹게 된다.
3)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자신의 상태를 진지하게 점검하면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 지금까지 일곱 가지 논거를 통해서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과 복락에 대하여 근거가 충분한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8. 확신과 연관되어 있는 성찬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제정해 주신 것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신시켜 주고 그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인격이 용납되며, 또 그들의 영혼이 온전히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시려는 것이었다,(마26:27-28)
주의 성찬은 그리스도의 옥새이다. 이것으로써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그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다는 사실, 그들이 이 후의 세상에서는 더 행복할 것이라는 사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들을 위해서 장차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만유 가운데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는 사실들을 보증하고 확신시켜 주신다. 성례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자기 자녀들에게 아가서에 나오는 신부처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7:10)라고 말하도록 하고 계신다.
9. 확신과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의 관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요구하는 여러 성경 구절들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근거가 충분한 확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살전5:16)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 지금도 하늘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행하고 계시는 일을 기억하라. 그리고 영원무궁토록 여러분들을 위해 행하실 일들을 기억하라. 그리고 나서도 탄식하면서 세월을 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시32:11, 33:11)
아름다운 얼굴은 언제 보아도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 얼굴에 나타난 기쁨은 아름다움에 광채와 영광을 더해 준다. 그리스도인의 얼굴과 마음과 삶에서 드러나는 기쁨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힘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움과 영광이기도 하다.(느8:10) 기쁨과 환희는 확신의 결과요 효과이다.
10. 의인과 악인의 차이에 대한 성경의 명쾌한 가르침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을 확신할 수 있다는 마지막 열 번째 논거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의인과 악인, 성도와 죄인, 아들과 종, 양과 염소, 양과 사자, 밀과 겨, 빛과 어둠 등을 아주 극명하게 구별해 놓으셨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명의 상태에 속하였는지 아니면 사망의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비참함의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아니면 한없는 행복의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연약한 성도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주님은 자기 자녀를 고아나 아비 없는 자식처럼 내버려 두시는 법이 없다.
성도의 구원이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아는 지식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도가 누리는 위로는 바로 이런 지식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들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렘3:4)
11. 알미니안과는 무관한 확신(적용)
교황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확신이라는 교리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 천국에 대한 확신이라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그레빈초비우스).
확신이라는 것은 천국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며, 약속의 땅에 결실한 포도송이이다. 확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광채이며, 그리스도인에게 기쁨과 면류관이다. 그러나 확신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위로자가 아니며, 오히려 고문관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치 크세르크세스왕 같은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크세르크세스왕은 자신의 배를 조종하는 키잡이에게 아침에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가 그 날 저녁에 그를 참수시켰던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가르침은 지친 영혼을 괴롭히는 것에 불과하고 상처 입은 심령을 낙담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헐벗은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 측량할 수 없는 부유함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자신이 그 부유함에 참여할 수 있을런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가련한 영혼들에게 허락하는 것은 고작해야 어쩌면 모든 일이 좋게 끝날 수도 있다는 여러 가지 추측과 어림짐작뿐이다. 그렇게 힘으로써 그들은 영혼들을 애매하고 미심쩍어하며 의심하고 망설이는 상태에 그냥 내버려 둔다. 그들은 여러분이 약속의 땅에 거할지라도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9)라고 말씀 하셨다.
“모든 성경이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향하여 자비로우시며 관대하시며,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도록 하는 것이다”(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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